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은 사람은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입학 초기부터 많이 우울해지기 시작하여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하던 끝에 급기야 처방받았던 신경정신과 약을 한꺼번에 먹고 응급실에 실려 왔었던 것이죠. 의식도 있고 아주 위험한 상태도 아니었지만 자취방으로 다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지방에 계시는 그 학생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저와 병원을 소개하고 자녀분이 자살 목적으로 약을 먹고 응급실에 와 있는 상태이며 급하게 입원이 필요할 것 같으니 부모님께서 올라오셔야 하겠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대학교 1학년생 자식을 조금은 자랑스럽게 또 조금은 걱정스럽게 여기고 있었을 부모님의 반응은 그러나 수화기를 탁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잘못 들으셨나 아니면 우리가 전화를 엉뚱한 곳에 걸었나 싶어 다시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는 대판 욕도 얻어먹었습니다. 온갖 쌍소리를 섞어가며 "그딴 눈에 훤히 보이는 거짓말 보이스피싱 짓거리 하지 말아라 우리 자식 학교 잘 다니고 있는데 이게 뭔 짓거리야! 누구를 속여먹으려고 해!"라고 합니다. 자녀분이 입원해야 한다고 말씀드리자 "사기꾼들아 세상 똑바로 살아 이것들아!" 무어라 변명할 새도 없이 욕을 뒤집어쓰고 일순간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 그렇게 보이스피싱이 걱정되시면 114에 병원 전화번호를 물어보시고 전화를 직접 주시라고 그러면 제가 받고 말씀을 드리겠다고 간신히 (정말 간신히) 전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드렸으니 부모님도 걱정이 되셨던 모양인지 병원으로 바로 전화가 왔고 자녀의 상태가 걱정되었던지 한달음에 올라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를 가지고 장난질 치며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렇게 중요한 연락도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받는 일이 발생하곤 하네요. 불신사회의 폐해가 아닐까 합니다. 만약 병원에 누가 실려 왔다는 전화를 받으시면 병원 이름을 물어보시고 114를 통해 그 병원으로 직접 연락을 해보세요 정말로 중요한 연락을 놓치지 않도록.
 

추혜인 씨는 살림의료생협 주치의이며 현재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에 근무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