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확신'을 깨우치는 성찰과 생명 감수성 회복을 위해

책을 읽다가 가슴을 치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무지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잘못된 확신이다."

몇 번이고 곱씹다가 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의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잘못된 확신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생각해보니 트웨인의 말은 저 스스로에게도 던져볼 일입니다. 저 역시 잘못된 확신으로 모든 것을 부정하며 오로지 제가 선이라고 주장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못된 확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경우 본인 스스로 깨어있지 않다면 어떻게 하지요? 아니 성찰의 필요성을 굳이 느끼고 있지 못하다면? 아니면 스스로 매일 성찰하고 있다는 자기 최면 내지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어떡하죠? 사람은 뭐든지 자기중심으로 합리화 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이 부분에서 우리의 역할이 필요하겠습니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깨어나라!" 소리 높여 외치는 것 "성찰하라 성찰하라 성찰하라" 끊임없이 주문하는 것. 그것이 웬수(?)를 사랑하는 우리의 실천이겠습니다. 한 소리 더 하자면 "목숨붙이를 사랑하라 생명을 사랑하라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라" 는 절규 또한 절박한 우리의 목소리여야 하겠습니다. 용산을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들려 드리고 싶은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성호라는 분이 큰오색딱따구리가 둥지를 트는 모습을 보고 50여일 동안 기록한 사랑의 기록입니다. 비록 새끼사랑이긴 하지만 생명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바로 이런 감정 아닐까란 생각이 어렴풋하게나마 들었습니다. 우리의 생명 사랑은 이것 이상이어야 하겠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지극 정성으로 작은 생명을 키워냅니다. 성장한 새끼는 어미 곁을 떠나는 것이 법칙. 그 이별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옵니다. 그 이별을 미처 알지 못한 아빠 새의 모습이 가슴 저밉니다.

"아빠 새는 둘째마저 둥지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분명히 올 것입니다. 아빠 새가 부리 가득 먹이를 물고 와 둥지 아래 줄기에 내려앉습니다. 둘째의 기척이 없자 둥지 입구로 접근합니다. 이상하다는 듯 둥지 안에 고개를 살짝 넣어 기척을 하고 다시 잠시 기다리지만 둘째의 모습이 보일 리 없습니다. 이제는 고개를 완전히 숙여 둥지 안을 살피다 둥지가 빈 것을 알아차리고는 깜짝 놀란 듯 날아가 둥지가 잘 보이는 남서쪽 소나무에 내려앉습니다.

오래지 않아 둥지에 다시 온 아빠 새가 이번에는 바로 둥지 안을 들여다봅니다. 아… 이것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빠 새가 나무 전체를 다 뒤지기 시작합니다. 가지란 가지는 모두 그리고 평소에 전혀 가지 않았던 둥지 한참 아래의 줄기까지 허겁지겁 이동하며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합니다.

엄마 새가 둘째를 데리고 나갈 때만 해도 간신히 참았는데 아빠 새가 비어 있는 둥지를 확인하고 나무 전체를 돌아다니며 둘째를 찾는 모습에서는 가슴이 꽉 메며 눈물이 쏟아집니다. 저토록 가슴이 무너지는 아빠새도 있는데 인사 제대로 못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빠 새는 일곱 번째 미루나무 전체를 돌아다니며 둘째를 찾고 있습니다. 벌써 네 시간째입니다. 아빠 새가 첫째와 둘째를 키운 정성을 잘 아는 나는 아빠 새가 더 이상 오지 않을 때까지 미루나무 곁에 함께 있어주기로 합니다. 아빠 새가 나무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미루나무를 다 뒤지면서도 올라가지 않았던 곳입니다. 부리에는 네 시간 전에 물고 왔던 먹이가 그대로 있습니다. 이제는 포기하는 모양입니다. 주위를 한 번 찬찬히 둘러보더니 그렇게 홀연히 먼 북쪽 산을 향해 날아갑니다."

하여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성찰의 첫 출발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진관동 생태경관지역의 모습. 멀리 북한산이 보이고 위로 높이 뻗어있는 양버들이 보인다.     ©은평시민신문
이제 미루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굳이 연결고리를 찾자면 큰오색딱따구리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워낸 고마운 나무가 미루나무였다는 사실입니다.

미루나무를 떠 올리니 바로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솔바~람이 불어~와서 살짝 걸쳐놓고 갔지요!♬ 라는 동요가 떠오릅니다. 놀라운 학습의 효과입니다.
 
