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춤바람에 엮였습니다. 살림 의료 생협의 소모임인 ‘춤바람’이 해산되고 나서 무척 아쉬워하더니 이내 아프리카 댄스그룹 ‘쿨레칸’에 들어가면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별별곳간’ 마을예술창작소에서 일주일에 한번 하는 연습 날엔 맥주 한잔 뒤풀이에 참여하면서 모든 감정을 훌훌 털어버린 사람처럼 산뜻한 웃음을 머금고 집에 옵니다. 춤추는 동영상을 보면 이건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아프리카 초원을 놀이터 삼은 듯 격정적인 몸짓 하나하나가 “미친* 널뛰듯 한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너무 솔직했지요? 그 말을 했다가 “너 이놈아 일루 와봐!” 쫓아다니는 통에 좁은 집구석 구석을 도망 다니다가 허리가 결리네, 어깨가 아프네, 다리가 부었네, 금세 환자가 된 아내의 환부를 풀어주다가 설거지 삼일 연장의 폭탄선언을 하고는 곧바로 싱크대로 향합니다. 말 한마디로 얻어걸리는 벌이 제법 됩니다. 죄다 낄낄대고 피식 웃으며 하는 일입니다.

아내는 ‘초록길도서관’에도 엮였습니다. 일요일 저녁이면 걱정이 태산입니다. “내일 초록길 반찬을 뭐해 가지?” 격주 한번 동네 독거노인들께 드리는 반찬 타령입니다. 가족이 먹는 음식에 대해선 거의 고민한 적이 없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니 은근히 심술이 나기도 하지만 덕분에 콩장이며 멸치조림이며 몇 가지, 나물까지 일주일치 반찬을 나도 얻어먹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아시다시피 <은평시민신문>에 엮였습니다. 시민의 입이 되는 참 지역 언론을 만드는 꿈에 혹해 4년째 이사장을 맡으면서 어려운 재정까지 책임지게 됐으니 엮여도 너무 엮인 꼴입니다.

‘꿈꾸는 합창단’(이하 꿈.합)에도 엮였습니다. 서로의 공연에 초대 손님으로 들락날락하다가 내가 만든 노래의 첫 숟가락(첫 공연)을 ‘꿈.합’이 떠주기도 하고 이젠 ‘꿈합’의 축구, 족구, 당구 소모임의 내기 경기에 초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아빠맘두부’에도 엮였습니다. 매주 금요일에 두부 배달이 오는데 그날 저녁 메뉴는 두부 된장찌개로 굳어질 정도로 기다려집니다. 어떨 땐 ‘마을n 카페’의 아메리카노가 달달 하다가 ‘재미난장’의 고장 난 전자 피아노를 두드리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동네에서 엮인 일들이 하나같이 
괜찮다 싶은
일들뿐이니 맘먹고 
발자국만
나서면 온통 엮일 일투성이인 
동네가 예쁘게
보일 리가 없습니다.

요즘엔 텃밭에 엮였습니다. 우리 동네 텃밭 협동조합을 통해 북한산 자락에 세 이랑의 밭을 일구었습니다. 몇 달째 가뭄인지라 삽질도 잘 안 먹히고 먼지도 폴폴 날립니다. 풀들도 무성해서 그놈들 뽑아내는 데만 팔뚝이 아릴정도였습니다. 농사일이야 어릴 때부터 한 가닥 했으니 고랑을 내면서는 “체질이다 체질”이라고 혼자 자랑스러워했지만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이야 흙 묻은 장갑으로 털어낸다 해도 뻐근해지는 허리와 다리춤은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럴 땐 밭둑에 털썩 앉아 멀뚱히 하늘을 봅니다.

거기에 북한산이 있습니다. 두 개의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북한산은 참 멋들어지게 생겼습니다. 하늘은 모두 파란 배경이니 저녁햇살을 받은 바위는 늠름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진관사나 삼천사 어디쯤에서 울리는 범종소리가 북한산 바위자락을 휘돌다가 멀리 봉산 뒤로 기우는 일몰에 스며듭니다. 잠시 종교적 심상에 젖어들면 꿈틀대는 지렁이 피해서 삽질한 일이며 개미굴 피해 이랑을 만든 일이 생의 잘못 하나를 덜어낸 것 같아 뿌듯합니다.

엮여도 참 잘 엮였습니다. 동네에서 엮인 일들이 하나같이 괜찮다 싶은 일들뿐이니 맘먹고 한 발자국만 나서면 온통 엮일 일투성이인 동네가 안 예쁘게 보일 리가 없습니다. 나의 오늘은 언제나 어제보다 행복했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디 동네뿐이겠습니까. 인권단체에도 엮이고, 통일단체에도 엮이고, 장애인 단체에도 엮여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꿈틀대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 또한 그렇게 되니 지금 내가 받는 행복의 양은 모두 나를 엮어준 사람들 때문입니다. 나는 엮여서 참 좋은데, 너무 엮여서 이렇게 좋은데, 오히려 엮인 것 때문에 불편을 당하는 사람들이 좀 있나 봅니다.

대기업에 엮였다, 몸종에게 엮였다, 검찰에게, 좌파들에게 엮였다, 갖은 핑계를 대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는 그분의 말씀을 생각하면 사람을 사람으로 만났다면 꼭 그렇지는 않을 텐데 싶어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동네사람들이 건네는 떡 한 조각 드셔본 적이 없을 테지요. 공짜로 얻어먹어 미안해본 적이 없으셨을 테지요. 지렁이 한 마리 밟고 나서 가슴 철렁해본 적은 더욱 없으셨을 테고요. 미안합니다. 똑같이 엮였는데 나만 행복해서요.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 이예요’ 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마을에 엮였으니 다시 엮으러 갑니다. 이 기분, 혼자만 알고 있다는 건 더 미안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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