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 담채화였다. 올해 10월이면 이 교회에 재직한 지 15년을 맞는다는 이동준 목사와 자연스레 그림이야기로 대담을 시작했다. 손님을 맞아 새로 내린 커피향이 은은하게 허공에 퍼졌다. 

▲   은광교회 이동준 목사  ©도경선
피 흘리는 예수상


- 그림에 무척 조예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표현할 줄은 모르고 그냥 보는 걸 좋아할 뿐이지요. 이십대 후반인가. 처음 모네의 그림을 보고 흠뻑 빠져들었어요. <일출>과 <성루앙대성당의 아침풍경>이었던 것 같은데 그 그림을 보고 나서 거의 보름가량 눈에 어른거리는 거예요. 그때부터 그림이 좋아져서 열심히 보러 다녔지요. 전시회도 쫓아다니고 국립미술관에는 매주 가서 하루 종일 살다시피 했어요. 음악도 그랬어요. 심방 갔다 와서 아주 피곤할 때 클래식을 듣곤 했는데 아주 폭 빠져서 마니아 소리를 들을 정도였어요. 쌀은 안사도 판은 샀을 정도였는데 이젠 그림도 음악도 편안하게 보고 듣지요.”

- 종교와 미술 음악에 어떤 공통점이 있었나요.

“처음엔 잘 몰랐지요. 그런데 종교성이나 예술성이 근본으로 들어가면 다 통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요즘 하게 돼요. 그림이나 음악에 깊이 들어가는 순간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걸 느껴요.”

- 기도의 체험과 비슷한가요.

“그거 어려운 얘긴데(웃음). 내가 비우는 기도를 잘 못해서…. 다 비우고 순수한 영성으로 들어가는 그런 경지는 아직도 멀었지요. 아마 그 경지로 들어가면 예술성과 확실히 통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나 자신을 포기 못한 채 기도하니까.”

이 목사의 책상 뒤쪽에 걸린 그림에 눈길을 주자 설명이 이어졌다. 잔잔하면서도 울림이 큰 목소리였다. 

“저건 동양화가 김병종 교수가 그린 그림인데 제목이 <흑색예수>예요. 우연히 인사동을 지나다가 저 그림을 봤는데 마음이 강렬하게 끌렸어요. 그래서 저 그림을 사고 싶다 했더니 김 교수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요. 목사라 했더니 웃으면서 표구값이나 내고 가져가라 했어요. 한 달 봉급을 털어 사 가지고 오는데 날듯이 기뻤어요.”

유신 때 김병종 교수(서울대)는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다. “당신은 크리스챤의 양심으로 왜 침묵하고 있습니까?” 깊은 고뇌에 잠긴 김 교수에게 어느 날 빛줄기 같은 영감이 다가왔다. 그렇게 해서 그린 그림이 바로 <흑색예수>였다.
 
머리에 가시관을 쓴 예수는 피를 흘리고 있다. 입을 조그맣게 표현했는데 침묵을 뜻한다. 얼굴 아래 붉게 그려진 것은 뜨거운 사랑을 상징하는 심장이다. 슬픈 눈망울 속에서 묵묵히 고통을 견디고 있는 예수의 얼굴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림 이야기를 조금 더 잇다가 화제를 바꿨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이 목회자의 길

- 목사 안수를 받은 지 34년 되었고 은광교회 재임 15년을 맞는데 목회자로서 남다른 감회가 있을 듯합니다. 

“그저 다른 길은 없어서 멋모르고 여기까지 왔지요. 쉽게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다 해서 연세대 신학과에 들어갔는데 사실은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뇌막염에 걸려 사경을 헤맸는데 보름 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났어요. 그때 목회자로 살아야 하나보다 하고 받아들였는데 그러고 나서도 몇 번이나 포기하려 보따리 쌌는데 안 되더라고요. 요즘은 목회자의 길이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잡혀집니다. 그동안은 남들 하는 대로 흉내 내고 생각대로 외쳐왔는데 이제는 아픔 같은 게 많이 느껴집니다. 어려운 사람들 보면 아프고 우리 민족을 생각해도 아프고…. 눈물이 흔해졌어요.”

