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뮤지컬 공연을 잘 마치고 맛있는 식사를즐기는 작공 청소년들

내가 작은공간(이하 작공)에 처음 와서 만난 아이들은 4명의 가출 청소년이었다. 가출 청소년은 내가 지금껏 만나왔던 이주노동자와 난민, 또는 제3세계 빈곤아동, 혹은 독거노인처럼 내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부류였다. 가출 청소년들의 삶은 마치 난민들처럼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누군가에게 늘 쫓기는 듯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자퇴했거나 유급 위기에 놓여있었으며, 모두 가출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갖고 있었다. 가출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제때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조금이나마 번 돈으로는 겨울에 난방도 잘 안 되는 허름한 고시원비를 내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어, 작공에서 함께 먹는 한 끼의 식사가 하루 끼니의 전부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모두 가출 생활을 마감하고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얼핏 보면 작년과 비슷한 삶을 사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입시공부를 하기도 하는 등 보통의 평범한 청소년들과 같은 모습으로 서서히 변모하고 있다. 언제 가출이라는 방황을 했냐는 듯 열심히 살아가다가, 마치 시집간 딸이 친정에 놀러오듯 작공을 찾아와 편히 앉아 있다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대견함에 울컥 하기도 한다.

추워도, 배고파도 작공에서는 행복하다는 아이들

그 이후에는 학교 밖 청소년 혹은 학교에서 소위 사고뭉치로 불리는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 녀석들도 만만치가 않다. 이 아이들의 사정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결국 잘 살펴보니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딘가가 불충분하고 그로 인해 깊은 상처를 적어도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상처 입은 친구들이 작공에 모이면 서로의 상처를 자신도 모르게 보듬어주거나 치료해주며 함께 서로를 성장시키는 순작용이 일어난다. 비록 이 아이들의 학창시절 기록지에는 소싯적 재미로 했던 일탈행위들이 줄줄이 꼬리표처럼 붙어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일이 많겠지만, 어느 덧 하나 둘 깨닫게 되는 것들이 서로에게 전염되며 아픈 상처 위에 분홍빛 새살을 덧입히고 있는 중이다. 이 녀석들은 따뜻한 집에 들어가 자려고 누워있다 보면 어느새 우울함이 찾아와 몸은 편해도 마음은 불편하지만, 작공에서는 추워도, 배고파도 행복하단다. 집에서는 부모가 보내는 관심도, 조언도 모든 것이 부담스럽다는 놈들이, 작공에서는 먼저 우리에게 끝도 없이 말을 거는 바람에, 오후시간엔 행정업무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학교와 가정에서는 항상 반항하던 아이들이 작공의 선생님들에게는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작년까지 작공에서는 오는 아이들을 막지 않고 전부 맞이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 좁은 작공 안에는 매일 50~60명의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밥을 해먹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뒷정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결국 작공의 선생님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과 설거지만 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이래서는 작공은 그저 무료 급식소에 불과할 뿐 당초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진지하고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멤버쉽을 통한 운영이었다. 이는 많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보다는 아이들의 질적 성장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30-40명의 청소년이 함께하고 있어 여전히 작공은 소란스럽다.)

그래서 올해부터 작공에 들어오고는 싶지만 멤버쉽 없는 아이들은 작공 근처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작공의 선생님에게 허락 받지 못한 불청객의 신분이기 때문에 며칠 동안은 그저 작공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친구들을 구경하고, 그러다가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어색한 인사를 몇 번 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 혹은 열흘 정도가 지나면 어느새 슬쩍 들어와 구석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기 시작한다. 가끔 저 아이가 우리 멤버였는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대게는 슬며시 눈을 감아주곤 한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작공에 발을 내딛은 아이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꾸준히 작공에 발을 들인다. 최근 떠돌아다니는 문구를 인용하자면, 작공을 안 와본 청소년은 있어도 작공에 한 번만 온 청소년은 없다고나 할까?

청소년들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 교사들은 가벼운 인사정도만 건넨다. 처음이라고 요란스럽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알고 지낸 사이처럼 정말 가볍게 말이다. 그리고 몇 번 얼굴이 익으면 자연스레 안부를 묻는다. 부담스럽지도 너무 생뚱맞지도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기존에 있던 아이들과 함께 밥도 먹고 프로그램도 함께 한다. 그러고 나서 어느 정도 우리에 대해 편안히 느낀다고 생각되면 속 깊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방적으로 취조하듯 딱딱하게 진행되는 개별면담이 아닌,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쌍방향으로 주고받는 소통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교사는 아이 편이 되어주어야만 한다. 이렇게 속 깊은 이야기가 진행된 후에는 아이들은 스스로 작공에 찾아온다. 와서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이 부당하고, 어떤 일이 속상하고, 어떤 일이 뿌듯했다며 묻지 않아도 술술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를 듣는 교사들은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인 수용과 공감으로 아이들을 지지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칼로저스의 상담기법이 괜찮은 상담기법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하는 중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작공 교사들의 노력과 태도가, 가정과 학교에서 불량해 보이는 아이가 작공에서는 태도를 바꾸는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와 가정에서도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구성하는 70% 이상은
물이 아닌 아이들 한 명 한 명

물론 철부지 아이들과 함께 작공 활동을 하다보면 하루하루가 슬럼프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슬럼프가 쌓여 결국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되고 행복이 된다. 아이들로 인해 슬럼프에 빠지지만 아이들이 나를 슬럼프에서 꺼내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달달한 사탕하나를 꺼내 내 입에 물려주고 쿨하게 돌아간다. 요 며칠 더 이상 밥을 하지 않기로 했던 작공에서 다시금 밥이 생겨나며 무질서한 모습이 재현되고 있어 나는 다시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오늘 특별하지도 않은 주먹밥을 맛있게 먹고, 시험 전 나에게 짜증을 폭발했던 아이가 시험이 끝나고 멋쩍은 느낌을 풀풀 풍기며 설거지를 해주고, 퇴근을 못하고 야근하는 모습을 걱정해주며 가는 쿨한 녀석을 보며 소소한 행복을 음미하고 있다. 인간의 몸은 70% 이상이 물이라는데, 요즘 나를 구성하는 70% 이상은 물이 아니라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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