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 학원의 문제를 지적하다 부당 전보된 홍기복 선생을 만나다

▲ 재단사무실로 가로막힌 중학교 건물과 비상구가 막힌 고등학교 건물이 아이들의 소방안전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방서에 들렀다가 은평시민넷 사무실을 찾은 홍기복 선생님.     © 은평시민신문
“좋죠 참 좋아요!”
응암 오거리에서 만난 충암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대여섯 명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학생들은 “홍기복 선생님은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주고 우리들을 잘 이해해 주시는 선생님”이라며 “님 좀 짱이삼”이라고 응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선생님은 "아이들과의 소통과 교감"을 일상 교육활동에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체벌이나 강압보다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그런 그이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항상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는다.
 
아이들은 묻는다. ‘머리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우리들의 인권이 무시돼도 되나요?’ 라고. 그는 선도부의 거수경례가 불편하고 오랫동안 학교사회에 배인 통제와 권위주의적 모습이 불편하지만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는 “통제된 교육을 받아 온 학부모 교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기복 선생은 충암고에서 천문동아리 ‘마루아띠(‘하늘 사랑’이란 뜻)’를 4년 동안 맡아왔다. 그는 매년 아이들과 함께 1박 일정의 야영을 해 왔다. 동아리를 시작한 첫 해 한 학생이 지구과학경시대회에서 동상을 받아 대학에 수시 입학한 일도 있고 충암고 축제에서 천문과 관련한 굵직한 활동을 펼쳐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년 1 2학년 합해 20명 내외의 학생이 꾸준히 참여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전구 500개 이상을 일일이 꽂아서 ‘플라네타리움’ 이라는 별자리를 재현하기도 하고 3미터짜리 첨성대를 만들기도 하고 천문에 관련된 게임을 개발해서 축제행사에 참여했다. 어떤 해에는 ‘달을 보는 천체 관측 행사’를 벌여 많은 호응을 받았다.
 
홍기복 선생은 “학생들을 어리다며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지도하고 관리해야 되는 대상으로 보기 쉽다”며 그러나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이를 믿고 따라가는 방식으로 하니 아이들은 많은 활동 성과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에 나선 것에 대해 묻자 홍 선생은 “세상이 아이들한테 바닥을 드러내며 (그들의)삶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은 그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처절한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현실에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고 말하잖아요.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핀을 뽑아버린 정부정책에 ‘죽고 싶지 않아요 15년밖에 못 살았어요 결혼해서 아기도 낳고 싶어요’라고 호소하고 있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옳지 않은 것을 모른 체하고 어떻게 아이들한테 정의롭게 살아라 말하나"


▲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여유가 느껴진다.홍기복 선생의 모습     ©은평시민신문
올해 초 홍기복 선생은 15년 동안 과학교사로 몸 담았던 충암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갑작스럽게 전보되었다. 학교는 사전에 의견을 묻거나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학교측은 ‘교육과정 운영상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회피노력이 없었던’ ‘보복성 인사’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1인 시위와 함께 소청심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개정된 사립학교법에는 ‘교원의 임면 등에 관한 주요사항’은 인사위원회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선생님의 부당 전보는 지역사회로 하여금 충암학원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화장실이 부족해 대소변을 참아야 하고 창틀이 떨어져 다치고 재단사무실로 막힌 본관 때문에 뒷문 철제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하는 충암학원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접하고 지역주민으로서 솔직히 부끄러웠다. 재단의 운영비리 불투명한 회계 비민주적 학교운영 그로 인한 열악한 교육현실이 낯뜨거웠다. 몇 년 동안 지난하게 목소리를 내온 선생님들의 노력에 새삼 고개가 숙여졌다.
 
홍기복 선생은 “똑같은 등록금 내고 왜 충암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해야 하는가? 학생들의 피해는 교육청이 사학재단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잘못과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모른 체하고 아이들한테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는 목소리를 내왔다.
 
더구나 아이들이 ‘앞장서서 옳은 소리를 하니까 결국 쫓겨나잖아요’라고 생각할까봐 부당전보에 대해서도 물러설 수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선 지금의 상황이 “아이들에게도 떳떳하고 선생으로서 도리를 하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
 
그나마 ‘충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지역사회와의 공동행동’으로 움직일 것 같지 않던 교육청이 부랴부랴 화장실 문제 등 교육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하고 학교 매점 공개입찰도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학교운영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아이들이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학교 교육현실은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충암 학원에서 보듯이 파행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운영이 왜 변하지 않을까?
 
홍기복 선생은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며 “학교운영위원회나 인사위원회가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름뿐인 학생회가 아니라 “학생들을 대변하는 자치활동”이 이루어져야 하고 학부모는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 편에 서서 학교 교육의 한 주체로 당당히 나서는 학부모회가 있어야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고 선생님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개진이 보장되는 교사회가 있어야 내실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홍기복 선생은 2007년 학교 운영위원 보궐선거에서 76:34로 교사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교장의 반대로 학교운영위원회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배우고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조차 그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
 
많은 선생님들은 ‘(교육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는)옳지만 내가 나서서 하고 싶지 않다’ 는 태도를 보인다. 작은 행동 하나도 벽에 부딪히기 쉽고 바꾸기 어렵다 보니 체념하거나 귀찮아 하게 된다. 게다가 인사상 불이익까지 감내해야 하는 게 우리 교육 현장의 모습이다.
 
그래서 더디고 힘들지만 누군가의 발자국이 길을 내고 더 많은 사람이 그 길에 모여 변화를 이루어 낼 것이라는 믿음으로 뚜벅뚜벅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 홍기복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3월 부당전보와 충암 교육현실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선생의 바쁜 일정에 무리한 약속을 해 다시 만난 것은 스승의 날을 앞둔 5월 14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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