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4색의 전기 사용 줄이기

얼마 전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제품의 수를 세어 보았다. 휴대폰, 전기밥솥, 드라이기, 청소기 등 스무 가지가 넘었다. 이제 전열기는 하나라도 없으면 금방 불편해지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전기로 돌아가는 필수품은 늘어나고 전기에너지의 사용은 갈수록 증가한다. 2050년에는 인류의 에너지 사용량이 지금보다 3배는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 시스템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각종 암이 발병해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대기와 바닷물도 오염되어 먹거리마저 불안해졌다. 우리나라도 지진 발생이 빈번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낙관할 수 없다. 노후한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면 핵폐기물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없어 대부분의 폐기물은 땅에 저장한다.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시설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원전 이외의 대안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 사용이 줄면 핵발전소는 축소되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안전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 원리는 간단하다. 하지만 누가 가능하게 할 것인가? 대안은 누가 만드는가? 
  
에너지 자립의 희망을 품고 대안을 만드는 사람을 찾아보았다. 사소해보이지만 가정에서 전기 사용을 줄이고 태양광 발전기를 돌리며 에너지 대안을 만들어가는 4인의 방법을 소개한다. 
 
전기밥솥 안 쓰기
  
구산동에 사는 곽선미 씨는 5년 동안 전기밥솥을 쓰지 않았다. 아는 선배가 에너지 위기를 대비해 전기밥솥 없이 사는 것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마침 전기밥솥이 고장 났다. 새로 구입한 밥솥이 AS를 거치며 계속 문제를 일으키자 전기밥솥 없이 지내보기로 했다. 그렇게 5년을 지냈다. 압력밥솥에 밥을 짓고 밥솥이 뜨거울 때 뚜껑을 닫아놓으면 세균 번식도 안 되고 하루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남은 밥은 냉동한 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다. 
  
전기밥솥에서 취사는 30분 정도 걸리지만 보온을 하면 하루 종일 전기가 돌아간다. 실제로 밥솥이 보온상태일 때 전기 사용량이 가장 높다. 이것이 식사 준비 때마다 곽선미 씨가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다.
 
“밥 한 그릇 보관하려고 종일 전기를 틀어놓기보다 전자레인지에 몇 분 데우면 전기를 훨씬 적게 쓰게 되요. 각 가정마다 전기밥솥을 안 쓰면 원자력발전소 하나는 줄일 수 있습니다.” 
 
전기 사용을 최소화하는 가구 배치
 
▲불편한 습관의 힘, 전기 적게 쓰기
  
증산동의 이현주 씨 집에는 가정에서 보통 사용하고 있는 청소기, 전기장판, 온풍기, 공기청정기나 제습기가 없다. 이현주 씨 집의 전기요금은 4인 가족에 한 달 평균 14,000원 가량이다. 전력 사용이 적은 비법은 꼭 필요한 전기제품만 사용하는 데 있다. 집 청소는 매일 한번 물걸레질로 한다. 머리를 감은 뒤 수건만 사용해 물기를 없앤다. 적절한 냉장고 사용으로 전력과 식비도 줄인다. 냉동실은 냉기가 안 빠지게 가득 채우고, 냉장실은 최소 전력 사용을 위해 60%만 채운다. 식재료도 필요한 만큼 일정표대로 구입한다. 많이 사지 않으니 음식물쓰레기로 버리는 것도 거의 없다. 
  
“어렸을 때 책에서 환경이 파괴되어 깨끗한 환경에 살 수 없는 지구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경각심도 생겼구요.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의 위기를 아이들에게 물려주면 안 되겠다고 여겨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사용하지 않는 전열기의 플러그 뽑는 일은 가족의 습관이 되었다. 집에서 나갈 때나 잠들기 전에는 냉장고를 제외한 전원 플러그는 꼭 뺀다. 가전제품은 멀티탭에 연결해 켜고 끔이 손쉽게 해두었고, 플러그 하나만 뽑으면 모든 전원이 차단되도록 설치했다. 이사할 때도 전원 잠금이 용이하도록 가구를 배치해 가족 누구나 쉽게 끌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환경 파괴를 줄인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습관이 되었어요. 해보기 전에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일단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몸이 나가요. 자연스럽게 익숙해집니다.” 
 
미니 태양광 설치와 전력량 낮추기
  
신사동 주민 정효정 씨는 베란다에 미니태양광을 설치했다. 서울시 지원에 자비를 보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태양전지판을 시공했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미니 태양광은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고 전기 사용을 줄여 핵발전소를 없애고 이후에 자가발전도 가능하게 합니다.” 
  
