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앞마당까지 차타고 들어오도록 길을 내신다고요?'
 
지하철 2호선 교대역에서 내리면 TV에서 가끔 보던 웅장한 검찰청 건물이 지척입니다. 검찰청 옆으로는 고등법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등법원 역시 검찰청 못지않은 거대건물입니다. 건물만 봐도 우선 주눅이 듭니다.
 
‘휴먼스케일’이란 말이 있는데요. 사람의 체격과 신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규모는 안정과 편안함을 주지만 몇 십 배를 넘어서는 거대 규모의 공간과 물체는 인간을 압도하고 주눅 들게 만든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판사와 검사님들은 그런 것쯤 이미 알고 적극 활용하신 건 아닐까 잠깐 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분들 만나기도 전에 주눅 들어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오호 이런…….

살면서 병원 경찰서 법원은 가급적 가지 말아야 할 곳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생활하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더군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법원출입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자초지종인즉 이렇습니다.
 
서울에서 두 번째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둔촌동생태경관보전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이 지정되기까지 한 할머니의 엄청난 헌신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습지를 가꾸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10년 넘게 오로지 둔촌동 습지를 보전하고 지키는 일을 해 오고 있습니다.

▲ 출처는 다음 까페 http://cafe.daum.net/weerey(WYK 위례청소년지킴이). 이 동회회 청소년들이 둔촌동 습지 탐방활동을 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은평시민신문
▲ 사진출처:http://cafe.daum.net/weerey(WYK 위례청소년지킴이).     ©은평시민신문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습지 주변에 거대한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직선거리로는 습지에서 30m도 안 되는 거리입니다. 알고 보니 ‘교회’ 건물이더군요. 개발제한구역인데 어떻게 저렇게 큰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좌우지간 그 건물은 완공이 되었고 갑자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이 되면 찾아오는 교회신도들이 보기에 기존에 산림 내부에 있었던 옛날 길이 너무 좁아 불편하였나 봅니다. 차량 한 대가 통과할 수 있는 충분한 넓이의 공간인데 교회 입장에서는 아주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차량 교행이 안 되니 말입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차량통행은 물론이고 사람의 왕래도 거의 없던 이 길을 갑자기 넓히기 시작하더군요. 불도저가 나타났습니다. 산책로를 넓힌다고 주변에서 자라던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내고 밀쳐내면서 길을 다듬더군요.
 
그것도 모자라 큰 길과 연결되는 옛날 길을 복원한다고 난리법석입니다. 그 길은 큰 길 공사로 인해 유명무실해져 이제는 흔적만 남아있고 풀과 나무가 자란지 오래된 지역입니다. 당연히 강동구청에서는 도로로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했고 이에 불복한 목사님은 법원에 소송을 냈답니다.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 교회 신도들이 차를 타고 편안하게 교회 마당까지 들어오게 하겠답니다. 그리고 사람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자연이라는 말씀도 덧붙입니다. ‘습지를 가꾸는 사람들’은 현 소송의 강동구청측 참고인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단체를 본의 아니게 돕고 있는 형편이라……서두가 길었습니다.

▲ 사진의 원 출처는 알 수 없습니다. 다음 까페http://cafe.daum.net/taejon70의 배롱나무(도종환시)글에서     ©은평시민신문
법원 정문 앞에서 만난 '배롱나무' ...그래봤자 '화무백일홍'이지!'

 
심난한 마음으로 법원 정문을 멀리서 지나쳐 걸어가는데 정문 앞 잔디마당에 유난히 붉게 빛나는 꽃을 자랑하는 식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무입니다. 초가을로 접어든 이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라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머리 속에서 이것저것 저것이것 자르고 붙이고 해보니 ‘아하 저거 배롱나무구나!’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배롱나무는 중국이 고향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관상수로 심어 길렀습니다. 화초 중에 100일 동안 지지 않는다는 백일홍이 있습니다. 배롱나무 꽃도 100일 동안 핀다 하여 ‘나무백일홍’이라고 부른답니다. 나무이름 역시 처음 백일홍나무로 부르다가 ‘배기롱나무’를 거쳐 배롱나무로 변화된 것 같습니다.

정말 100일 동안 피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꽤 오랫동안 붉은 꽃을 감상할 수 있는 나무입니다. 물론 꽃 하나가 그렇게 오래 가는 것은 아니고 꽃이 시들면 또 다른 꽃이 피고 해서 전체적으로 붉은 기운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죠.
 