- 참된 목회자의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했는데 설명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상당히 복합적인 거라 몇 마디로 얘기하기 어려운데…. 목회자는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전엔 나를 따르라 이게 바른 길이다 주제넘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으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나에게 꿈이 없고 비전이 없다고 하지만 나한테 주어진 몫은 그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거지요.”

- 다소 관조적인 태도로 보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이게 올바른 태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젠 욕심도 많이 버렸어요. 버린 만큼 생활도 극히 단순화됐고 그래서 더 아픔에 민감한 지도 모르겠어요.”

관조적으로 보인다 했지만 사실 이 목사는 강단 있는 사람이다. 2004년 예수교장로회 총회 때 무척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목사 750명 장로 750명 등 총 1천5백 명이 참석하는 예장 총회의 주요 안건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및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성명서 채택이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목청을 높이고 있을 때 이 목사가 홀로 성명서 채택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때 분위기로는 목회의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행동이었다.   

“수많은 노회와 총회에 참석했지만 나는 전혀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상황은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참으로 부끄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특정 정당보다 한술 더 떠서 개혁 입법을 반대한다는 것은 교회가 할 일이 아니었어요. 아주 극우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였는데 그렇지 않은 목소리도 있다는 것을 점이라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차에 깔려 죽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지요.”

- 70 80년대 한국 교회는 민주주의와 민중의 편이었습니다. 90년대 이후 급속도로 보수화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교회가 부자가 되고 빼앗길 것이 많아진 겁니다. 기득권자가 되니까 그걸 지키려는 겁니다. 70 80년대 기독교는 언제나 도전하는 세력이었는데 이제는 도전받는 세력이 된 겁니다. 종교는 언제나 배가 고파서 도전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도 빼앗길 것이 많아져서 앞장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동참할 수도 없어서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 아닌가 스스로 묻게 됩니다.”

- 이런 추세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역사를 보면 교회에는 자정능력이 있었어요. 교회가 타락할 때 수도원운동 같은 게 나타나서 다시 돌아서게 했지요. 머지않아 자정운동이 생겨날 것이라 믿습니다. 양식 있는 목사라면 이런 위기는 다 느끼고 있습니다.”

지역과 더불어 나누며

-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15년을 재직하셨는데 처음 이 지역에 왔을 때 어떤 생각이셨나요.

“이 교회가 통일로(統一路) 길목에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부임할 때 통일의 꿈을 키워가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벽이 있더라고요. 나는 부딪혀서 깨지기보다 타협하는 쪽을 택했지요. 침묵하고 만 셈인데 돌아보면 아픔 가운데 하나예요.”

- 한 지역에서 교회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역을 사랑하고 보람과 기쁨 주는 교회 부끄럽지 않은 교회가 되어야지요. 나름대로 재정문제 같은 것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얼마 크지 않은 돈이지만 좀 넉넉해지니까 아끼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게 무섭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이 벌벌 떤다는 게 이해돼요.”

이 목사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은광교회는 지역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고 있다. 14년째 지역주민을 위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데 현재 2만5천권의 장서를 갖고 있다. 신앙 관련 도서는 많지 않고 일반도서 그 중에서도 어린이 도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연 4천만 원의 예산으로 유급인력도 두고 늘 새 책을 구입한다. 이 도서관은 주민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함지박공부방)도 운영하고 있다.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교회 안의 공식 기구로 인정해 지원을 하고 있다. 장소와 각종 시설 이용 등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목사는 ‘교회 안의 엔지오’라 표현하는데 그만큼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교회와 상관없는 조직을 인정하고 활동하도록 한 것은 특이한 사례로 여겨진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어린이 30여 명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지역에 필요한 시설들을 교회가 지원해서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헌금 갖다 어디 씁니까? 이런 데 써야지요. 그렇게 하면 교회더러 세금 내라 소리 안합니다. 쓸 데 쓰고 보람 있는데 쓰는데 세금 내라 하겠습니까? 세금 내면 얼마나 내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일 년에 4천만 원이나 내겠습니까. 그걸 갖고 도서관 운영하는 것이 훨씬 좋지요. 교회가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이런저런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 교회 도서관.  "교회가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이런저런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도경선
교회의 성숙과 민족의 통합에 관심


- 요즘 이 목사님의 주된 관심사는 어떤 겁니까.

