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 천천히 시간이 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며칠 전 허리를 갑작스레 다치고 얼마간 허리를 못 쓰게 되자 봄은 오고 있는데 저는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걷기도 힘든 허리로 아이들을 돌보기는 어려워서 지난해 봄처럼 엄마의 도움을 다시 받으며 며칠을 보냈어요. 그래도 밤은 제가 돌봐야 하기에 안을 수도 업을 수도 없는 몸으로 아이에게 두 달 전 끊은 젖을 다시 물렸습니다. 빈 젖이라도 빨려야 잘 수 있고 가려워할 때 달랠 수 있었으니까요. 다시 찾은 엄마의 젖을 아이는 너무나 반겨 하루 종일 빨더군요. 지금은 말랐던 젖이 다시 뽀얗게 샘솟습니다. 마치 물이 올라 겨울눈 터지듯 말이에요. 

생명이란 참 경이롭죠?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생명을 대한다면 아무리 추운 겨울도 다 지나가리란 믿음이 다져집니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수유생활로 저의 모든 에너지가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지기에 먹을거리 정서 상태의 관리가 좋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이 또한 다 지나 자연스레 물 흐르듯 평온해지길 기도할 수밖에요. 지난달은 강원도에 많은 눈을 뿌리기도 했는데 아이들과 저는 봄 여름을 지내고 온 터라 풍경을 미루어 짐작해 볼 따름입니다. 우리가 지내던 곳은 해발 800m에 가까운 곳이어서 한번 눈이 오면 굴을 뚫고 길을 만들어야 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간 안 되던 산속생활 첫 날밤이 아련합니다. 환영한다고 느끼기엔 너무 구슬픈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엄마와 첫아이의 골아떨어진 모습을 옆에 두고 저는 촛불아래서 아이의 괴로움을 안고 젖을 물리며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첫 새벽을 만납니다. 

아이의 아픔과 저의 안타까움에 짓눌리던 시간과 오버랩 되는 새들의 향연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아이의 극심한 고통이 조금 가라앉는 4시쯤부터 하나 둘 들리기 시작한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소리라고 하기엔 그 경외감이 전달되지 않네요. ‘숨’이라 해야 할까요.)가 40분후에 절정에 달합니다. 홀로 울어대던 뻐꾸기의 구슬픔에서 환희와 영광을 알리는 새날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서울새벽을 울리던 새들의 7-8배에 가까운 새들의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말이죠. 우리의 고통이 고통의 신비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그 후 일주일동안 시간이 다르게 느껴졌어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아이도 엄마도 저도 한가로운 풍경에서 바쁜 시간을 보냈지요. 그 곳에 계신 식구들은 아무 말 없이 하는 일이 참 많은데 우리는 먹고 누고 잠자리 준비하는 데도 하루가 훌떡 갔습니다. 무엇보다 엄마께서 제일 힘들어하셨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새 생활 적응을 도와야했고 엄마는 그 밖의 모든 일을 하셔야 했으니까요. 물 받아서 아기 빨래하고 삶고 땔감모아 불 지피고 하는 먹고 자고 빨고 하는 일상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참 많이 불편해하셨어요. 특히 스님의 권유로 산에서 구해온 나무껍질을 가마솥에 우려내어 하는 목욕은 우리가족에겐 하루 일과 중 아주 큰 일이 되었습니다. 아이목욕을 하고 난 후엔 무사히 하루가 간 느낌이었으니까요. 문턱이 많고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는 일이 많으니 엄마의 잠자리는 매번 신음소리에서 순식간에 코고는 소리로 바뀌셨죠. 

 
하루 이틀 지나자 아이는 “와~ 강원도에는 별이 많구나~” “정선은 아름다워!”하며 산을 읽고 있었고 낮에는 종일 자전거와 함께 보내다가 밤이 되면 서울을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새 저의 마음을 읽은 아이는 “현우 나을 때까지 있을 꺼야” “우리 가을에 가자”하며 두 아이 엄마인 저를 추스르게도 했습니다. 

 정선 생활 사흘째 되는 날 전날 밤새 못잔 둘째는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아 짜증이 많았고 계속 울어댔어요. 첫아이도 동생을 보며 본인도 며칠 힘들었는지 같이 웁니다. 저는 두 아이를 달래다 아무 말 않고 두 팔에 아이들을 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께서 소리 내어 우시네요. 제가 “엄만 왜 울어?~~”하자 “넌 새끼가 둘이지만 난 새끼가 셋이잖아!~” 하세요. 아 잊히지 않을 말이 지금도 아립니다. “엄마 나 적어도 백일만 있어보려고 해 아니 우리 일주일만 있어보자. 그래도 정 힘들면 다시 가면 되지 뭐 아니 하루씩만 살아보자. 내일은 생각하지 말구 하루만 살자.” 

선생님 저는 아이가 아픈 이후로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었어요. 내일을 준비하기는커녕 오늘 하루 살기도 버거웠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아서 산으로 온 것이었는데 이 첫 고비가 지나고 또다시 ‘다 지나간다.’라는 평범한 진리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숨 쉬는 나무와 풀과 물과 바람과 하늘과 새들에게 기도했어요. 우리에게 좋은 기운 달라고...... 우리에게 새 숨을 불어넣어 달라고......

그리고 며칠 후 엄마께서 방에 불 때고 들어오시며 이런 말씀 하세요 “이제 좀 익숙해지는 것 같다.” 선생님 우리 삼대가 익숙해지기 시작한 오월의 그 날 뻐꾸기는 정겨웠어요.

김지혜 씨는 6살 18개월 된 두 아이를 키우며 불광동에 살고 있어요. 아토피를 심하게 앓은 둘째 아이와 지내는 시간들을 소중한 선생님께 띄우는 편지글로 독자들과 나누려고 해요. “고통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느낌”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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