연이은 연상 작용. 6살 땐가 우리 동네에 들어선 신작로가 떠오르고 신작로 주변으로 심겨진 하늘로 쭉쭉 빵빵 솟아 오른 나무가 떠오릅니다. 그럼 그 때 쭉쭉빵빵 나무가 미루나무였던가? 그렇다고 알고 있었죠.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미루나무"가 아니라 "양버들"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이들은 그 나무를 빗자루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잭과 콩나무"에 등장하던 거인이 쓰던 빗자루가 땅에 떨어져 거꾸로 박혔었나 봅니다.

그럼 미루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보통 미루나무와 양버들 이태리포플러를 모두 포플러로 부릅니다. 옛날 발음은 '뽀뿌라'. 미루나무는 미국에서 들여온 나무라고 해서 얻은 이름이고 양버들은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얻은 이름입니다. 이태리포플러는 최초에 이탈리아에서 들여와 심었다고 해서 이태리포플러입니다. 세 종류 모두 비슷한 나무들입니다.
 
양버들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늘 높이 빗자루처럼 자라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서울에서 본 양버들로는 은평구 진관동 '진관동생태경관보전지역'에 자라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미루나무는 양버들과는 달리 가지가 제법 옆으로 퍼져 있어 전체 모양이 다릅니다. 잎이 작고 넓이가 길이보다 더 긴 양버들에 비해 미루나무는 잎이 더 크고 길이가 넓이보다 더 큽니다.
 
서울에서 미루나무를 본 기억은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태리포플러는 양버들과 미루나무 사이에 생긴 잡종입니다. 그러다보니 양쪽 나무에서 조금씩의 특징을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도 서울 여기저기서 가끔 발견할 수 있는 나무입니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생태경관보전지역에도 이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모든 나무가 그렇듯이 "포플러"도 나무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우선 포플러가 이 세상에 생겨나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로 태양의 아들에 페톤(Phaethon)이라는 신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페톤은 아버지 태양신의 허가를 얻어 일륜차를 타고 하늘나라의 넓은 벌판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륜차를 이끌고 있는 말을 잘 다루지 못해서 세계에 큰 화재를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이때 아버지 태양의 신이 크게 노하고 번갯불로써 아들 페톤을 죽이고 이것을 지구 위에 던지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떨어진 곳은 이탈리아 북주 비장에 있는 포오(Po)강이었습니다. 페톤에게는 여동생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죽음을 슬퍼한 여동생들은 오빠인 페톤의 영혼의 명복을 빌기 위해 포오강으로 가서 포플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포플러는 여성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양버들. 이미지 출처 http://cafe336.daum.net/_c21_/bbs_search_read?   ©은평시민신문
빗자루처럼 자라 보기에 딱 좋은 "양버들"이 가지를 하늘로 향해 빗자루 모양을 하고 있는데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옛날 모든 나무들이 잠이 들고 있었습니다. 수풀의 세상은 적막 그것이었고 다만 밤새들의 노래만이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노인이 숲 속으로 들어와서 외투 아래에 숨겨온 무거운 물건을 꺼내어 포플러나무의 가지 사이에 숨겼습니다. 그 뒤 노인은 총총걸음으로 숲을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 모든 나무들은 잠을 깨고 입에 묻어 있는 이슬을 털었습니다. 한줄기의 소나기가 오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서더니 하늘이 갰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포플러나무의 가지는 옆으로 자랐습니다. 이때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가 소리쳤습니다. 무지개의 다리 밑에 두었던 황금의 항아리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아이리스는 모든 나무들에게 항아리의 간 곳을 물어 보았지만 모두 고개를 흔들고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리스는 아버지 주피터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주피터는 성을 내어 번개와 천둥을 보내면서 항아리의 간 곳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때 모든 나무들은 역시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만 했습니다.  주피터는 모든 나무의 가지를 위로 치켜들도록 명령하고 조사에 나섰습니다.
 
슬프게도 포플러의 가지 사이에서 황금의 항아리가 떨어졌습니다. 포플러는 주피터에게 자기의 불명을 사과하고 용서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뒤부터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가지를 위로 올리고 있는 것은 아직 이 맹세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 나무의 말은 용기를 뜻한다고 합니다.
 
다시 이 대목에서 그 사람을 떠올립니다. 하늘 향해 아직도 그 맹세를 지키고 있는 "양버들"이 어쩌면 그를 포함해 우리보다 나은 생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용문헌

1. 김성호(2008)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웅진지식하우스. 295쪽.
2. 임경빈(1991) 나무百科(1) 일지사. 357쪽.
3. 임경빈(1997) 나무百科(4) 일지사. 310쪽.
4. 임경빈(2003) 나무百科(2) 일지사. 288쪽.
5. 윤주복(2008) 나무해설도감 진선books. 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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