태양전지판을 달면 일반 가정에서 한 달에 냉장고 하나 쓸 수 있는 전력이 나온다. 한 달에 최고 260W의 전력이 생산되는데 태양광패널을 단다고 전기세가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태양전지판을 돌리면서 전기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고심하던 정효정 씨는 전력 사용이 높은 전열기의 사용을 줄이기로 했다. 가장 전기를 많이 먹는 전기밥솥을 안 쓰면서 절감효과가 나타났다. 태양열패널로 절감되는 비용과 전기밥솥을 사용하지 않아 줄어든 비용이 합쳐져 전기요금의 누진세 단계가 내려가자 전기요금이 확 줄었다. 전에는 전기세가 4인 가족 한 달 평균 2만 5천원~3만 원가량 나왔지만 태양광 설치와 함께 전기밥솥을 사용하지 않자 전기세가 15,000원으로 줄었다.
  
정효정 씨는 미니 태양광을 설치한 사람들의 네트워크에서도 경험을 나눈다. 태양광 발전으로 재생에너지를 만들며 환경에 관심이 생긴 사용자도 많다. 처음에는 전기세 줄이기로 시작했지만 지속적인 교육과 네트워크 활동을 하다 보니 핵발전소 반대에 관심이 생겼고 환경과 에너지에 대한 홍보와 알림으로 실천이 확장되었다. 
  
“미니태양광은 아파트에서도 개인이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어요. 우리에게 전기밥솥과 에어컨이 당연한 것처럼 언젠가는 태양전지판으로 발전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능성과 용기를 주었어요.”
 
매달 전기 사용량 비교하며 에코마일리지 쌓기
  
구산동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변은경 씨는 11명이 한집에 살고 있다. 중증장애인공동생활가정 ‘민들레울’에서 장애인 8명과 교사 3명이 함께 생활한다. ‘민들레울’에서는 11명이 24시간 거주하지만 서울시 에코마일리지에 가입해 전기와 수도, 가스를 많이 줄여 인센티브로 주는 상품권을 6번이나 받았다. 3년 동안 꾸준하게 전기와 가스 사용을 줄여 나간 셈이다.
  
“이전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며 위험성을 자세히 알았어요.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핵발전소를 없애는 게 우선이라고 여겨 전기 사용을 줄였고 주변에도 알리고 있어요.” 
  
‘민들레울’에서는 전력 사용이 가장 높은 전기밥솥을 쓰지 않는다. 압력밥솥으로 세끼 밥을 짓는데 식사시간이 일정해 큰 불편은 없다. 전기를 많이 먹는 TV와 셋탑박스, 컴퓨터와 프린터를 각각 버튼식 멀티탭에 연결해 버튼만 누르면 전원이 차단되도록 했다. 함께 사는 장애인들도 자러 가기 전에는 꼭 멀티탭의 버튼을 끈다. 미니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전력도 충당했다. 무엇보다 중점을 둔 것은 쓰레기를 줄이고 잔반을 남기지 않는 일이었다. 
  
“태양광만 설치해서는 해결되지 않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는 게 개인이 할 수 있는 큰 역할이라고 여겨요. 전에는 일주일치 식재료를 한꺼번에 구입했는데 많이 사니 많이 버리게 되더라구요. 지금은 2~3일에 한번 메뉴에 맞춰 장을 봅니다. 소비를 줄이면 쓰레기 처리에 드는 비용과 전력, 이산화탄소 배출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변은경 씨는 전기요금 고지서의 전력사용 kW수를 매달 확인한다. 최대한 전력 사용을 줄이고 고지서를 꼼꼼히 비교해 여름에는 최고 420kW까지 사용하던 전력을 300kW대로 줄였다. 미니태양광을 설치한 뒤로는 전력사용량이 평균 200kW대로 감축했다. 
 
“태양광 설치로 재생에너지를 얻는 것만큼 전기 사용을 줄이는 일도 중요해요.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놓고 전기를 많이 쓰면 전기를 더 만들어내야 되니 절전만 잘해도 핵발전소 줄이기는 가능해요.”
     
집에서 전기 사용을 줄인다고 핵발전소가 없어질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매일 쌓이는 일상이 있고, 의지가 있는 다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매일 전기를 줄이면 원자력발전소 하나는 슬그머니 줄어들겠다, 는 게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전기밥솥을 안 쓰고 식재료를 적게 구매하고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도는 불편하다. 편하게 사는 건 당연한 욕구다. 귀찮고 불편한 일을 자처하는 일은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불편함이 습관이 되면 그때부터는 일상이 바뀐다. 대안은 불편한 습관의 힘에서 나오고 매일의 전기 사용 줄이기에서 그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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