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과 함께 짓는 마을학교 10]

▲동네에 말걸기라는 주제로 허수아비를 만들고, 인삿말을 써넣어서 말걸기를 한다.

공간을 내밀하게 주시해 보면 실재 보이는 것 보다 더욱 풍성하다. 공간에는 속살이 넓게 퍼져있고 잘 보이지 않는 근육이 뻗어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공간은 더 할 나위가 없지만, 건축가가 만들어 놓은 공간에는 감추어진 내면성이 있어서 그것을 읽어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란 벽과 지붕으로 둘러쳐 있는 안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벽 밖에서 무심한 듯이 비어있는 곳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공간이다. 인디언이 사는 동네는 뉴타운이라 백퍼센트 아파트라고 불리우는 건물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래서 호기심은 아파트 외부공간으로 향했다. 사적 공간인 벽속의 주택 내부 말고, 건물과 건물사이에 존재하는 외부공간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벽속의 공간은 입주자 나름의 사용법으로 이미 가득차서 팽창하기 직전이지만, 외부에 곳곳에 펼쳐진 공간은 누군가가 내용을 채우면 마을의 것이 되지 않을까?

거리를 걷다가 만나는 아름다운 건물이나 잡지 속에 게재된 그럴듯한 건축물은 실상 벽으로 싸여져 있고 그 외벽의 구축에 의해 1차적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외형의 모습에 대한 아름다움도 즐거움을 주지만, 텅 빈 공간에 사람의 숨결과 발자국이 그려내는 미학은 날것으로 펄떡거리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별 거 일까! 땅이라는 주어진 지형과 울타리 안에서 동네식으로 해석하고 거기에 우리의 동선을 그리면 인문학이 된다. 이른바, 누군가가 만들어 준, 아니 제공한 이 공간을 우리의 색깔을 입히기로 하였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우리들만의 추억의 보물지도를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 놀기, 상상하기, 공부하기를 하기로 계획하였다. 동네에 말을 걸고 이야기를 붙이면 동네 문화가 만들어지고 사람에 기운을 입히면 동네 인문학이다. 그래서 우리 동네 인문학은 ‘걸어(語)다니는 인문학’이다.

“인문학이 걸어 다닌다고요, 인디언?”, 
“네, 재밌게 놀면서 동네에 우리 눈에만 보이는 낙서로 갈겨대는 거지요.” 
“책으로 나오나요? 인문학인데...” 
“아뇨, 마음속 깊이 책갈피에 심어두는 거지요. 글쎄, 한 10년 정도 지나면 책이 되겠지요. 하하”

전체적인 주관은 아버지들 모임인 아버지회에서 진행하기로 하고, 마을에 사는 예술가인 ‘르봉’이 인문학강좌 대표를 맡아주기로 하였다. 관심있는(?) 주민 몇 명의 운영진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재미있게 놀 궁리를 하면서 기획을 하기 시작하였다. 격주로 토요일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 만나서, 동네를 펼쳐놓고 인문(人文)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동네를 거닐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동네 구석구석을 알기 위한 ‘동네를 거닐다’ 이다. 프로그램의 취지와 요령을 설명한 후에 가족이 한 모둠이 되어서 동을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지도를 만든다. 우선 예비 학습으로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라는 강의를 마을에 사는 송작가가 사전 강의를 해주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밑그림이 있는 마을지도를 나누어 준다. 동네 곳곳에 자리한 10여개가 넘는 놀이터, 다리, 공공건물, 예술장식품, 공원이나 실개천, 그리고 큰나무 등 장소성을 나타낼 수 있는 대상을 위치 표기해 본다. 사진을 찍어서 기록하고 이름 짓기를 한 후에 다시 강의실로 돌아와서 발표를 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동네에 말 걸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동네에 말 걸다’이다. 솟대와 허수아비를 만들어 곳곳에 설치하여 무심히 지나다니는 마을사람들에게 서로 인사하며 말을 붙이는 인상을 심어주는 프로젝트 놀이이다. 우선 가족단위의 모둠별로 나무로 솟대 만들기와 천으로 허수아비 만들기를 한다. 솟대는 초등학교 정문과 후문에 설치하여 우리 교육의 안녕과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그리고 제각기 솜씨를 부려 만든 허수아비는 미리 정해진 마을 일정 장소의 특징을 파악하여 앞가슴에 문구(인삿말)를 써넣어서 말 걸기를 시도 한다. 허수아비는 목재 뼈대는 운영진이 미리 만들어 놓고, 각자 집에서 입지 않는 헌 티셔츠와 모자를 준비하여 현장에서 완성한다. 뱃속은 솜을 넣어서 볼륨감 있는 풍채를 표현한다. 문구는 모둠원들이 장소에 알맞은 인사말을 써넣어서 완성하고 정해진 장소에 설치한 후 돌아와서 성과를 발표하고 공유하였다.

