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꿈을 응원합니다

카트 한 가득 박스를 싣고서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오르막길을 힘겹게 걷고 있는 70대 할머니를 보면 당신은 달려가 카트를 밀어주는가, 아니면 가던 길을 계속 가는가? 종로 뒷골목 술집에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삐뚤 빼뚤 손 글씨로 쓴 전단지를 내밀며 천원에 껌을 사달라고 할 때 당신은 선뜻 껌을 사주는가, 아니면 카드 밖에 없다고 깔끔하게 거절하는가?

당신의 도덕성 혹은 이웃에 대한 관심도를 측정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 아니다. 측은지심을 시험하기 위함도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단련된 고수들이지 않는가? 내가 순간 도와준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구조적인 개선이 없는 한 순환일 뿐, 안 됐지만 각자에게는 각자의 인생이 있는 법, 나는 그나마 참 다행이구나 저런 인생이 아니어서… 아마 이 중 하나 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느 누구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는 것이다. 이는 소소하지만 명징한 사실, 인간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2013년 3월 광화문 (사진제공 : 초록캠프)

여기,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의 꿈을 응원하며 이들과 함께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우리 은평구에 있다. <초록캠프>와 <건강한 밥집>. 엄마와 자식처럼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초록캠프>와 <건강한 밥집>은 모두 '초록 봉사대'의 가슴에서 태어났다. '초록봉사대'는 98년부터 중증 장애인의 재활치료를 위한 차량 이동봉사를 중심으로, 중증 장애인 이동과 인식개선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온 비영리 민간 봉사단체이다.

올해로 16년, 갓난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시간이니 만만치 않은 시간이다. 그 사이 '초록봉사대'는 새로이 ‘사단법인 초록’을 조직, 중증 장애인을 위한 더욱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12년에는 마을기업인 ‘건강한 밥집’을, 그리고 이듬해 건강한 밥집과 중증 장애인의 주간보호센터를 연계하여 ‘협동조합 초록캠프'를 운영하게 되었다.

초록봉사대에서 초록캠프, 그리고 또 마을기업이라니? 언뜻 연결고리가 느슨해 보인다. <초록캠프> 김동현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 건강한 밥집은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단법인 초록에서 시작된 안행부 마을기업입니다. 초록을 이용하시는 중증 장애인 어머니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드리려 하였고, 무엇보다 하루에 단 몇 시간 만이라도 ‘장애’라는 단어를 잊고,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경험이 없어 자꾸만 뒷걸음질 치시는 어머니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이템이 ‘밥’이었습니다. 또한 어머님들의 수입을 드리며, 동시에 다른 곳에서 일하며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시작하였습니다."

▲2014 서울시 지원 장애인과 함께 하는 다문화교실 (사진제공 : 초록캠프)

초록 봉사대 활동 과정에서 늘 문제가 된 것은 ‘밥’ 이었다 한다. 빠듯한 돈에 열다섯 명 정도의 사람이 밥다운 밥을 먹을 순 없을까? 행복한 봉사에 밥도 편안할 순 없을까? 중증 장애아를 돌보느라 자신을 잊고 사는 어머니들에게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잠깐의 휴식과 자기 손으로 돈을 버는 기쁨을 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밥집의 수익을 봉사대 장애인 처우 개선에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이 고민을 하던 중 초록인들은 마을기업이라는 지원시책을 접하고 지원을 받아 마침내 밥집을 연다. 은평구청 앞, <건강한 밥집>은 이렇게 탄생한 마을기업이다.

물론 순탄하지 않았다. 유기농 식자재에 화학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다는 원칙때문에 식재료비는 음식값의 50%를 넘어섰고, 장애아를 둔 어머니들이 시간을 나누어 운영하기 때문에 비장애인 1명을 종일제로 고용하는 것보다 비효율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러모로 자본의 논리에 철저히 위배되는 경영이다.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느리더라도 함께간다’는 소신을 뚝심있는 초록인들은 굽히지 않았다. 이제 밥집 운영 3년 째, 국산 재료에 천연 재료만으로 맛을 내는 밥이 입소문을 타면서 <건강한 밥집>은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흑자로 전환하였고, 처음의 약속대로 수익금 전액은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인 ‘초록 캠프’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그럼 <초록캠프>는 어떤 곳일까? 밥집을 열고 보니 아이들이 문제였다. 어머니들이 시간제로 밥집에서 일하는 동안 장애아들을 돌볼 사람과 공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장애아들은 초록봉사대 사무실에서 기다리며 사무실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했다. 한동안 이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되다가 2012년 다행이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공간지원 사업 공모에 서류를 제출하여 선정되고 만들어진 것이 중증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인 <초록캠프>이다. <건강한 밥상>과 <초록캠프>는 중증장애인과 가족, 봉사자, 그리고 정부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유쾌한 스텝을 밟아가는 아름다운 모범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장애인들이 살아갈 곳은 침침한 골방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바로 여기