“주된 관심사라…. 교회 안으로는 바르게 서는 것 성장보다는 성숙한 크리스챤으로서 거듭 나는 것이 관심이지요. 밖으로는 통일문제를 놓지 않고 있지요. 민족의 가장 시급한 문제라 생각해서 새벽마다 통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분열이라는 것은 서로에게 고통 아닙니까. 나라가 이렇게 저렇게 갈라져서 싸우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교회가 너무 많이 변질돼 갑니다. 교회가 갖고 있는 영적 권위랄까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생각합니다.”

- 통일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그런 건 따로 없지만 내가 호남 사람인데 호남 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은 어느 지역보다도 간절할 겁니다. 그동안 당했던 소외의식이나 아픔이 통일의 과정을 통해서 희석되지 않겠는가 소망하는 거지요.”

- 해원이나 신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호남의 소외와 통일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해가 좀 안 갑니다.

“해원이나 신원의 의미는 아니에요. 근대 역사에서 호남지역은 차별과 피해를 받아왔지요. 언제나 공격의 화살 조롱의 화살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곤란한 점이 있을 겁니다. 피해의식이랄까 그런 것들이 남북이 통일되고 넓어지면 좀 덜어지지 않겠는가 희망하는 거지요. 이런 요소들이 작용하면서 통일 문제가 나의 삶에 체질적으로 굳어져 버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전남 목포가 고향이신데 호남 출신이라 교계에서 차별을 받지 않았나요.

“엄청나게 심하지요. 일반 회사원이나 공무원은 능력에 의해서 평가되니까 호남 출신이라 해도 출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인간관계로 형성되기 때문에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장로회 신학대학에서 연말이 되면 전도사나 부목사를 뽑는 추천의뢰가 들어오는데 호남출신은 아예 제외한다고 명시되는 일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이 있을 만큼 지역 편견이 심하지요.”

▲ "죄와 응징의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제인데 기독교에서는 '값싼 은혜'라는 말을 합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면 거기에 합당한 실천을 해야지요. 그걸 무시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 ©도경선
구원은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


어쩌다 영화 <밀양> 얘기가 나왔다. 이 목사에게는 고려대에서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밟고있는 아들이 하나 있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었는데 여식을 중학 3학년 때 여의었다.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던 딸이 호흡곤란으로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며 영화 <밀양>이 떠올랐던 것인데 신기하게도 이 목사와 <밀양>의 인연이 각별했다.   

- 상심이 크셨겠습니다.

“좀처럼 극복하기 어려웠지요. 이 교회에 온 것도 그 일 때문이고…. 내 생애에서 그다지 큰 고통은 없었는데 그게 아픔이 됐지요. 그 일을 겪으면서 사람을 훨씬 더 따뜻하게 대하게 됐어요. 살아 있다는 것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고…. 아이들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를 보면서 ‘야 너 살아 있구나’ 감탄할 때가 많아요.”

- 혹시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는데 이창동 감독이 전화를 걸어 출연을 제안했었지요.”

사연은 이렇다. 두 번인가 배우에게 목사 역을 맡겼는데 이게 영 감독의 의도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다 <밀양> 스탭으로 일하는 은광교회 교인이 이 목사를 추천했고 인터넷에서 이 목사의 설교 장면을 본 감독이 ‘적격’이라 판단한 것이다. 감독이 이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의도를 설명했고 시나리오도 보내왔다. 

