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희망파트너가 되어준 봉사자 전만직님의 이야기

구산동에 위치한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마을기자단으로 활동 중인 김삼식 님은 본인이 직접 제작한 글자판과 특수마우스를 통해 글을 씁니다. 그 글로써 이웃들과 소통하고 있는 김삼식 기자의 첫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마을에서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전만직 봉사자입니다. - 편집자 주

어느 날, 전만직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의 미소는 포근한 동네에 할아버지처럼 순수했다.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이웃들과 보내는 시간 이외에는 봉사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요. 지금은 마을 아이들이 통학하는 곳에서 교통지도를 하며 아침을 시작하죠. 2009년부터 꾸준히 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뜸해졌지만 계속해서 복지관 봉사활동을 오거나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밑반찬 배달 봉사를 하고 있죠.”

“복지관과 인연 맺게 된 이야기 좀 들려주시겠어요?”
“복지관 개관 때부터 함께 해온 봉사단체 천사교통봉사자회의 구병선님과 가까운 이웃 관계였어요. 당시 봉사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니 복지관을 소개해줬죠. 그래서 이동목욕 봉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복지관에서 만나는 장애당사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지금은 10년 가까이 일주일에 2~3번을 복지관에서, 가정에 방문해서 만난 이웃들이 1,000여명이 넘어요. 이제 제게 하루하루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이웃이죠.”  

“복지관에서 어떤 일들을 함께 하셨나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어요. 복지관 주간보호센터에서 중증장애인당사자들과 일상을 함께하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지역의 어르신들의 생신을 축하드리는 생신축하단, 환경봉사단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이동목욕 봉사였죠. 복지관 봉사 외에도 거북사랑 나눔회 활동을 통해 지역의 장애인과 어르신들을 위한 삼계탕 나눔 등을 해왔고, 최근까지 의용소방대 활동도 해왔어요.”

“봉사활동을 통해 삶에 찾아 온 변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복지관 근처에 살았지만 장애인복지관에서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또 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장애를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도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컴퓨터와 같이 일상에서 제가 하기 어려워지는 것들이 생길 때마다 장애는 환경에서 오는 것들이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봉사활동을 해오시면서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 좀 들려주세요.” 
“가장 오래하기도 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이동목욕이예요. 이동목욕 사업이 종료되면서 이제 할 수 없지만 이동목욕봉사를 해오면서 만나온 이웃들이 저에게 건넨 “고맙다.”는 말과 표정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또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연령이 있는 어르신들께서 돌아가신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한참동나 잠 못 이루었죠. 그 분들과 몇 년 동안 나누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고요.“

“그렇다면, 선생님의 곁에서 함께 해 주시는 분들이 궁금해요.”
“봉사활동을 지지해주는 가족들에게 고마워요. 은평 봉사 대상을 받을 정도로 오랜 기간, 오랜 시간동안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지지해주는 가족들 덕분이죠.”

 “선생님께 ‘봉사’ 란 어떤 의미이신가요?”
“오랜 삶을 살아왔지만 봉사를 통해 지금도 성숙해져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더 건강해지고 젊어지는 느낌이죠. 그 것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는 에너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개인적인 계획이나 희망에 대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저도 이제 나이가 들다보니 거창한 꿈이나 계획은 없어요. 지금처럼 이웃들과 함께하며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 그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니겠어요?”

사람에게는 이별과 만남이 있어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전만직 선생님께는 그 기억 때문에 원동력으로 봉사를 하시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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