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12

일이 있어 조그마한 공원에 들렀다. 어떤 나무들이 살고 있는지 찬찬히 훑어보다 느릅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였다. 전체 생김새를 살펴보고 나서 수피가 어떤지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잎의 생김새를 관찰하였다. 느릅나무임에 틀림없다. 느릅나무 종류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잎이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가 비대칭인 게 특징이다. 어떤 이는 짝궁둥이처럼 생겼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느릅나무, 참느릅나무, 당느릅나무 등이 있으나 모두 수피가 너저분하고 잎이 비대칭인 것이 특징이다.

이런 느릅나무는 참으로 요긴한 나무이다. 우선 대표적인 구황식물이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지낸 어른치고 느릅나무 줄기를 꺾어서 그 속살을 맛있게 먹어본 추억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느릅나무 껍질 이야기는 평강공주와 온달의 이야기에도 나온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온달과 결혼하기 위해 무작정 찾아온 평강공주에게 앞을 못 보는 온달의 노모가 하는 말이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보잘것없어 귀인이 가까이 할 사람이 못 됩니다.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보통이 아니고 그대의 손을 만지니 부드럽기가 솜과 같으니 필시 천하의 귀인인 듯합니다. 누구의 속임수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 내 자식은 배고픔을 참다못해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려 산 속으로 간 지 오래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라고 한다.

조선 명종 때 간행된 ‘구황촬요(救荒撮要)’에도 흉년에 대비해 백성들이 평소에 비축해 둘 것으로 솔잎과 함께 느릅나무 껍질을 들고 있다. 느릅나무로 인해 목숨 부지한 생명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 중에 우리 조상님이 계실지도 모를 일. 느릅나무를 다시 만난다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야할 듯싶다.

부스럼이나 종기가 난 데에 느릅나무 뿌리 껍질을 짓찧어 붙이면 잘 낫는다

느릅나무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영스러운 나무라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열여섯에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산 김일훈 선생은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20여년을 묘향산에 숨어 살았다. 그때 그곳 사람들이 유달리 건강하고 병 없이 장수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살펴본 결과, 느릅나무 껍질을 늘 먹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느릅나무 껍질을 율무 가루와 섞어 떡도 만들어 먹고 옥수수 가루와도 섞어 국수를 밀어 먹는데, 그들은 상처가 나도 일체 덧나거나 곪는 일이 없었으며 난치병은 물론 잔병조차 앓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도 있다. 옛날 한 젊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산길을 가다가 아들이 비탈에서 굴러 떨어져 엉덩이 살이 찢겨 나가고 심하게 다쳤다. 상처는 낫지 않고 점점 심하게 곪아서 마침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어머니 꿈에 수염이 하얀 노인이 나타나서는 ‘아들이 죽어 가는데 어째서 잠만 자고 있느냐’면서 야단을 치더니 대문 앞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의 껍질을 짓찧어 곰은 상처에 붙이도록 하라’고 일렀다. 놀라서 깨어난 어머니는 대문 앞에 있는 나무의 껍질을 조금 벗겨서 짓찧어 아들의 상처에 붙이고 천으로 잘 싸주었다. 과연 며칠 지나지 않아 곪은 상처에서 고름이 다 빠져나오고 새살이 돋기 시작해 한 달쯤 뒤에는 완전히 나았다. 아들의 곪은 상처를 낫게 한 것이 바로 느릅나무다.

오래 전 매형이 암으로 투병하였을 때다. 양방으로는 백약이 무효라 마지막으로 민간요법에 매달릴 때다. 느릅나무 껍질이 항암성분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에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온 기억이 난다. 그곳은 스키장이 들어설 예정지였고, 현장을 가보니 아름드리나무들이 전부 베어져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무 하나하나를 살펴보다가 느릅나무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 매형이 생각났고 체면불구하고 껍질을 벗겨 온 것이었다.

느릅나무는 이 외에도 여러 쓰임새가 있다. 목재로서도 훌륭하다. 느릅나무 하나쯤 알아두면 앞으로 닥칠 ‘장기비상시대’에 요긴한 도움이 될 것이다.

참, 느릅나무란 이름은 ‘느름’나무에서 유래된 것 같다. 느름이란 한없이 늘어진다는 ‘느른히’에서 온 말로 껍질을 벗겨서 물을 조금 붓고 짓이겨 보면 끈적끈적한 풀처럼 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이름이 아닐까 싶다.

活人靈木(활인영목)이라는 느릅나무가 병이 깊은 우리 사회도 치료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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