“조감독이 찾아왔더라고요. 두 시간 가량 얘기를 했는데 이창동 감독이 교회에 대해서 따뜻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기독교의 정통적인 가치관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구원의 무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관심이 있었는데 갑자기 <친절한 금자씨>의 한 대목이 퍼뜩 떠오르는 거예요. 왜 그 말 있잖아요. ‘너나 잘하세요.’(웃음) 야 목회나 잘 하지 무슨 엉뚱한 짓이냐 그 생각이 나서 못하겠더라고요. 다른 분을 소개했는데 잘 안된 모양이에요.”

-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영화의 원작이 이청준씨의 ‘벌레이야기’이지요. 작가는 ‘광주’(5·18광주민주항쟁)를 생각하고 썼다는데 광주에서 용서가 심각한 문제였잖아요. 무고한 시민을 죽인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원작에는 아이를 잃은 여자가 마지막에 자살하는 것으로 나오지요.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정신과 병원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머리를 자르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데 새로운 출발과 자기구원을 뜻하지요. 어떤 구원이냐 어떤 출발이냐 하는 것은 보는 사람이 해석할 문제고. 인간의 구원 용서의 문제 같은 무거운 주제를 나름대로 고민했다고 하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봅니다.”

- 여식을 잃은 분으로서 용서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글쎄요.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딸아이가 죽었을 때도 달리다가 쓰러졌고 양호실에 방치했고 병원에 옮기는 도중 죽었다고 하는데 경찰서에 갔더니 양호 선생이 계속 변명을 하고 경찰도 방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려 했어요. 그래서 내가 ‘선생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다’고 말하고 마무리 지었어요. 마음 한 구석에 섭섭함도 있었지만 그건 결국 내 문제인 거지요.”

- <밀양>을 보면 신애(여주인공)가 교도소로 유괴살해범을 찾아가지요. 용서를 하기 위해. 그런데 아주 편안한 얼굴의 가해자가 자신은 이미 하느님께 용서 받고 구원 받았다 말하지요. 저렇게 쉽게 죄의 고통에서 벗어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요.

“저렇게 쉽게 죄에서 벗어나서 되겠느냐고 얘기하는 건 ‘응징’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응징을 받아야 한다 그게 정의인데 응징 없이 구원 받았다 해버리면 정의가 어떻게 되느냐는 거지요. 그럼 과연 응징이 뭐냐. 응징했다 해도 내 자신이 편안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겁니다. 중세시대 얘긴데 도둑질한 사람의 손을 자르는 현장에서도 남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훔치려는 이가 있었다고 해요. 응징했다 해서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잠깐 동안의 위안은 될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지요. 죄와 응징의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제인데 기독교에서는 ‘값싼 은혜’라는 말을 합니다. 성경에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는 걸 얘기합니다. 정말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았다면 당연한 팔로우업(뒤쫓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 없이 죄 짓고 용서 받고 다시 죄 짓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납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면 거기에 합당한 실천을 해야지요. 그걸 무시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     ©도경선
죄 사함의 자리에 사랑과 헌신 따라야


