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습지 도시민에게 소중한 공간' 둔촌동 습지 오리나무 군락 형성

환경올림픽이라고 흔히 불리는 ‘람사르 총회’가 11월 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림픽에 비유될 수 있다던 큰 행사였다지만 언론이나 일반인의 관심은 올림픽에 비해 100분의 1일에도 못 미쳤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어쩜 그것이 우리가 환경이나 생태에 관심 가지는 진정성과 현실의 정확한 반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여전히 환경이나 생태란 용어는 경제발전을 위한 치장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절에 환경이니 생태니 하는 말들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거북하고 불편하다고 이야기한다. 잠잠하던 ‘한반도 대운하’가 그런 분위기를 타고 다시금 꿈틀거리고 있다.

언론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11월 5일 람사르 사무국 아시아 담당위원이 서울의 조그마한 습지를 방문하였다.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단지에 바로 인접해서 자연습지가 오래 전부터 자리하고 있다.
 
비록 적은 면적이지만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용출수가 있는 자연습지이고 오리나무 통발 등을 비롯한 다양한 습지성 식물이 자라고 있어 ‘자연환경보전법’과 서울시 ‘자연환경보전조례’에 의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도시 내에 위치한 습지다 보니 항상 외부의 개발압력 이용압력에 직접 노출되어 있다. 그런 습지를 1996년부터 열정적으로 보전하는 일을 해오고 있는 ‘습지를 가꾸는 사람들’이라는 NGO가 있다. 회원이 몇 되지 않는 소모임 같은 NGO이다.
 
대표는 ‘최경희’라는 70대의 할머니이시다. 실질적으로 이 분이 모임을 만들고 지금까지 모든 활동을 이끌어 왔다. ‘람사르 총회’가 경남 창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람사르 총회 사무총장 앞으로 편지를 띄웠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람사르 총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람사르 협약은 지구 단위 국가 단위의 대규모 습지만을 대상으로 그 역할을 해 오고 있고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는 도시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습지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고 소중한 공간이다. 우리는 그런 도시 습지 중 하나인 ‘둔촌동 습지’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NGO이다. 우리는 도시 습지의 전형적인 모습과 문제점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다. 둔촌동 습지는 매우 작고 볼품없는 존재이지만 우리에게는 보석 같은 곳이다. 그런 습지가 여러 가지 외부 요인으로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다. 만약 이곳을 당신 같은 분이 방문하여 준다면 습지 보전활동에 커다란 도움이 되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답신이 왔다고 한다. 사무총장은 창원에서의 일정이 너무 빽빽하게 짜여 있어 아쉽지만 방문이 어려우며 대신 아시아 담당위원이 그곳을 방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 날이 바로 11월 5일이었다. 서울시 관계자 강동구 관계자 지역신문 NGO회원 정도가 참여한 작은 행사였다. 
 
이날 아시아 담당위원은 짧은 인사말을 통해 ‘람사르 협약’을 소개하고 이번 창원에서 폐막한 ‘람사르 총회’에서 결의된 중요한 의제 하나를 소개하여 주었다.
 
바로 ‘도시 습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보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의문이었다. 도시 습지는 도시 내에 존재하거나 도시 경계에 인접한 습지인데 이런 습지는 많은 도시민이 직접 체험하고 삶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소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 삶의 경험을 통해 습득한 습지에 대한 감수성은 보다 넓은 습지 지역 보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아시아 담당위원의 인사말 이후로 서울시 관계자의 ‘서울시 습지 보전 정책과 비전’에 관한 짧은 발표가 있었고 곧이어 ‘습지를 가꾸는 사람들’의 사무국장이 ‘둔촌동 습지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으로 짧은 발표를 하였다. 이어 습지를 직접 거닐며 다양한 생물상과 습지경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 둔촌동 습지의 모습 사진출처:위례청소년지킴이(http://cafe.daum.net/weerey)     ©
이미 밝혔듯이 둔촌동 습지는 많은 생물들의 보금자리이다. 오리나무도 그 중의 하나이다. 예전에는 흔했다고 전해지는 오리나무가 서울 대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나무가 되어 버렸다.
 
