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중학교 국어교사 허형범 선생 양심 종교의 자유 침해 시정을 촉구

“당시 미션스쿨을 떠올린다는 것 그 자체가 저에게는 악몽을 떠올리는 것인 줄도 모릅니다….. 제가 제일 싫어했던 것 중의 하나가 예배의 강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종교계 사립중학교를 졸업한 한 고등학생이 쓴 글의 일부다.(은평시민신문 2006.4.13 시민기자의 글에서)

종교계 사립학교를 다닌 사람들 중 상당수가 마지못해 참석했던 예배와 반 강제의 종교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과 좋지 않은 경험을 떠올리곤 한다. 그럼에도 수십 년간 이런 관행은 바뀔 줄을 모른 채 유지되어 오고 있다. 

2004년에 한 고등학생이 종교재단의 사립학교에 대해 예배선택권과 종교의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며 40여일 넘게 단식을 했다. 10대의 학생이 기존의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며 단호하게 맞서는 모습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수록 기존의 관행에 맞서거나 용기만으로 나서는 것이 녹록치 않음을 느끼게 되다 보니 더욱 그러했으리라.

정의로움만으로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이것저것 재는 게 많아지는 모습들 더구나 운영위원 등으로 학교사회를 경험했던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학교만큼 보수적인 곳이 없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가 왜 이리 어려운 것이냐?’ 며 하소연한다. 

그래서 아마 신분적 위협이 가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립학교 측에 전면 이의를 제기하며 종교자유에 대해 말하는 이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더욱 궁금해졌는지도 모르겠다.

▲1월 어느날 한 레스토랑에서 허형범 선생을 만났다     © 부미경
왜 그는 나설 수밖에 없었을까?

지난 1월 어느날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은평구의 어느 사립중학교 교사 허형범(48세)선생.

자그마한 체구에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인상이다. 교직에 몸담아 수십 년 흘러온 세월 그냥 질끈 현실에 눈 감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어려운 길을 택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마음 한 구석에 인다.

그는 12월 19일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종교 양심의 자유의 침해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서울시교육감에게 ‘양심·종교(의 자유) 침해에 관한 사례’에 대한 ‘시정명령 청구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이 학교에서 23년간 국어를 가르쳐왔으며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 멋있는 미술선생 고등학교 때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담임을 보고 교사의 꿈을 꾸었다.
교단에 서는 것은 '아이들보다 높은 데 올라가서 비단처럼 흘러가는 말솜씨로 많고 많은 이야기들을 폭포처럼 쏟아내며  학생들을 매료시키는 것'으로 일종의 영웅심리가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젊어서는 몽둥이 하나 들고 다니며 설치는 것이 선생노릇 잘 하는 것인 줄 알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영웅심리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얘기해 주고 만나줘야 하는 일"이 교사의 일이라는 것을 세월이 흐를수록 절감한다.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학부모가 되고 나서부터 조금씩 선생다워졌다고나 할까요 학생들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
 그런 그는 왜 종교계 사립학교들이 건학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선교활동의 일환이라며 하고 있는 종교교육에 문제를 제기했을까?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살고 싶다
허형범선생은 “학생들이 지금 논리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이 의무적으로 예배에 참여하게 하면서 순종하는 것이 최고라고 가르친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생각한 것을 남에게 강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라며 의무적인 종교행사 참여라는 관행이 낳을 비교육적 결과를 우려했다.

‘중학교 종교강요 거부 현직교사의 입장’이란 글에서 그는 “지난 2004년 한 고등학생이 예배선택권을 달라며 주장하다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45일을 단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성 세대인 교사가 올바른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두 아이의 학부모인 제가 최소한 양심을 지키고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스스로 저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의 지난 기간 동안의 번민과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허형범 선생은 “매일 아침 ‘경건회’라는 약식예배가 있다. 조회시간에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로 마무리하면서 그날의 전달사항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아이들이 자기가 원치 않는 가운데 예배라는 종교의식에 동참할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조회하다 말고 뛰쳐나갈 수는 없다. 결국 한 인간의 양심의 자유를 끊임없이 누르는 것 아니겠느냐”며 조용조용 학교 현실에 대해 말한다.

선생은 “아이들은 그 시간에 딴 짓을 할 수도 있고 문제없는 것으로 익숙해져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찾아주고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아이들이 피켓시위하며 들고 나와야 바꿀 것이냐”며 교사로서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육자로서 양심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의 양심이 그를 뒤흔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제적인 예배참석은 아이들에게 자기가 생각한 것을 남에게 강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부미경
불합리한 관행과 종교활동들

이 학교는 오랫동안 성경과목의 점수를 기준으로 하여 80점 이상이 나오지 않으면 타 교과 과목이 100점이 나와도 우등상을 주지 않고 있다.
 
