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원도 평창의 가리왕산으로 전공 답사를 갔다. 도착한 곳은 알파인 스키 공사 현장이었다. 우리 일행을 환경운동연합의 김경준 국장이 맞이해 주었다. 그는 500년 이상 된 원시림이 2주간의 올림픽을 위해 파괴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산 중앙을 마치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듯이 밀어버린 휑한 가리왕산을 직접 보니, 마음이 먹먹했다.

올림픽은 도시 개발의 효과적인 수단이다. 마라톤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땄던, 1992년 올림픽 개최지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한 적 있다. 많은 볼거리와 공공 인프라 시설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는 올림픽을 치르기 전 바르셀로나는 불결하고 위험하며 낙후된 도시였다며, 올림픽 개최가 바르셀로나 발전의 마중물이 됐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88 서울올림픽과 2002 월드컵 덕을 톡톡히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평창은 상황이 다르다.

올림픽 관련 기사 가운데 향후 지구온난화로 동계올림픽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보도가 들려왔다. 현재 기후변화가 겨울 스포츠의 지속가능성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스키장은 한철 장사다. 올림픽 열기가 식은 후 스포츠 활성화 및 경기장 사후관리에 있어 강원도의 기후·환경조건은 절대적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소요되는 13조8671억원+α라는 막대한 비용에 대한 혜택이 적어도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야 수지타산이 맞다. 그런데 현 기후 추세라면 강원도에서 반철 장사가 될 공산이 크다. 겨울 스포츠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큰 만큼 동계올림픽 유치 희망 도시 수도 줄고 있다. 강설량이 많고, 눈질이 우수한 알래스카나 스칸디나비아 정도의 고위도 도시가 아니고서는 동계올림픽 유치는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1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인천 시민에게 안겼다. 경비절감 노력에 사후 활용방안까지 꼼꼼히 검토했다던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조차 적자를 면치 못했다. 평창에는 대한민국 1년 정부 예산인 386조원의 3% 이상의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평창조직위는 사후 경기장 활용방안이 미흡해 최근 이례적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지적까지 받았다. 정부가 약속했던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지역의 복원 및 활용 계획 등 대다수 시설에 대한 대응 방안이 허술하다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국민 세금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수준이면 심각한 직무유기다. 올림픽 정신이 아닌 부채와 환경 파괴만 남길 것 같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탈리아 로마 시장은 최근 1960년 로마올림픽의 빚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선거공약이던 2024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포기했다. 64년이 흘러도 메우기 힘든 적자 행보에 이탈리아인들의 자존심은 상했을지언정 현실을 반영한 옳은 선택이었다.

총사업비 1095억여원이 소요되는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장은 올림픽 후 일반인들은 사용조차 할 수 없는 난코스라 한다. 스키장 활용도가 매우 낮은, 3일 천하의 활강 개발 공사라는 비판에 귀 닫아서는 안된다. 그 대안으로 특정 종목을 분산 개최하자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연간 100억여원이 소모될 경기장 사후관리 비용을 생각해서라도 원점에서 검토해봐야 한다. 평창과 유치 각축전을 벌였던 전북 무주와의 분산 개최 의견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민관산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처럼 지속가능한 가치를 후대까지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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