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건드리면 외이도염이나 고막손상 일으켜

가을이 되어 피부가 건조해지면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면, 왠지 귓속을 살살 긁어주고 싶은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면봉이나 귀이개를 들고 외이도를 감질나게 긁으면서 상념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가을의 정취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귀지는 함부로 파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귀지는 원래 자연적으로 귀 밖으로 배출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귀지는 항상 파는 사람이 파는데요, 귀지를 심하게 파는 것을 정신과에서는 하나의 중독 증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귀지를 파는데서 오는 시원함, 쾌감과 약간의 통증에까지 중독되어, 외이도에 염증이 진행되어도 (혹은 염증이 진행될수록) 계속 귀지를 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귀지는 외부의 먼지가 귀 속의 잔털에 붙어 있다가 외이도에서 생성되는 피부분비물과 섞여서 생기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귀지는 대부분 마른 귀지이지만, 10% 정도는 젖은 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피부분비물의 조성이 달라서 생기는 현상으로, 병이 아닙니다. 이런 귀지는, 마른 귀지이든 젖은 귀지이든 자연적으로 조금씩 귀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간혹 귀 안에서 생성되는 귀지의 양이 많거나, 귀 안에 털이 너무 많은 경우, 외이도가 좁은 어린 아이의 경우 귀지가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데요, 이런 경우에만 귀지를 안전한 방법으로 제거하면 되겠습니다. 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귀이개는 날카롭고 오염되어 있으므로, 외이도염이나 고막 손상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1. 성인이라면 한 달에 1~2번 정도, 깨끗한 면봉을 외이도의 입구에 걸친 후 한 바퀴만 돌린다는 느낌으로 귀안을 훑어주세요.

2. 절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면봉이나 귀이개로 귀지를 파내지 마세요. 아이들은 구멍에 뭔가를 넣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므로, 엄마아빠가 귀이개나 면봉을 쓰는 것을 본 아이들은 곧 자신의 귀에 뾰족한 것들을 찔러 넣곤 합니다.

3. 외이도가 좁은 아이들의 귀를 집에서 파려고 하지 마세요. 병원에서는 소독된 깨끗한 기구를 사용하여 귀지를 빼주거나, 귀지 녹이는 약을 써서 제거해 줍니다.

4. 평소에 한 번씩 아이들의 귀 안을 들여다봐 주세요. 집에서 귀지를 파내는 것은 좋지 않지만, 평소에 아이의 귀를 한 번씩 들여다볼 필요는 있습니다. 간혹 귀지가 귀를 심하게 막아 청력감소까지 생기는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진료실에서 아이들의 고막을 보기 위해 귀지를 파고 있으면, 옆에 있던 엄마아빠가 "집에서 파지 말라기에…"라고 하면서 부끄러운 듯 말끝을 흐리는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럼요, 집에서 파기 힘들어요. 집에서 파지 말고요, 가끔 이렇게 아플 때 병원에 오면 고막을 들여다보기 위해 주치의가 파 줄 겁니다"라고 답합니다. 아이들 귀에 귀지가 너무 크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혹시 제가 놀리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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