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빠졌을 때 나를 도와줄 법은 무엇일까? 절대빈곤의 위기를 겪고 있다면 바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기초법은 전 국민에게 최저생계비 이상의 인간다운 삶을 권리로서 보장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폭발하던 빈곤 문제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었고,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물러설 수 없는 인권을 누구나 보장받아야 한다는 연대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초법의 정신을 다소 유보시킨 조항이 있다. 바로 ‘부양의무자기준’ 이다.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이나 재산을 가진 가족이 있다면 본인이 빈곤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기초법의 수급자가 될 수 없다. 가족관계 단절이나 지원받지 못하는 사유를 밝히는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수급자가 될 수 있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다. 기초법이 운영된 17년간 빈곤 사각지대를 발생시키는 핵심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이 만드는 문제는 하나가 아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이들의 생존이다. 노인빈곤율이 절반에 육박하고, 빈곤과 고독사가 심각한 사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생존은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2010년 장애아동의 아버지가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게 있다’며 자살했다. 2012년 거제의 이씨 할머니는 사위의 소득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뒤 시청 앞에서 목숨을 끊었다. 2014년에 송파 세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난과 가난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사회적 타살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은 가난한 이들의 가족들을 빈곤의 사슬로 묶는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수급가정의 청년이 자립과 동시에 부양의무자가 되어야 하고, 장애가 있는 자녀를 가진 노인들이 평생 부양의 책임을 떠안는다. 국가가 방조하는 빈곤의 대물림인 셈이다. 1인가구가 주류가 되고 있는 현재 부양의무자기준은 도무지 시대에 맞지 않는다. 따로 사는 가족의 생존을 다른 가족이 어떻게 책임진단 말인가?

또한 부양의무자기준은 가난이라는 불평등의 결과를 국가와 사회가 함께 해결하지 않고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기초법은 누구나 가난에 빠질 수 있지만 가난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약속이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그 자체로 기초법의 약속을 유보시킨다. 

최근 부양의무자기준은 큰 진전을 겪었다. 지난 대선, 문재인 대통령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고,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광화문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농성장을 방문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한국 사회복지의 가야할 길임을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그러나 완전 폐지를 위한 실제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빈곤이 생존을 위협하는 구체적인 폭력이라는 것을 유념한다면 하루 바삐 구체적인 계획과 예산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 사회 인권의 수준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가족의 소득 때문에 최소한의 복지에도 다가갈 수 없는 사회는 가난한 이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사회가 아니다. 가난에 빠지더라도 나를 도와주는 복지가 없다면 우리 모두의 삶은 더 위태롭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사회복지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일이자, 가난에 빠질 염려가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다. 미루지 말고 해결해야 할 과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될 때까지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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