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같이 볼 영화 한 편을 고르는 것은 어렵다.

이번 영화는 함께 이야기 나눌 것이 있는가에 기준을 두어 골랐다.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미래는 고양이처럼>. 예고편을 보니 고양이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 같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많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으니 이야기의 실마리가 되겠다 싶었다.

일요일 오후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다섯 명이 모였다. 여자 넷 남자 한 명. 예매를 안 한 탓에 맨 앞자리를 매진 직전에 겨우 차지할 수 있었다.

소피와 제이슨은 동거 4년차의 연인. 동물보호소에서 아픈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는데 치료가 덜 끝나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상태다. 6개월의 시한부 묘생이지만 잘 돌봐주면 평생을 살 것이며 그 평생은 아마도 5년쯤이라는 보호소 직원의 말에 갑자기 심각해진다. 지금까진 자유롭게 살았지만 앞으로 5년은 책임을 갖고 고양이를 돌봐야 하고 5년 뒤에 그들은 40살. 40살은 50살과도 다를 바 없으며 그 나이는 무얼 사기엔 부족한 잔돈처럼 뭔가 중요한 일을 하기엔 늦은 나이라는 것. 그래서 소피와 제이슨은 고양이가 오기 전 한달 동안 자유를 만끽하기로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일상을 지배하던 인터넷을 끊고 한번도 관심 가져본 일이 없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자원봉사 일에 나선다. 그러나 이 시도는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관계를 흔들어놓으며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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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원래 제목은 미래(The Future).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두 사람에게 미친 영향쯤으로 정리되겠다. 유럽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는 예쁜 화면과 재치 있고 때론 경구와도 같은 대사들 잘 매만진 느낌이 드는 구성에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아직도 훤한 대낮. 식사를 하기에도 술을 한 잔 하기에도 어정쩡한 시간이다. 게다가 다른 일정이 있어 가야 한다는 사람까지 있는 대략난감 사태. 한마디라도 따야한다는 절박감에 버스정류장을 향해 함께 걸어가며 어땠냐고 물으니 ‘난해하다’ ‘기대했던 거와 다르다’ ‘이런 영화인 줄 알았으면 안 보러 왔을 거다’란 과격한 소감이 쏟아진다. 난 기대 이상 재밌었는데 다들 좀 화나고 억울해 하는 눈치다.

일단 동네로 가는 버스를 함께 탔는데 이야기 자리를 못 가질지 모른다는 충격에 번호를 잘못 봤다. 서대문 로터리에서 우회전해야 하는데 버스가 고가도로 위로 그냥 직진하는 거다. 영화 앞담화는 전적으로 버스를 잘못 탄 덕에 이뤄졌다.

막상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귀에서 받은 걸 뇌로 전달하기 벅찰 정도로 이야기가 쏟아진다. 일단 난해하다는 소감을 날려주신 최씨는 열린 결말이 명쾌하지 않아 부담스럽단다. 현실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데 영화까지 생각하며 봐야 하냐고 되려 묻는다.

기대했던 거와 다르다는 소감의 박씨. 고양이를 기르면서 주인공들이 어떤 변화를 겪을 줄 알았는데 고양이는 길러보지도 못했고 18세 이상 관람가면서 볼만한 러브신 하나 안 나와 허탈했다고. 그러나 다음에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집중하게 만드는 재밌는 영화라고 해서 감독도 아닌 내가 위로받았다.

이런 영화인 줄 알았으면 안 보러 왔을 거란 윤씨. 고양이를 여섯 마리나 기르고 있어서 고양이 기르기에 대한 노하우 또는 애환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여주인공이 자신의 춤을 못 추고 남의 눈치만 본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강씨는 여주인공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무의식에 억눌려 있는 것이 자신의 모습과 같다고 했다.

주인공뿐 아니라 관객인 우리도 이어줄 줄 알았던 고양이가 두 앞발만 나오다 끝나 버리니 남는 것은 도저히 좁혀질 것 같지 않은 영화에 대한 각자의 취향이다. 스릴러 추리 액션 코믹. 나로 말하면 영화를 소설처럼 읽는 사람이다.

이렇게 다른 취향을 가졌음에도 말을 보태는 동안 퍼즐 조각 맞추듯 놓친 부분과 이해 안 되던 부분들이 꿰어졌다. 그래 이게 바로 함께 하는 것의 힘이야.

앞으로의 영화 앞담화가 모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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