김동현 대표는 힘주어 말한다. 대중매체에 그려지는 장애인은 늘 두 유형이다. 초인적 힘으로 극복한 슈퍼맨이거나, 밝은 사회 건설을 위해 배려해야 할 비참한 존재, 이 두 가지로 스테레오 타입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애를 극복한 비범한 존재가 되어야만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코믹한 세태를 비판한다. 장애인들이 살아 갈 곳은 침침한 골방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바로 여기이며, 장애인은 잠시 조명을 받다 잊혀지는 일회적 프로그램의 수혜자 같은 사회적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당당하게 도움을 청하며 함께 살아갈 존재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초록은 장애인들에게 '세상 속에서 이들의 자리를 찾아주고 싶다.'고 말한다. 공연장만 가도 장애인들을 위한 자리는 휠체어를 움직이기 편한 자리라는 이유로 좌석의 맨 뒤 입구근처, 또는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 출입구에 가까운, 후미져 보이지 않는 자리들 뿐이다. 비장애인이 앉아도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자리가 대부분이다. 김동현대표는 기왕이면 약간의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좋은 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불편하고 안보이는 곳은 장애인들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의 자리는 보이지도 않을 구석진 자리가 아니라 바로 여기, 공연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좋은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초록인들이 바라는 세상은 특별한 세상이 아니다. 장애인들이 지나가도 그 상황이 특별하지 않은 사회, 장애인들이 편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세상이다. ’98년만 해도 휠체어 보급률도 낮았고 장애인 가족 역시 수치스러워하며 외출을 꺼렸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세상 나들이를 하기 힘들었단다.

▲2014년 5월 초록캠프 주간보호센터 별빛캠프 (사진제공 : 초록캠프)

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장애인 외출도 많이 나아졌고 사람들도 더 이상 구경거리로 삼지는 않으니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셈이다. 지하철 계단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는 것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도 여전히 힘들고 불편하지만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불편을 자주 보게 되고, 어떻게 도와야 하는 지를 배우게 된다면...... 도움을 청하는 장애인들의 손을 편하게 잡아 줄 수 있는 날이, 저런 불편함이 있으니 시설을 고쳐야겠구나 하고 공감하며 시정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초록인들을 대표해서 김동현 대표는 말한다. "장애인이 지나가도 아무렇지도 않을 사회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한 세대는 걸립니다. 우리는 지금처럼 재미있는 것을 하면서 세상에게 보여주고, 또 힘겨워 하는 것도 보여주고....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달라지지 않겠어요?" 점점 자원 봉사가 사라지고 유급봉사, 활동보조로 바뀌는 사회 풍경을 절감하며 김동현 대표는 덧붙였다. "이제 이 흐름을 바꿀 수야 없겠지만 자원 봉사의 순수성만은 반드시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져 갔으면 합니다. 제도적 안전장치가 잘 갖춰진 세상보다 최소한 ‘내 옆집에 장애인이 사는데 잘 지내고 있나?’ 정도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가지는 세상이 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요?"

다양한 소모임 활동과 가족지원, 인식개선 사업에 집중

사회가, 아니 어쩌면 우리가 방기한 일을 자발적으로 묵묵히 행하고 있는 ‘초록봉사대’, ‘사단법인 초록'은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2014년 법인이 특히 힘을 쏟는 부분은, 개개의 중증 장애인 스스로가 잔존 능력을 개발하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소모임 활동과 가족지원, 그리고 비장애인의(특히 학생과 직장인)인식 개선 사업이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1박 2일의 장애인 체험을 통해 인식 개선을 도모하는 '역지사지' 프로그램, 휠체어를 타야하는 중증 장애 청소년들과 또래의 비장애 청소년들이 함께 떠나는 지하철 여행은 벌써 7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늘 관심 없이 지나쳤을 인문학 현장에서 전문가와 함께하는 ‘길 위의 인문학’은 회를 거듭할수록 뇌졸중 장애인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지역의 다문화 가정과 함께 연계하여 진행하는 ‘다문화 교실’, 언어 중복 장애인을 위하여는 ‘마음속 비워내기’를 위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 치열히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 사진팀 ‘편사모(편견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임)’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외에도 사단법인 초록 사이트()를 방문하면 우리 은평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봉사대의 삶과 활동을 알 수 있다.

초록인들이 바라는 그림에는 ‘똘레랑스’니 ‘노블레스 오블리쥬’니 하는 유행했다 사라지는 거창한 사회적 담론들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거리 풍경일지도 모른다.

"제가 몸이 불편한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아... 이렇게요..."

초록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초록 사무실 벽에는 이런 플랭카드가 걸려있다. '障碍는長愛입니다' 막을장거리낄애가아니라긴장에사랑애! 장애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사람들과의 소통을 막고 거리끼는 장애물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바로 그것, 결코 흔해빠질 수 없는 그것, 사랑으로 가는 긴 다리가 아닐까? 초록이 있어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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