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학교 7기 기초 과정을 수료하며

 ‘여성주의’ 이름에 대한 편견과 궁금증이 있었다. ‘많고 많은 단어 중에 왜 하필 여성주의일까?’

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성들의 이야기, ‘오빠는 필요없다’를 쓴 저자이자 여성학 박사인 전희경(시타) 교수는 “세상에는 수많은 약자들이 있다.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 등등…… 하지만 여성들은 오랜 세월 제도라는 사회 구조 속에서 억압 받으면서 약자라는 인식 없이 차별받아온 계급이다. 여자 사람 개개인을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지 않고, 재산이나 역할로만 인식해 온 역사, 이분법적인 성역할 규정에서 늘 남성보다 하위의 가치로 평가하는 고정관념으로 약자 중의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을 위한 학문이자 실천이 여성주의”라고 살림의료사협의 여성주의학교 7기 기초과정의 포문을 열었다. 

평등에 대한 더 넓은 상상력

평등에 대해 더 넓은 상상력을 갖기 위해서는 개별 여성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20대 취업준비생부터 50대 청소년상담 활동가까지 기혼, 비혼 여성들이 스무 명 남짓 모여 ‘현대한국여성’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설명할 수 없는 여성 개개인의 인권(몸과 마음)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는 시간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사회적 약자(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이지만 딱히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없어서 사용함)이기도 하고 특권 세력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필자는 현재 남성위계중심의 가부장제 가정에서 여성이라는 약자이지만 성소수자들 입장에서 볼 때 이성애자로서 차별받지 않는 특권 계층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권이란 차별받지 않고, 또 차별받을 수 있다는 불안함을 몰라도 되는 특권이다. 한 장애인이 ‘지하철 화재 발생 시 대피요령’ 영상을 볼 때마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그 어떤 지하철역에서도 매일 안내하는 화재 대피 영상에 장애인의 대피방법은 없다는 것을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비장애인의 대피요령만 안내하는 지하철 영상을 보면서 죽음의 공포까지 느낄 필요가 없는 우리는 ‘몰라도 불편하지 않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가부장제

‘여성주의만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어렵지만, 여성주의 없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나’의 스토리(경험과 생각)를 여성주의에 녹여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범주를 낯설게 보며 ‘세상에 여자와 남자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보수주의와 가부장제를 맹렬하게 비판해 보았다. 그리고 ‘왜 불평등해야 로맨틱할까? 사랑의 각본, 친밀성의 조건을 따져 보며 미디어가 남녀성별분업과 남성다움, 여성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세뇌시키는데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분리하면서 가족주의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일방적인 희생이 강요되어 온 가족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보았다. 교과서에서는 ‘가정=휴식처’라고 가르친다. 누구의 입장에서 가정이 휴식처인가? 전업주부의 입장에서 보면 가정은 공적 영역이다. 주부로서 해야 하는 업무와 역할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가정=휴식처’라는 도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기득권인 남성의 입장에서나 허용되는 말이다. 휴식처와 같은 가정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엄청난 가사노동을 하는 이의 노동의 가치가 직접 소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저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계급과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학문이자 실천

여성학 박사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페미니즘이 저항이론이나 저항운동이 아니라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운동은 남자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상대화시키자는 것이다. 남성의 삶이 인간 경험의 일부이듯,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도 인간 역사의 일부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여성주의에 대한 나의 편견’이 제대로 깨졌다. 나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사상’이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은 다양한 계급과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학문이자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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