특히 군락을 형성하는 곳은 더더욱 희귀하다. 오리나무 여러 그루가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둔촌동 습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커다란 오리나무들 앞쪽으로는 떨어진 씨앗이 발아되어 자란 작은 오리나무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다.
 
이제 제법 자라 높이 2~3m 정도 되는데 3년 동안 ‘습지를 가꾸는 사람들’이 아주 세심하게 관심을 갖고 관리한 결과이다. 해마다 늦봄이 되면 오리나무 잎벌레가 어린 오리나무들을 무차별하게 공격하였다. 잎을 갉아먹는 잎벌레를 일일이 나무젓가락으로 잡아내기를 3년 동안 진행하였다. 이젠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나무가 튼튼해졌다. 저 나무들이 더 크게 자라는 훗날 이 습지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다.

▲ 오리나무 잎     © 은평시민신문
‘십 리 절반 오리나무’라는 전래 동요 가사처럼 오리나무는 옛날에 거리를 나타내기 위해 오리마다 심어서 오리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습한 땅을 좋아해 전국적으로 산기슭의 개울가나 습지 등에서 자라는 오리나무는 생각보다 쓰임새가 많다. 화학비료가 없던 옛날에는 오리나무 가지를 잘게 썰어 논에 비료로도 뿌렸다고 한다.
 
오리나무는 근류균과 공생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모든 식물이 생장하기 위해서는 질소 성분이 매우 많이 필요하다. 공기 중에 상당히 많이 분포하는 질소이지만 식물은 이 질소(N2)를 직접 이용하지 못한다. 이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게 NH4+로 변환시켜 주는 특정 미생물 들이 있는데 오리나무 뿌리에는 이런 미생물이 살고 있다. 오리나무는 이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자신이 만든 탄수화물을 공급한다. 미생물은 질소고정작용을 통해 생육에 많은 양을 필요로 하는 질소 양료를 공급한다. 오리나무는 그래서 척박한 토양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자란다.

오리나무는 염료 식물로도 중요했다. 열매는 붉은색이나 흑갈색 물을 들이는 데 이용하였다. 또 나무껍질이나 열매에는 타닌 성분이 들어 있어 물이 잘 들기 때문에 물감 원료로 이용했다. 그래서 ‘물감나무’라는 별명도 있다.
 
특히 물고기를 잡는 어망이나 반두라고 하는 작은 그물은 오리나무로 물을 들였다. 가볍고 연하면서도 잘 터지지 않는 목재로는 나막신이나 얼레빗 등을 만들었고 그중에서 안동 하회탈은 반드시 오리나무로 만든다고 하였다. 또 오리나무 숯은 화력이 강해 대장간의 풀무불 숯으로 사용했다.

약재로도 썼다. 가을철에 잎이 떨어지기 전에 열매를 따서 약으로 쓰는데 한방에서는 지사제나 위장에 질병이 있을 때 처방하며 민간에서는 껍질을 달여 산후에 피를 멎게 하거나 위장병 눈병 류머티즘 후두염 등에 쓴다고 한다. 또 봄철에 달리는 수꽃화서는 폐렴에 좋다고 한다.

눈 앞에 펼쳐진 오리나무 숲을 보면서 오리나무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아시아 담당위원은 놀라움과 함께 미소로 답례했다.

행사는 마무리되었고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앞으로 둔촌동 습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5년 10년 20년 그리고 100년 후. 미래의 모습은 여러 가지 변수로 결정될 것인데 사람들의 가치와 정책이 가장 커다란 영향변수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어 보인다. 아무쪼록 오리나무가 커다란 숲을 형성할 미래의 둔촌동 습지를 기원한다. 

 
-참고문헌-
1. 윤주복(2008) 나무 해설 도감 진선books. 350쪽.
2. 이유미(1995)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 현암사. 647쪽.
3. 박상진(2001) 궁궐의 우리나무 눌와. 433쪽.
4. 이경준 등(2007) 산림생태학 향문사. 3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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