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지기가 제안하는 여름휴가 독서방법
이것이 말 그대로 ‘불편한 진실’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책 읽기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정적 바쁠 땐 바쁘다고 책을 안 읽고 휴가 때는 휴가라서 책을 안 읽으니까요. 자 올 여름에는 작정하고 책 한번 읽어 볼까요? 갑자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고요? 그래서 제가 헌책방에서 파는 책 몇 가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책방 영업 하는 건 아닙니다. 오해는 마세요!)
저는 책을 읽을 때 관심사에 따라서 몇 가지 책을 한꺼번에 읽는 걸 즐깁니다. 이렇게 하면 한 책만 읽을 때보다 좋은 점이 있어요. 책을 하나만 읽다보면 지루하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와 연관된 다른 책을 읽어보면 전에 읽었던 책이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시험 보다가 잘 모르겠는 문제가 나오면 다음 그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방식과 비슷해요. 그러면 전에 못 풀었던 문제 답이 다른 문제를 풀면서 딱 나오는 경험 다들 한 두 번씩 있지 않나요? 그렇기 때문에 책도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네그리(Antonio Negri 1933- ) 라는 사람을 한번 보죠. 네그리는 무척 유명해서 ‘네그리 주의’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분야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정작 별로 없죠. 자 휴가를 이용해서 네그리에 관한 책을 몇 권 한꺼번에 읽어보는 것입니다. 네그리의 가장 유명한 책은 <제국> <다중> <공동체>가 있고 그중에 핵심은 <제국>입니다. 우리말로 번역 된 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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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국>을 그대로 독파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그와 함께 <아우또노미아> <네그리 사상의 진화> <미래로 돌아가다> 같은 책을 함께 보는 걸 권합니다. <아우또노미아>와 <네그리 사상의 진화>는 네그리라고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사상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아우또노미아>는 갈무리 출판사 공동대표인 조정환 님이 쓴 책으로 <제국>은 물론 다른 책에 대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쓴 글이죠. <네그리 사상의 진화>는 네그리와 함께 <제국>과 <다중> <공동체>를 함께 집필한 마이클 하트가 쓴 책이기 때문에 어떤 책보다도 네그리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줍니다. <미래로 돌아가다>는 네그리와 함께 진보 지성으로 인정받는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가 참여해서 쓴 책으로 우리에게 ‘좌파’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최근 언론에 많이 나오는 ‘종북 좌파’ 따위의 말도 그냥 흘려듣지 말고 이런 책을 통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접근 해 볼 일입니다.
내친김에 다른 예도 들어보죠. 이번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입니다. 이분도 이름만큼은 들어 본 적이 많을 겁니다. ‘가스통’이라는 재밌는 이름 때문이기도 하고 아마 많은 분들은 이 분이 쓴 유명한 책 <촛불의 미학> 때문이기도 하겠죠. 어쨌든 이분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프랑스 철학자입니다. 요즘 1960-70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푸코 들뢰즈 데리다 같은 분들이죠.) 우리나라에서 유행처럼 읽히고 있는데요 바로 그 전까지 활동한 바슐라르를 살펴보는 건 무척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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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지젝이 대중강연을 했을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얼핏 봐도 천여 명 정도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자리를 꽉 메우고 있는 모습에 무척 놀랐습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 어떻게 부정하고 분노하고 진실을 바라봐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먼저 자기 안에 든든한 사상적 기반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바람 불 때 무너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슐라르의 ‘부정의 철학’은 지금 꼭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휴가처럼 며칠씩 시간을 낼 수 있는 때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진중하게 맘 잡고 읽어 볼 여유가 좀처럼 생기지 않으니까 휴가를 이용해서 이런 책을 여러 권 묶어서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사회학이나 철학책이 별로 내키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 다른 책도 하나 준비해봤습니다. 이건 아주 전통적인 방법인데요 더우니까 추운 설정을 갖고 쓴 소설책을 읽어보는 겁니다. 별 효과가 없을 거라고 미리 단정하지 마세요. 추운 곳을 상상하며 소설을 읽는 건 실제로 추운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만큼이나 효과가 좋습니다. 책은 그 어떤 매체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쓴 소설 한 권에 푹 빠져있다보면 절로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추운 느낌을 설정으로 해서 쓴 소설은 무척 많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한 가지만 권하겠습니다. 독일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마의 산>입니다. 아마 책 제목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역시 이 책도 끝까지 읽어본 분은 많지 않을 걸로 예상됩니다. 무척 긴 소설이거든요. 워낙 긴 소설인데 토마스 만의 소설 중에서도 무척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에 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은 축약본으로 읽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휴가니까 맘 잡고 완역판으로 한번 도전해보는 겁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정말 재미있고 서늘한 내용입니다. 일단 배경 자체가 스위스 산 위에 위치한 멋진 요양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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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휴가를 이용해서 책 읽어 볼 마음이 좀 생겼나요? 혹시 올해 벌써 휴가를 다녀오신 분이라면 내년에 한번 도전해보세요. 가족과 함께 바다나 산으로 놀러가는 것도 좋지만 읽을 책 여러 권을 정해서 헌책방 순례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돈은 적게 들면서 몸과 마음 그리고 지식까지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책 읽기 휴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