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생명에는 하나의 세계가 담겨있다”

인도 콜카타의 그레이트반얀트리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행성마다 대표 생명체를 선발하는 외계인이 어느 날 지구를 방문했습니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며 후보군을 물색했죠. 떠나는 마지막 날, 드디어 대표 생명체를 발표합니다.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당연한 듯 인간이길 바라지만, 혹여 나무, 개미, 돌고래 더 나아가 파리가 뽑힐 가능성은 없을까요? 
 
설마 파리? 파리는 전 세계에 약 1만 5천여 종이 있다고 해요. 종수가 많다보니 벌과 새가 살지 않는 곳에도 살고 있답니다. 파리는 그 종수만큼 다양한 취향을 갖고 있어요. 생선, 과일, 버섯 심지어는 배설물을 좋아하는 파리도 있답니다. 파리는 탁월한 분해자입니다. 음식물 등이 부패하는 곳이면 득달같이 날아와 알을 낳습니다. 부화한 구더기는 부패한 먹이를 잘게 부스며 열심히 먹어댑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쓰레기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갑니다.

자연에서 동물의 사체를 보기 힘들고 쓰레기가 없는 이유는 어쩌면 파리의 공로일 수 있습니다. 파리는 수분매개자 역할도 합니다. 이 꽃 저 꽃 다니면서 꽃들을 결혼시키죠. 파리를 중매쟁이로 선택한 식물들은 그래서 부패한 냄새를 풍기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스타펠리아, 시체꽃 등이 대표적입니다. 파리에게 의탁한 이들은 파리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생명공동체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파리가 인간 못지않게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큼을 알 수 있습니다. 외계인이 파리를 선택했다 한들 우리로선 항의하기가 쉽지 않겠네요. 
 
이제 개미는 어떨까요? 나무는? 어쩌면 그 외계인,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결국 뽑지 못하고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명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그래서 무위당 장일순은 말했죠. “생명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 중에서도 대단한 경사입니다. 태어난 존재들이 생명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거룩하고도 거룩합니다. 이 사실만은 꼭 명심해야 할 우리의 진정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세계의 소멸과도 같다.”라고 말했다는데 이를 “한 생명의 죽음 역시 하나의 세계가 소멸한 것과 같다.”라고 변환하면 당치도 않다고 사람들이 그럴까요? 
 
인도 콜카타에 가면 한 그루의 나무가 조그마한 숲을 이룬 곳이 있다고 합니다. 보통 숲이라고 하면 나무와 다른 나무가 모여 이루어진 곳이라 생각하는데 이곳은 단 한 그루의 나무만 있습니다. 자그마치 3,600여 개의 기둥을 가지고 있으며 축구장보다 1.5배 큰 면적으로 세계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나무라고 알려졌습니다.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데 이름이 그레이트 반얀트리(Great Vanyan tree)입니다. 약 250년 전, 한 그루의 반얀트리가 있었습니다. 수평으로 뻗은 가지에서 실 같은, 버팀뿌리라고 불리는 조직이 돋아났고 점점 길어져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버팀뿌리는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나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생기는 조직입니다. 보통 나무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면 그 뿌리를 깊고 넓게 키워나가는 전략을 취하지만, 반얀트리는 버팀뿌리를 이용해 세력을 넓혀나갑니다. 

그래서인지 별명이 걷는 나무(walking tree)입니다. 버팀뿌리는 굵어지면서 기둥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단단해진 기둥 줄기를 이용해 가지는 수평으로 더욱 자랄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공간을 더욱 더 넓혀나갑니다. 250여 년의 자람을 통해 결국 지름이 450m에 달하는 숲이 된 거죠. 최초로 싹이 돋았던 줄기는 1925년에 벼락을 맞은 뒤 균류의 공격으로 죽었지만 나무는 그 후로도 100년 넘게 성장을 계속했으며 지금도 한해 약 60cm씩 지름을 넓혀가고 있다고 합니다. 생각할수록 대단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바로 자이언트 세쿼이아라고 불리는 나무입니다. 키가 약 100m로 아파트 30층 정도 높이입니다. 이런 나무들이 서로 모여 숲을 이루고 있죠. 나이는 약 2,500년에서 3,000년가량으로 알려졌습니다. 살아온 날과 덩치로 경이로움을 자아내는 생명체입니다. 자이언트 세쿼이아가 이렇게 거대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불에 아주 강한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다 성장할 때까지 80여 번의 대형 산불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산불을 견뎌내는 것일까요? 이 나무는 1m까지 옆으로 자라는 두꺼운 껍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 껍질이 딱딱하지 않고 푹신푹신합니다. 코르크 마개처럼 푹신한 나무껍질은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간직하고 강력한 불로부터 나무를 보호합니다. 솔방울 역시 200도 이상에서만 벌어지고 발아가 촉진됩니다. 불을 견디는 힘을 이용해 숲의 주인공이 된 셈이죠. 
 
모든 생명 하나하나가 이렇듯 세계입니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양성이 충분한 지구를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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