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베리아 여행법 6'

그 언덕 위에 큰 대자로 멋들어지게 드러누운 건 행운이었다. 바이칼호수의 언덕, 그것도 바이칼호수에서 가장 큰 섬인 알혼의 언덕. 거기다가 징기스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의 불칸바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샤먼의 본향. 어머님의 고요한 미소 같은 품 넓은 그 언덕에서 통음의 경지를 이미 한참 지난 나의 체력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시간은 새벽, 불빛이라고는 언덕 밑 후지르 마을의 숙소쯤에서 간간이 비추는 백열등과 맞은편에 앉은 술친구 들이 가끔씩 피워대는 담뱃불 빛, 그리고 나머지는 별빛이다. 거기서 우리는 희미하게 반사되는 술잔의 입구를 찾아 서로의 잔에 보드카를 따랐고 “위하여” 혹은 “원샷”을 외치며 술잔을 비웠고 노래를 불렀다.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깊더니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튼다. –해방가-”를 부르던 H총장은 그보다 한참 후배인 Y간사에게 “무슨 구질구질한 노래를 여기까지 와서 부르느냐”는 타박을 받았는데 Y간사가 이어서 부른 노래는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점점 더 잊혀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서른 즈음에-” 였다.

구질구질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모두들 외로웠다. 시민단체의 상근자로 잔뼈가 굵은 H총장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며 그 일의 효율성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는데 거기에 비해 이제 갓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Y간사는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회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아쉬움을 얘기했다.

승진을 앞둔 금융권의 다크호스 H부장은 또 다른 삶을 꿈꾸며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고 토벌대에 부모 형제를 다 잃고 평생을 빨갱이의 자식으로 살아온 C회장은 “그래도 살아. 네가 원해서 태어났나? 그런 사람 하나도 없다. 살려져 있으면 다 산다. 그러니 그냥 살아”라는 말로 술친구들을 다독였다.

참 부지런한 삶들이었다. 어느 것 하나 내가 소외되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치열한 생활의 전투를 치러 온 사람들이었다. 알혼 섬의 언덕위에서 우리는 술의 기운을 빌어 별빛 물든 호수 위에 그렇게 각자의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 섬으로 가는 길은 녹록치 않다. 이름이 “바이칼스캬야”라고 하던가. 후르시쵸프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란다. 이 도로를 타고 6시간, 그리고 미처 포장하지 못한 도로를 한 시간쯤 더 달리면 알혼섬으로 가는 사휴르따 선착장에 닿는다. 거기서 배를 타면 약 15분여 만에 알혼섬에 도착하는데 거기서부터는 도로상황과 관계없이 전 세계 어디라도 끄떡없이 달릴 듯한 “우아직”이라는 이름의 8인승 승합차를 타고 이동한다.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80년대 초반에 러시아에서 개발한 이 차는 4륜구동으로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차답게 알혼섬의 비포장도로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한때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구소련이 10년 넘게 전쟁을 수행하고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그 전쟁에서 활약 했으니 지금은 그리 대접받을 이유가 없지만 달랑 운전대와 바퀴 그리고 엔진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듯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차를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이 차를 타고 알혼섬에서 가장 큰 마을인 후지르에 가면 “니키타 하우스”가 있는데 거기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거나 노래를 불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학생은 펜팔을 통해 모스크바의 친구를 사귀어 바로 이곳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고 독일에 사는 부부는 평생 기억에 남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곳에 왔단다. 다들 멋들어진 인생들이다.

이르쿠츠크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올가”를 만났다. 해가 지기 전 불칸바위 아래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씻김굿을 진행했는데 거기에 참여했던 여성이다. 처음 듣는 장구와 꽹가리 소리도 신기했고 각자의 소원을 적은 종이를 태워 하늘로 날리거나 순백의 옷을 입은 무녀의 간절한 기원의 소리도 궁금했던 그녀는 내게 무엇을 위한 행사인가를 물었다. 나는 “Peace”라는 한 마디를 전달했지만 그녀는 되짚어 물었다 “Inner peace?” “아니예요. 전 세계의 평화, 전쟁 없는 세상, 착취 없는 세상, 고로 평등한 세상을 위해 한국인들이 하는 전통 기원 굿입니다” 나의 대답에 그녀는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갓 스무 살이 넘은 그녀는 알혼섬에 잠깐의 일정으로 들렀다가 홀딱 반해 머물기를 자청했다고 했다. 앞으로 공부를 계속해야 하지만 자신에게 일 년 혹은 이 년쯤의 쉼은 더없이 도움이 될 거라나. 부러웠다. 10여개가 넘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만점에 가까운 토익점수를 자랑하면서도 미래의 불안을 치유하기 위해 또 다른 스펙을 고민하는 한국의 젊은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부산하고도 소박한 알혼섬과의 만남 하루가 지나간다.

바이칼의 언덕에 누워 별을 헤아려본다. 팔을 벌리면 왼쪽 손끝에서 오른쪽까지 그 사이에 있는 것은 오직 별 뿐이다. 별들은 스스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서로를 빛내고 있다. 밤사이 형형색색의 조명을 틀어대고 경쾌한 뽕짝을 울리며 관광객들을 취하게 하는 유람선이 몇 척 정도는 있어야 상식에 맞는 나라에서 온 나는 변변한 숙소하나 없이 별빛 하나만으로도 2500만년을 살아온 거대한 자연의 나라 바이칼에서 자존과 공존(共存)의 하늘을 보며 감격해 한다.

그리곤 다시 외로워진다. 보드카의 기운에 얹어 나도 함께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그때 바다 같은 호수 한가운데 떠있는 알혼섬의 끝자락 어디쯤에서 손톱 같은 달이 떠오른다. 나의 생살보다 더 붉은 달빛 사이로 소금을 흩뿌리듯 별똥별이 떨어진다. 달빛은 흠칫 놀라며 점점 더 가까이 내게로 오고 나는 수평선이 되어 달빛을 한참동안이나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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