내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다는 건, 나이 든 내가 어렸던 나를 이해하게 되는 삶의 되새김 같아

1978년 3월 나는 불광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콧물 닦기 용 손수건을 큼지막한 오핀(주: 당시에는 핀 대신 오핀이란 표현을 썼음)으로 매달고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교문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이었다. 아이들로 가득 찬 그곳은 황야의 무법자에 나오는 사막처럼 황량하고 삭막해보였다. 3월이었지만 볼을 에는 추위와 낯선 아이들 속에서 유치원 근처도 가보지 못 한 나는 장고가 쏜 총소리에 기절하던 말라깽이 엑스트라처럼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낯선 교실에 호랑이 같은 선생님. 조금만 떠들었다가는 매서운 회초리에 손바닥이 금방 발갛게 부어올랐다. 규칙을 공포로 배우던 그 시절의 오후반은 그래서 더욱 긴장되었다. 시계를 잘 볼 줄 몰랐던 나는 학교에 늦을까봐 몇 번이나 볼 줄도 모르는 시계를 쳐다보며 초조한 오전을 보냈다. ‘엄마, 지금 가?’라고 몇 번이나 되묻고 하였던지 엄마에게 핀잔듣기 일쑤였다. 

선생님은 말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고 나도 모르게 떠들게 될까봐 자꾸 눈치를 보던 일학년은 눈칫밥 먹듯 그렇게 서서히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넓은 운동장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플라타너스 나무는 송충이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문설주가 되었고 교장선생님의 끝날 것 같지 않던 훈화에 쓰러지던 아이들을 부러워하던 조회시간은 친구들과 키득거리며 걸리지 않을 만큼 수다를 떨 수 있는 대담함으로 채워졌다. 끝도 없을 것 같은 운동장의 지평선이 한눈에 보일만큼 나는 그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불광초는 가난한 언덕 마을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다. 정문을 중심으로 평범한 단독과 그 단독 문간방에 세들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현대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동산교회가 있던 ‘독박골’이라고 불리던 마을은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서민들이 모인 산동네였다. 나도 정문 쪽에 사는 아이었고 내 친구들 중엔 독박골에 사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후문 쪽을 넘어가본 것은 4학년쯤이었다. 초대받은 친구 집은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그림 같은 정원에 붉은 색 2층 집이었다. 각 방마다 전화기가 놓여있는 그야말로 부잣집이었다. 그 옆집도, 그 옆집도. 얼마나 놀라고 기가 죽었던지. 정문과 후문을 사이에 두고 꼬질꼬질함과 깨끗함, 자신 없음과 당당함이 슬래브 단층집과 빨간 벽돌 2층집으로 나눠진다는 것을 처음 알게된 때였다. 공부라도 잘해야겠다고 처음 다짐해 본 때이기도 했다. 

6학년 시절은 그야말로 사랑이 싹트는 계절이었노라고 말해야겠다. 그 많던 썸과 썸 사이에서 히히덕거리며 친구들을 놀려먹기도 했고 당사자이기도 했던 그 하루하루의 성장의 에너지가 가득했던 6학년 교실. 그곳에서 같이 뛰어다니고 쪽지를 나누고 브레지어를 처음 같이 찬 그 친구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책상 속에 몰래 편지를 넣어두던 그 아이는 아직도 불광동에 살고 있을까? 물색 모르고 천방지축이던 내게 윤동주의 시를 곱게 써주던 그 아이의 동그란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타인에게 순수한 사랑을 받았던 첫 경험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순호박이란 별명을 가진 성숙한 미모의 친구도 떠오른다. 순호박이란 별명은 어느 장난꾸러기 녀석이 친구의 이름을 거꾸로 부르면서 만들어진 별명이었는데 순호박과 어린이 탤런트 시험에 응모했었던 기억은 아직도 내 어린 시절의 기막힌 반전드라마로 기억된다. 탤런트 시험에 응모했던 것은 말 그대로 꼭 탤런트가 되고 말리라는 친구의 같이 가 달라는 부탁 때문이었다. 마침 그 학원에서는 무슨 퍼포먼스라도 하는지 응모원서를 길거리에서 뿌리고 있었고 하늘에서 날아오던 원서가 내 얼굴에 떨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친구를 따라 응모원서를 작성했다.

시험은 그 당시에는 획기적이게도 비디오 테스트를 보았다. 나는 완전 망한 기분이었고 친구는 그날따라 유독 예뻤다. 미용실에 다녀와 캔디에 나오는 일라이저처럼 굵게 말은 고대머리가 세련된 아가씨 같았고 뽀얗게 분칠한 얼굴은 공주 같았다. 그 당시 잘 나가던 유명 탤런트의 질문을 우리 조에서는 유일하게 받은 순호박은 당연히 붙을 것을 확신했다. 불광초 6학년에 이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하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조차 어이없게도 어린이 탤런트 시험에 붙은 건 나였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불광초 6학년엔 순호박의 탈락소문이 돌았다. 위로조차 해 줄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창백했던 친구의 얼굴이 창문너머로만 향했던 그 날의 교실을 순호박도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은 수영장이 생기면서 좁아진 운동장. 새로운 건물도 들어서고. 우리보다 세 뼘쯤 키 큰 아이들이 우리처럼 키득대며 시끌벅적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곳에 어린 내가 있었지.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있다는 것은 곳곳에서 지난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어 기쁨이면서 부끄러움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만큼은 불광초만큼은 왜 그렇게 설레게 기억될까? 부끄러움도 웃음으로 이해하게 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모습은 변했어도 내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다는 것은 해마다 나이 든 내가 어렸던 나를 이해하게 되는 삶의 되새김 같다.

 보고 싶다. 그립다. 추억한다. 안녕! 불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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