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띠띠’ 아침 10시에 폭염주의보 안내문자가 날아옵니다. 내가 설정한 핸드폰 벨소리와도 다른 큰소리의 알림문자가 올 때마다 소리에 놀라고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울까 걱정이 됩니다. 더위를 피해 가까운 카페에 가거나, 냉기가 도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에어컨의 쾌적함을 찬양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전력생산량이 전력소비량의 5.5%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나머지 94.5%는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올해 6월 19일, 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 된 의미 있는 날입니다. 가장 오래된 핵발전소가 정지되었지만 아직도 2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했다는 이유로 아름다운 동해와 남해에 핵발전소가 밀집시켰습니다. 1979년 유신정부 때 만들어진 전원(電源)개발촉진법을 등에 업고, 도로법·하천법·수도법·농지법 등 19개 법령에서 다루는 인·허가 사항을 모두 통과시키는 국가 주도의 강력한 에너지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국가를 위한 대의를 이유로 부산에 위치한 고리1호기 건설부지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이유로 삶터를 두 번이나 빼앗겼습니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갑상선암 발생이 높아지고, 소변에서 삼중수소라는 발암물질이 검출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위험과 고통 속에 만들어진 전기는 거대한 송전철탑 아래에 살고 있는 밀양주민들의 눈물을 무시한 채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30년이 넘었지만 전원개발촉진법은 아직 건재하게 주민들이 배제된 국가주도 에너지를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된 후 ‘신고리 5,6호기’라는 낯선 이름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고리1호기 옆에 위치하게 될 9번째, 10번째 핵발전소입니다. 이미 대통령 후보시절에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공약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백지화가 아닌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분명한 공약 후퇴입니다. 하지만 3개월 동안 진행될 공론화 과정에서 안전만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그동안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핵발전소 인근주민들의 삶,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별 세계적 추이 등을 점검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으로 삼아야 합니다.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의 문제는 크게 다수호기 입지, 설계수명 60년, 높은 인구밀도, 지진위험성 평가 미비, 주민의견 수렴 부실 등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전 세계 188개 핵발전단지 중 고리원전부지에 10기 핵발전소로 원전밀집도가 가장 높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 핵발전소 여러 기가 한 부지에 있을 경우 안전성 평가기준을 재설정하는 것으로 기준을 높였으나, 이에 대한 대응방안도 아직 없습니다.

신고리 5,6호기는 설계수명 60년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핵발전소 중 설계수명이 가장 깁니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산업은 위험성과 비경제성으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이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60년 뒤에 살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려는 고리원전단지로부터 30km 반경에 382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30km는 방사선비상계획구역으로 지정하는 최소범위입니다. 5년 전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사고는 같은 구역에 17만 명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무려 22배가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사고발생위험은 44배가 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14기의 핵발전소가 위치한 부산, 울산, 경주는 활성단층이 가장 많이 분포해 지진이 발생할 우려가 큽니다. 지난해 9월 경주에서는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부산, 울산, 경주에 60여개의 활성단층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해양수산부 보고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2016년 6월 1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를 승인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위험성에도 핵발전소 신규 건설 승인 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주민의견수렴절차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건설승인이 나기 전, 관행이라는 이유로 터파기 공사와 중요부품 제작은 이미 진행 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비윤리성은 핵폐기물에 있습니다. 현 세대가 편하게 전기를 사용한 뒤 40~60년 뒤의 후손에게 핵폐기물 처리를 떠맡깁니다. 1978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핵발전소를 가동한 후 25개 핵발전소에 14,813톤의 핵폐기물이 임시저장 중입니다. 2019년이면 경주에 위치한 월성1호기의 임시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릅니다.(2016.6기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10만년동안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기술과 장소가 없습니다.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도 없이 현재 가동되고 있는 24기의 핵발전소에서 새로운 핵발전소를 추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정책결정일 뿐입니다. 세계적으로 경제성과 안전성의 이유로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투자를 멈추고 있습니다. 

핵발전소와 멀고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은평시민들은 이제 탈핵시민선언을 하고자 합니다. 핵폐기물과 발전소 인근주민들의 건강피해, 송전탑 아래 주민들의 고통에 방관하지 않고, 기후변화와 안전을 고려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하며 함께할 것입니다. 에너지 전환을 함께 책임지며 에너지절약과 전기요금 인상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신고리 5,6호기를 둘러싼 공론화 논쟁은 민주주의, 안전, 지속가능성을 위한 법적·제도적 보완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걸음을 시작으로 탈핵한국을 향한 과정에 은평탈핵시민들도 씩씩하게 함께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