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북클럽>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성별과 나이, 직업이 각각 다른 여러 등장인물들이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서클럽에 참가한다.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엠마 등. 약간의 음식을 앞에 놓고 진행되는 모임장면, 책의 주제와 비슷한 등장인물들 이야기가 사이사이 끼어든다. 영화를 보며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시민들의 삶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처럼 보이는 독서모임이었다. 

영화를 본 후 나도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마음 맞는 이웃을 사귀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 생활에 활력과 자극을 기대하는 사람 등 참가 동기는 다양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모임 덕분에 혼자서는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읽게 되었고, 모임참가가 생활의 커다란 즐거움이 되었다고들 했다. 모임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 지금도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마음속 깊은 고민까지 나누었던 기억이 즐겁게 남아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에도 여러 독서모임들이 있다. 초등학생부터 직장인·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가하여 자유롭게 책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함께 시를 읽는 모임, 직장여성들이 퇴근 후 만나 책을 낭독하는 모임,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사서들이 모여 어린이책을 읽는 모임, 청소년들의 독서동아리, 만화를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동아리, 어르신들이 만나 책이야기를 나누는 모임까지. 독서모임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더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활동하고 있다. 책을 읽고 봉사도 하는 청소년동아리, 아이와 함께하는 생태놀이동아리, 어르신들이 컴퓨터배우고 이야기도 나누는 동아리 등.

은평교육혁신지원단에서 올해 동아리 지원 사업을 하면서 조사해보니 은평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사업비에 제한이 있어 다 지원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동아리들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것에 놀랐다는 말을 듣고 은평에는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의 확산과 여가 시간의 증대가 맞물려 독서회는 19세기 중반 미국 중산층의 생활에서 중요한 특징으로 등장했다. 이들의 활동 초점은 지적 탐구에서부터 사회·정치 개혁을 북돋는 운동의 일환으로서 지역 공동체 봉사와 시민의식의 향상으로까지 점차 확대되었다. 전환기에 스스로의 활동 영역을 넓혔던 이러한 단체들로부터 1890년대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진보의 시대의 여러 운동들, 즉 여성참정권 운동을 비롯하여 시민정신에 투철한 여러 주도적 운동들이 탄생하였다.”(로버트 D. 퍼트넘, 『나 홀로 볼링』 중)

미국을 대표하는 교육 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커 J. 파머는 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자신이 살고 일하는 장소에서 시민공동체를 창조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민공동체만이 정치를 견제하고 바로잡을 수 있으며, 국민의 목소리가 형성되어 제도정치 공간까지 그 목소리가 들리게 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역의 이웃, 도시의 가로와 골목, 공원과 광장, 카페와 커피숍, 박물관, 도서관, 학교, 직장, 디지털 소셜 미디어 같은 모든 공적인 공간에서 시민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계속될 때에만 민주주의는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생활과 정치적인 삶의 비좁은 범위를 넘어서 시민 공동체를 경험할 때에만 민주주의는 숨 쉴 수 있다는 것이다. 

파커 J. 파머가 책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마음의 습관’은 이웃과의 모임에 참가하여 마음을 나누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혼밥· 혼술· 일인가구가 대세인 것 같지만,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이웃과 마음을 나누고 싶은 욕망이 잠재해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구산동도서관마을에 와서 동아리의 문을 두드리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도서관은 친구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늘 문을 열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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