동네에서 놀다

세 번째 프로그램은 ‘동네에서 놀다’이다. 첫 번째 프로그램에서 지도를 만들면서 확인된 장소를 펼쳐놓고, 그 곳에 적절한 놀잇거리를 정한다. 놀이를 할 수 있는 다섯 군데와 다섯 가지의 놀이를 정했다. 이름하여 ‘은빛동네 5종경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여 정해진 규칙만큼 목표를 달성하면 기록장에 통과 싸인을 받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게 되는 릴레이식 경기이다. 딱지치기, 제기차기, 투호놀이, 단체줄넘기, 하천숲 걸으며 숨은 단어 찾기 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모두 마치고 나면 ‘동네 한바퀴’가 완성되는 놀이이다. 통과 횟수는 저학년과 고학년 그리고 어른이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예를 들면 제기차기는 1,2학년은 3회, 3~4학년은 5회, 5~6학년은 10회, 여자어른은 7회, 남자어른은 15회 이상을 차야 통과 싸인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횟수를 모두 채우지 못하는 특수한 경우는 심판이 적절하게 판단해서 통과시키기로 하였다. 상품은 먼저 들어오는 참가자 순서대로 골라서 가질 수 있는데, 그 상품들은 실제 이 놀이에 참가한 사람들이 집에서 애장품 하나씩을 가져와서 제출하여야 참가신청이 된다. 내용으로 보면 물건 바꾸어 갖는 알뜰시장이나 녹색장터의 개념이다. 20여명의 동네주민과 교사들이 자원하여 접수, 심판 등을 맡아 행사를 진행하였다. 행사를 마친 후 평가회에서 ‘가을맞이 동네 골목운동회’를 매년 정례행사로 치르기로 뜻을 모으는 결실이 있었다.

동네에서 공부하다

네 번째 프로그램은 ‘동네에서 공부하다’이다. 마을살이를 주제로 특강을 청해 듣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자신과 가족 그리고 혁신교육을 성찰을 시간으로 ‘1박2일 인문학 캠프’를 진행하였다. ‘서울에서 마을살이’라는 주제로 짱가 유창복샘이 1차시를 맡아주었고,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로 조현설교수가 동네이야기와 연결하여 상상력을 키워주는 순서로 2차시를 채워 주었다. 동네 인근에 숙박 장소로 이동하여 저녁식사 후에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만들기’와 내년 ‘가족달력 만들기’를 개인 및 가족 단위로 진행하면서 인문학의 밤을 이어갔다. 그렇게 뒷풀이의 밤이 이어졌고 마을과 상생하는 교육을 주제로 열띤 토론의 밤이 무르익고, 제각기 마음속에 마을 하나씩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동네를 이야기 하다

다섯 번째는 ‘동네를 이야기하다’ 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마을은 무엇인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존의 마을과 어린 시절 내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고향 마을을 꺼내놓고 ‘마을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어진 도화지에 마음속의 마을을 그리고, 서로의 옛 마을과 상상하는 마을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금씩 각자가 그리는 마을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을의 풍경’을 그려내거나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속에 가족이 있었고, 학교가 있었고, 동무들이 오롯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났다. 차이는 있었지만, 참가자들이 회상하는 마을과 꿈꾸는 마을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부터 이렇게 형상화된 마을을 우리가 만들어가자는 결론을 지으며 제각기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차례는 ‘동네를 담다’라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마을에 대하여 생각하고 그려본 것들을 가슴에 담는 과정이다. 마을 곳곳을 촬영한 사진을 공유하고, 마을지도를 완성하였다. 완성된 마을지도는 인쇄를 하여 학교 정문옆에 게시판 형식으로 세워두고 모든 동네 아이들이 익히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쉬운 점은 마을사진이 많이 제출되지 않아서 콘테스트는 하지 못했지만, 참가자 모두의 마음속에 장소 하나씩을 들여놓았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끝마친 동네인문학은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동네인문학의 시즌2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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