이 성경점수의 불합리함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고 싶어도 기독교 학교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 정상적인 규칙이다라는 식으로 일관해 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꾸 거론하는 것이 교사들에게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학교가 가는 지향과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한다고 인식할까 봐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

이외에도 허선생은 예배 헌금을 내도록 권해야 하는 상황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발적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지만 담임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교실에서 헌금봉투를 나누어 주고 봉투에 이름 반을 다 적어서 내도록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처럼 학교에서 양심의 갈등을 느꼈던 사항으로 그는 1년에 14번 이상 종교기관을 방문하여 종교점수를 받게 하는 일요일 종교기관 탐방 등 8가지 내용을 언급하며 시정명령 청구서를 교육청에 제출하게 이르렀다. 

그는 작년말 학년별 학급경영평가 간담회에서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교장 선생님에게 공식적인 개선요청도 하고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학교가 ‘고려해 보겠다’는 정도의 답변만 했어도 좋으련만 학교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단호했다. 그가 기자회견까지 자청하며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종교재단의 사립학교도 지역사회의 바람과 공교육기대에 부응해야
그는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를 함에도 학교측이 인정하지 않는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종교재단 사립학교의 풍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변화를 모색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받지 않아 잘못된 줄 모르고 선교를 위해서 남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나왔다는 점’을 여론을 통해 환기시키고 싶었다. 또한 ‘선교교육이라는 사명감에 불타다 보니 독선에 치우쳐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분위기’에 쐐기를 박고 싶었다.

최근 인근 동성고 등에서 예배의 의무적 참여를 없애고 자율학습과 예배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있다. 적어도 이 정도라도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학교이념이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반 강제로 끌어서 그 결과만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되며 그러한 과정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허형범 선생은 “개별적 간헐적으로 학교내부에서 강제적인 종교활동에 이의제기를 해 왔지만 총제적으로 터놓고 거론한 적은 처음이라며 지역사회가 학교에 거는 바람이나 공교육의 틀에서 기대하는 바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일제시대 독재시대를 거치며 우리가 가진 자유와 권리가 억압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하는 가치관이 굳어진 것은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 

종교재단의 사립학교가 학생선택권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들어온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설립이념에 맞게 종교교육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 허형범 선생은 “이미 사립학교가 95%이상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공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건학이념의 실현방식에서 지나치게 학습권자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곤란하고 종교적 기준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마 10년만 지나도 어떻게 학교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나 하는 말이 나올 것이고 종교학교가 관행을 변화시키는 것이 절대 퇴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역동적으로발전하는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기를 바라고 있다.     ©부미경
평범한 한 중년의 선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 

 서울교육청에 시정명령서를 청구하고 기자회견을 한 후 몇몇 동료교사들은 “할 말 제대로 했다”고 격려를 보내주기도 했다. 허선생은  신념에 따라 즐거운 마음으로 학생선교활동을 하고 교회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학생들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교사들도 많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제적인 종교활동은 학교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관심을 갖고 상식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상식선의 판단이 통하지 않는다면 헌법소원도 낼 생각이다. 만에 하나라도 신분상의 부당한 압력이 가해진다면 또 다른 저항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모습은 나이를 잊게 한다. 그만큼 고민의 깊이가 큰 지도 모르겠다.

그는 “문제가 불거지고 구성원간의 갈등으로 비추어져 학교측이 지금 당장은 기분이 나쁠지 몰라도 이것이 학교 발전과 사회선진화의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마 10년만 지나도 어떻게 학교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나 하는 말이 나올 것이고 종교학교가 관행을 변화시키는 것이 절대 퇴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기를 바라고 있다. 

평범한 한 중년의 선생이 나설 수밖에 없는 종교재단의 학교교육의 현실은 바로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이기도 할 것이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때도 그 정도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통하는 세상을 위해 허형범 선생은 길을 만들고 있다.


2006년 12월 19일 현직 중학교 교사인 허형범교사는 서울시교육청에 ‘양심·종교(의 자유) 침해에 관한 사례’에 대한 ‘시정명령 청구서’를 내고 만해NGO교육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그 동안 학교에서 양심에 갈등을 느꼈던 사항으로 1) 아침 조회 약식예배 및 종례  시 찬양 및 기도를 하도록 하는 학교의 지시 2) 학생제자 훈련과정(알파코스)의 일부 비교육적인 문제점 3) 일요일 종교기관 강제 탐방 4) 학생주간 예배 및 신앙부흥회 개최 시 학생들을 참여하도록 강제해야 하는 행위 5) 종교과목 평가의 점수로 우등상 지급을 차별하는 행위 6) 예배 헌금을 내도록 권해야 하는 상황 7) 담임으로서 부담을 느끼는 학생에게 교회출석을 자꾸 권해야 하는 상황  8) 학급 선교를 통해 학생증가 현황을 보고해야 하는 부담(학급경영안 중 일부 학년말 학년별 협의회 평가) 등에 대해 언급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청구내용에 대한 민원을 서부교육청 중등교육과로 이관한 상태이며 1월 19일 서부교육청 관계자는 “해당학교에 대해 학교장을 비롯한 관계자 면담 등을 통해 실태를 파악 중이다. 아직 뭐라 언급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학교는  1897년 10월 10일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인 W. M. Baird 박사에 의해서 평양에 창립된 기독교 학교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1972년부터 은평구에 대지를 마련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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