- ‘값싼 은혜’라는 말은 현재 우리 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적 표현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런 점에서 교회가 구원이나 용서의 문제를 진지하고 심도 있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최재선 선교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서울에서 공부하러 다닐 때 고속버스를 탈 때면 대학생이라 속이고 표를 사서 다녔어요. 돈으로 고교 졸업장을 사서 호남신학대에 입학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이런 상태로 목사가 될 수 없다 생각해서 졸업을 취소해 달라 했어요. 그래서 목사가 되지 못했고 광주고속에 가서는 자기가 속이고 탄 요금을 다 갚아주었지요. 지금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마사이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어요. 여러 교단에서 목사 안수 주겠다 졸업장 주겠다 하는데 다 마다하고 자기 일만 합니다. 목사와 전도사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데도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게 속죄한 크리스찬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 어쩔 땐 죄를 지은 사람이 죄의식을 갖고 평생을 사는 것이 간단하게 죄 사함을 받고 벗어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죄의식이 인간을 황폐화 시킨다는 건 심리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죄의식은 지고 갈 문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죄의식이 극복된 자리에 자기희생과 헌신 감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걸 ‘값싼 은혜’라 하는 겁니다. 글쎄요 죄의식 상태로 그대로 두는 것이 값싼 은혜보다 나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의식의 자리에 미안한 마음 감사하는 마음이 그 자리에 채워져야지요. 그런 열매가 없이 용서를 받았다면 그건 예수님의 뜻이 전혀 아니지요. 기독교의 책임이 바로 여기 있어요. 지금까지 교회가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다보니까 값싼 은혜를 많이 팔았지요. 성숙한 교회로 거듭나기 위한 뼈아픈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교회가 대형화하면서 공동체성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사람 속에 자기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주일에 하루 와서 회개하고 용서받고 나머지 6일은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고.. 조그만 교회라면 공동체성이 살아 있어서 좀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크기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교회 지도자 목회자들의 생각이 문제고 큰 흐름이 잘못된 거지요. 목회자라는 사람들이 시청 앞에서 구국기도 한다고 목소리 높이고 삭발하고 하지 않습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작은 교회는 공동체성을 끈끈하게 이어갈 것 같지만 더 큰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 한국교회가 어떻게 하면 건강성을 회복하여 사회와 민족에 기여하고 봉사할 수 있을까요.

“(깊은 한숨을 쉬며) 길이 잘 안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히 보여주시면 그 길로 매진해서 나갈 텐데…. 새로 목사 되는 분들 가운데 돌이 80이라면 옥은 20도 안됩니다. 한국 교회가 어디로 갈지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시류에 편승해 가면서 위태롭게 지탱해 나갈려는지.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어느 교회처럼 시대가 요청하는 사명을 다하면서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던 곳도 잘못된 지도자가 나타나면서 갑자기 한 사회의 어느 특정집단(기득권층) 편에 서는 편향적인 집단으로 전락하는 판입니다. 탄성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데 복원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기독교 종말론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얘기입니다. 너무 심판이 강조돼서 그렇지 사실은 완성에 의미가 있습니다. 희망을 갖고 참고 기다리면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나는 낙관하는 편이에요.”

- 이토록 어려운 상황에서 목회자의 사명이랄까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대에 목회자는 끝까지 살아남아 희망을 줘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어느 땐가는 수레에 깔려 죽어야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살아남아서 부끄럽지만 살아남아서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순신의 칼에는 정치적 대안이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더 두려워했고요. 이순신이 정치적인 사람이었다면 콘트롤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복선이 없었기에 무서웠던 거지요. 예수님이 그랬지요. 오늘날 교회는 정치적인 복선이 너무 많습니다. 칼의 순수성을 회복하듯 복음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수구적인 목사들이 머리 깎고 아무리 야단쳐도 하나도 무섭지 않은 것은 그 뒤에 깔린 정치적 배경들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 놈이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저러는지 다 알고 있거든요. 사립학교법 고쳐라 어쩌고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럽니까. 기득권 빼앗기기 싫어서 그러는 겁니다. 그동안 온갖 달콤한 것 다 받아먹었는데 그걸 먹지 못하게 하니까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

이 목사의 시선이 허공에 머물렀다. 목회자로서의 고뇌와 번민이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다. 사회와 역사를 생각하고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의 아픔도 절절했다. 해마다 5월이면 광주를 찾곤 했는데 새롭게 묘역을 꾸민 뒤로는 찾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 단장되기 전의 묘역에 가면 눈물이 많이 났지요”

호남인으로 태어나 광주의 아픔을 겪고 목회의 길을 아프게 걸어온 그가 자주 한 말은 아픔과 눈물이었다. 그것은 연민과 공감 기도를 사명으로 삼은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함지박 공부방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초여름 교회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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