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우고 이삭 팬 벼 보며 풍성한 가을 기대

논의 김매기

지난 6월 웃거름 주고 풀을 잡은 지 5주 만에 다시 논을 찾았다. 논을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눈 앞에 펼쳐진 곳이 논인지 초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 사이 벼가 많이 자라기는 했지만 벼 사이로 초록의 풀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사람은 축 늘어져 좀비를 방불케 했건만 풀들은 어찌 그리 기세가 좋은지! 날씨가 덥다고 새벽 댓바람부터 서둘러 논에 도착한 농부 4명은 감히 뭔가를 할 엄두를 못 내고 초록으로 뒤덮인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그래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니 얼른 정신을 차리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다. 

풀을 그렇게 방치한 데 대한 미안함에 논에 들어가기 전 ‘벼들아 우리는 너희를 사랑한단다’라고 큰소리로 외쳐보았다. 벼들은 콧방귀를 뀌었을까, 위로를 받았을까. 

유기농사의 필수템 규산
그날의 할 일은 벼에 규산액비 웃거름을 주고 풀을 잡는 것이었다. 벼는 물에서 자라는 화본과 식물로 규산을 자기 무게의 5~10% 정도로 다량 함유하는 특이성을 갖고 있다. 토양에도 규산이 함유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흡수율도 낮아 논을 갈 때나 모판을 만들 때 는 규산을 많이 넣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논은 전혀 규산이 들어가지 않았고, 전해 농사가 끝난 후 볏짚도 다시 넣지 않은 곳이라 투입이 꼭 필요했다.

논에 규산을 사용할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벼가 잘 쓰러지지 않고, 수확이 많으며 쌀에 윤기가 있고, 밥맛도 좋아진단다. 또 문고병, 도열병, 혹명나방, 멸구 등에 대한 내병충성이 강해지고, 냉해, 습해, 고온장해, 가뭄 등 이상기후에 대한 내성도 높여준다니 유기농 벼농사에는 필수템이라 하겠다.

첫해는 논을 갈기 전에 고체 상태로 된 규산을 훌훌 뿌렸다. 쉬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벼가 많이 자란 상태여서 빠른 흡수를 위해 액체로 된 규산을 물에 희석해 잎에 직접 뿌려주었다.

한 사람이 20리터 약통을 메고 작업을 했고, 나머지 농부 세 명은 허리를 숙여 풀을 잡았다. 논에는 물옥잠이 가장 많았는데 보라색 꽃이 아주 예뻤다. 다른 데서 그 꽃을 보았다면 경탄을 하며 즐겼을 텐데 논에서는 그리 한가할 수 없었다. 이쁜 꽃과 풀들을 전투태세로 가차 없이 뽑아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규산 뿌리기

침술 도움받아 겨우 몸 회복
밭일할 때는 뭐라도 깔고 앉아서 할 수 있는데 논일은 계속 허리를 숙인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게다가 까칠한 벼잎이 팔이며 얼굴을 긁어대는 통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허리와 팔, 다리 등이 힘들다고 아우성을 쳐 가끔 허리를 펴고 논을 보면 아직도 초원이 훨씬 더 많았다. 중간에 수분만 좀 보충하고 그렇게 3시간 이상을 꼬박 일을 했건만 절반도 못 했다. 

하지만 쓰러지기 일보 직전. 더 이상 작업은 무리라는 판단을 하고 논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 다음 주에 한 번 더 오자는 제안을 했다. ‘이렇게 힘든데 뭐라?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로 치부하고 말았다.

다음 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스트레칭을 계속하며 2~3일 지나니 몸이 좀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아직도 풀이 그득한 논이 떠올랐지만 모른 척하고 싶었다. 살인적인 더위! 핑계 대기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논이든 밭이든 작물을 심어 키우는 농부라면 최소한의 환경은 만들어 주는 게 도리인 것 같았다. 결국 먼저 나서서 논에 가자고 제안을 했고, 마음이 되고 시간이 되는 농부 3명이 다시 풀과의 전쟁에 나서기로 했다. 

(위) 풀 뽑기 전 (아래) 풀 뽑고 난 뒤

‘벼야 조금 더 힘내리라 믿는다’
8월 첫 토요일, 졸린 눈을 비비며 논에 도착하니 7시가 채 안 되었다. 논을 살펴보니 또 입이 벌어졌다. 지난주 풀을 뽑아 자리에 놓아둔 풀들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게 아닌가. 

이쯤 되면 풀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지만 벼들을 위협하며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풀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너무 덥고 힘드니 9시까지만 하자고 서로 다짐하고 논으로 들어갔다. 

몸이 아우성을 쳐 잠시 쉬면서 시간을 확인하니 9시였다. 작업을 종료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농부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많이 남아 있었다. 조금 망설였지만 같이 간 농부들 모두 ‘이대로 두고 갈 수 없다’는 이심전심이 통했다. 

그렇게 2시간을 더 꼼지락거리며 결국 끝까지 풀을 잡았다. 이번에는 뽑아낸 풀을 논 밖으로 던지거나 논바닥에 놓고 꾹 밟아 다시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조금 더 정성을 기울였다. 

풀 뽑기를 마치고 논 밖으로 나와보니 군데군데 미처 제거하지 못한 피도 있고 풀도 보였지만 풀 뽑기 전과 후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어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 

200여 평 논의 김매기가 2주에 걸쳐 대충 마무리됐다.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풀들은 기세 좋게 다시 자신의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면 벼가 풀에 치일 정도는 아니니 벼도 힘을 낼 거라 믿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삭이 팬 벼들이 있지 않은가.

벼에 대한 믿음과 함께 풍성한 가을에 대한 기대까지 살짝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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