배롱나무는 다른 재미있는 이름이 많습니다. 얼룩무늬가 있는 매끄러운 줄기를 긁으면 마치 간지럼을 타듯 나무 전체가 움직인다 하여 ‘간질나무’ ‘간지럼나무’라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저금 타는 낭’이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오래된 줄기의 표면은 연한 홍갈색이고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얼룩무늬가 생겨 반질반질해 보입니다. 발바닥이나 겨드랑이의 맨살을 보면 간지럼을 태우고 싶은 충동을 느끼듯이 중국 사람들은 배롱나무 줄기를 보고 간지럼에 부끄러워 몸을 비비꼬는 모양이라 하여 파양수(怕揚樹)라 불렀습니다. 중국이름으로 자미화(紫微花)란 것도 있습니다. 자주빛의 작은 꽃이 핀다는 뜻인 모양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껍질이 너무 매끄러워 나무 타기의 명수인 원숭이도 떨어진다고 해서 ‘さるすべり-원숭이 미끄럼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사진의 원 출처는 알 수 없습니다. 다음 까페 http://cafe.daum.net/taejon70의 배롱나무(도종환시)글에서     ©은평시민신문
조선 세조 때 문신 강희안이 지은 《양화소록》에서는 배롱나무(자미화)를 두고 “비단 같은 꽃이 노을 빛에 곱게 물들어 정원에서 환하게 사람의 혼을 뺄 정도로 아름답게 피어 있으니 풍격(風格)이 최고이다. 한양 공후(公侯)의 저택에는 뜰에 많이 심어 높이가 한 길이 넘는 것도 있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예전부터 그 꽃색과 꽃을 피우는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사랑을 전해 주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제주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싫어하여 심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무껍질이 매끄러운 것을 두고 마치 살이 없고 뼈만 남은 꼴로 불길하다는 것이고 더욱이 빨간 꽃은 피로 상징되어 이 나무가 죽음을 연상시키는 불길한 나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래 피다 보니 참고 견딤을 상징하는 나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이 나무의 줄기가 미끄럽고 윤기가 있는 까닭에 웅변(雄辯)을 그 나무의 말로 삼습니다. 강물이 흐르는 듯한 유창한 변설에 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백일홍에 얽힌 이야기로는 “옛날에 어떤 미소년이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 한눈에 좋아졌다. 그래서 그 소년은 아가씨에게 사랑을 고백했더니 그 소녀도 뜻이 같았다. 그러나 이 소년은 그곳을 떠나야만 할 사정이 있어서 소녀에게 말하기를 꼭 1백 일 뒤에 이곳에 올 터이니 그때 만나자고 했다. 이 소녀는 날마다 이곳에 와서 소년을 기다렸으나 지치고 지쳐서 99일 만에 죽고 말았다. 틀림없이 1백일 만에 찾아온 소년은 이것을 알고 소중하게 그 소녀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뒤 이 무덤 옆에 한 그루의 나무가 나서 꽃이 1백일을 피었다. 이제부터는 백날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의 나무였다. 이 나무를 이름하여 백일홍이라 했다.” 라는 설화가 전해집니다. 너무 흔한 이야기라고요. 기다림에 얽힌 우리네 삶의 기억들을 한번 떠올려보시면 어떨까요?

배롱나무는 어느 곳에 가도 무리지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음지에서 자라는 배롱나무도 볼 수 없습니다. 햇빛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

배롱나무는 추위에 약하여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월동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중부지방에서도 배롱나무를 자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만큼 도시가 따뜻해진 걸까요? 지구온난화란 단어가 퍼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예쁜 꽃도 10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짧은 순간의 영화 명예 그리고 부귀를 탐내며 살아가는 힘 있는 자들에게 하는 말 같습니다. 그대들이여 혹시 100일 꽃을 피운다는 배롱나무보고 위안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봤자 고작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입니다. 이 모씨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참고문헌-

1. 윤주복(2008) 나무 해설 도감 진선books. 350쪽.
2. 박상진(2001) 궁궐의 우리 나무 눌와. 433쪽.
3. 임경빈(1991) 나무백과(1) 일지사. 357쪽.
4. 허북구 박석근 이일병(2004) 우리나무 이름의 유래를 찾아서 중앙생활사. 343쪽.
5. 이유미(1995)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 중앙생활사. 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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