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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일기> 고통이 성숙과 성장의 기회는 아닐지….
  • 전경원 / 하나고 해직기자
  • 승인 2017.01.1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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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공부하던 사람은 출처와 진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한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잘 알아서 대처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뜻을 관철할 수 없을 때는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론 의로움을 선택하고도 뜻을 관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벌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많은 경우 ‘유배’라는 형식으로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절해고도나 궁벽한 곳으로 귀양을 갔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유배지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도 아니면 기약 없이 기나긴 유배에서 풀려나긴 해도 재기하지 못한 채 병마와 씨름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독 두 분의 삶이 주목됩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널리 알려진 정약용(1762~1836) 선생님과 근래 세상을 떠나신 신영복(1941~2016) 선생님이십니다. 두 분 모두 20년 가까운 시간을 세상과 단절된 채 보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경우는 18년이라는 세월동안 유배를 살았고, 신영복 선생님은 20년 세월을 감옥에서 세상과 유리된 채 보냈지요. 두 분이 보낸 시간은 그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었을까요? 또 우리는 그분들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그것이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유배기간이 길어지면 스스로 꿈을 포기한 채 삶의 의지를 놓아버립니다.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고립되었다는 상실감이 삶의 의지를 상실하게끔 만들었지요. 하지만 두 분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는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이는 인식 자체가 남달랐습니다. 다산은 유배지로 떠나게 되자 그동안 공사가 다망하여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마음 놓고 책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됐다며 기뻐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에서 노촌 이구영이라는 한학자를 만납니다. 이때 유교 경전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지요. 이곳에서 만난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평생 스승으로 삼을 수 있었던 마음가짐. 스승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 경제학을 전공한 당신에게 내로라하는 한학자를 능가하는 통찰력과 깨달음을 선물한 것이겠지요.

두 분이 걸으셨던 삶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며 크고 작은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것인가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저 역시 학교로부터 해임을 통보받고 억울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이 겪었던 고통의 시간에 비하면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은, 고통의 수준에 들지도 못할 정도이지요. 그래서 두 분이 먼저 몸소 보여주신 삶의 이정을 따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러저러한 일들과 게으름 탓에 보고 싶었지만 못 보았던 책들도 실컷 읽고 쓰고 싶었던 글도 쓰며 소일하고 있습니다. 걷기도 많이 하고 때론 달리기도 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나름 알차게 보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물론 늦잠도 자고요. 이렇듯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야 중요한 건강도 지키고 내실도 다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해직의 부당함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제소하여 판단을 기다리며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교육정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시(詩)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사색과 산책의 중요성을 마음껏 느끼며 지내고 있습니다. 소소한 깨달음과 통찰이 내밀한 기쁨을 선사합니다. 가장 행복한 것은 소중한 분들과의 인연이 허락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파편화된 개인들의 일상만이라고 생각했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깨어있는 분들의 소중한 연대를 통해 희망이 다시 살아나고 있음에 감사드리고 있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분들이 세상엔 엄청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도 배우고 있습니다. 함께 비를 맞겠다며 흔쾌히 손을 내밀어 주신 은평지역주민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더불어 숲이 되고자 애쓰시는 분들과 함께하며 결코 세상이 어둡지만 않다는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제게 공익제보와 그로인한 탄압과 해직 등 고통과 시련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린 셈입니다. 그러니 고통이 성장과 성숙의 기회였던 셈이지요. 시련이 없었다면 결코 맛볼 수 없었던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던 삶의 이치를 깨닫고 있는 요즘. 이것이 행복 아닐까요? 제 삶에서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의미의 재충전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입니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위로 떠 있는 섬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바닷물을 모두 없애버리면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이 땅과 저만치 멀리 떨어진 섬조차도 온전한 하나의 땅덩어리로 이어졌음을 알겠구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던 게로구나. 풀 한 포기 구르는 돌멩이조차도. 새삼스럽고 나와 무관치 않습니다. 살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전경원 / 하나고 해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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