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 되면 온 나라가 벚꽃축제로 들썩인다.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경남 진주를 거쳐 서울 여의도를 지나 강원도 동해까지 벚꽃과 사람들로 온 거리가 북새통이다.
 
덩달아 벚꽃에 취해 흘러가다 문뜩 이건 아니지 싶었다. 벚나무가 싫어서가 아니라 획일화가 싫은 거다. 수없이 많은 나무들 중(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종류가 대략 1000종 된다고 한다.) 온 나라를 벚나무 한 종이 평정하고 사랑받는 것이 왠지 부당하다는 느낌이다.
 
획일화가 점점 더 강화되는 것 같다. 예전과 다르게 거리 가로마다 벚나무가 점점 많이 식재되고 늘어나는 느낌이다.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다양하면 좋다고 그러던데 지역마다 마을마다 동네마다 그 지역 환경과 풍토 문화와 어울리는 나무들이 자라고 공존하는 세상이 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부질없는 생각인가? 사람세계도 그러지 못하는데……

여하튼 벚나무는 사람들을 매혹하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화려한 벚꽃이 하나고 맛있는 버찌가 다른 하나다. 다른 것도 있나? 박재동의 '인생만화'를 읽다가 유쾌한 환상 이야기를 접하고 하하하 웃고 말았다. 속아 넘어갈 뻔 했다. 그대로 옮겨본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은 봄이 시작되면 나무와 새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남쪽 열대지방에는 더운 곳이 싫어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으로 올라와 살려고 항상 꿈꾸는 자그마한 새가 있다.
 
그러나 저온에 적응하는 체질로 바꾸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였다. 그게 뭐냐면 우리나라 초봄이 시작될 무렵 어떤 나무의 가지에 물이 처음 올라올 때 나무껍질을 쪼아 그 수액을 먹으면 체질이 바뀌어 우리나라에서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면 남쪽 나라에서 수천수만 마리의 새떼들이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아무 소리도 없이 날아와 어떤 나무에 앉아 껍질을 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도 그에 대비해서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그게 뭐냐면 나뭇가지에 작고 동그란 폭탄들을 무수히 장치해놓은 것이다. 이 폭탄은 조금만 건드려도 파악 하고 터져버린다.
 
이윽고 새떼가 밤에 날아와 앉으면 이 폭탄들이 파악 팍 팍 팍 터져 놀란 새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계속 옮겨 다니다가 견딜 수 없어 다시 남쪽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새 이름이 버찌새인데 이들이 터트린 꽃 폭탄을 버찌꽃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벚꽃이라 부르고 있다." 

생각해 보니 이야기대로 벚꽃은 폭탄이다. 사람을 황홀케 하는 그런 폭탄. 사람을 죽이는 그런 폭탄 말고 어릴 적 명절만 되면 갖고 놀던 콩알탄 같은 폭탄. 파악 파악 팍 팍 팍……

벚꽃의 단점이라면 꽃 피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 한 일주일 쯤 가려나? 화려한 대신 짧다. 꽃잎이 떨어질 때도 한꺼번에 져 버린다. 그것도 다섯 장의 꽃잎이 한 장씩 떨어져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뒤돌아보지 않고 갈 길을 떠난다. 산화(散花)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는데 더 나아가 꽃다운 나이에 전쟁에서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우리는 ‘산화했다’고 말한다.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가 생각난다. 일본의 국민정신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걸까?

꽃만 짧은 것이 아니라 벚나무 자체도 그렇다. 다른 나무는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살기도 하는데 벚나무는 고작 50~60년이다(물론 어딘가에는 그 보다 더 오래 사는 나무도 있을 것이다). 이걸 보고 '미인박명(美人薄命)'에 빗대 미목박명(美木薄命)이란 사람도 있다. 화려한 벚꽃을 피우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쓸수밖에 없을 테니 그럴 듯하다.

그렇게 화려하던 벚꽃도 4월 말쯤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꽃잎은 장렬히 산화한지 오래고 이제 열매를 익히기 위한 잎사귀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이제 곧 있으면 열매들이 보라색으로 물들 것이다.
 
그때 쯤 되면 버찌새는 아니지만 많은 산새들이 벚나무 열매로 잔치를 벌일 것이다. 그때는 새들의 똥도 보라색으로 물든다. 사람들도 가끔 버찌를 즐긴다. 열매를 크게 다는 벚나무 품종도 있다. 시장에서 가끔 그 열매를 본다. 버찌를 먹고 나면 입술과 혀가 보라색으로 변한다. 요술을 부리는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은 벚꽃보다는 열매에 더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벚나무란 이름도 버찌가 달리는 나무란 뜻이다. 하긴 어떤 학자에 의하면 옛 문헌에는 벚꽃 구경과 관련된 내용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벚꽃 구경은 아무래도 일본 문화인 듯 싶다. 일본 사람들은 벚꽃 참 좋아한다. 아예 일본 국화가 벚나무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왕벚나무이다. 해마다 벚꽃이 만개할 때면 일본 열도 전체가 벚꽃 구경으로 들썩인다.
 
'짱구는 못 말려'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니 그런 내용이 있었다. 신입사원이 아침부터 회사 출근하지 않고 화려한 벚나무 아래 공간을 점하고 있다. 짱구 일행이 그 공간을 조금씩 침범하고 회사원은 그 공간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오후쯤 되자 맑던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면서 장대비가 쏟아진다.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일순간 물거품. 회사원은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벚꽃이 만개 할 때면 신입사원이 하는 역할 중 하나가 좋은 벚나무 아래 자리를 잡아두는 거란 이야기를 듣고 일본사람들 벚꽃사랑이 거의 광적인 수준이구나 생각했다.
 
그런 연유로 일제시대 때 조선왕조의 궁궐이었던 창경궁에 벚나무를 대량으로 심고 봄이면 놀이터로 활용했던 것일까? 아이러니한 건 왕벚나무 자생지가 일본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한라산과 해남 대둔산 자락에 왕벚나무 자생지가 분포하고 있다.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자생나무인 것이다.

벚나무에는 종류가 아주 많다. 왕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수양벚나무 벚나무 등.

다음은 벚나무에 대한 몇 가지 정보. 벚나무는 예전에 중요한 군수 물자였다고 한다. 벚나무 껍질을 궁수가 활의 손잡이 부분을 잡을 때 아프지 않도록 매끄럽게 해주는 마감재로 썼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의 60% 이상은 산벚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야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나무가 무르지도 너무 단단하지도 않아 글자를 새기기에 적당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벚나무는 전정(모양을 다듬기 위해 가지를 손질하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까다로운 나무이다.

여하튼 벚꽃의 계절은 여지없이 흘러갔고 또 다른 나무의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그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참 조만간 은평뉴타운에도 왕벚나무 가로수길이 생길 모양이다. 은평뉴타운 1지구 창릉천변 가로에 왕벚나무를 심고 있다. 물가이니 능수버들 가로수길이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이왕 심어진 왕벚나무 잘 자라서 화려한 꽃들로 이곳에서 쫓겨난 많은 넋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

❀ 참고문헌
1. 박상천(2001) 궁궐의 우리 나무 눌와. 433쪽.

2. 박재동(2008) 인생만화 열림원 344쪽.
3. 이남숙(1998) 모든 들풀은 꽃을 피운다 중앙M&B. 254쪽.
4. 이유미(1994)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 현암사. 647쪽.
5. 허북구 박석근 이일병(2004) 재미있는 우리나무 이름의 유래를 찾아서 중앙생활사. 343쪽.
6. 현진오(2006) 자연 박사가 되는 이야기 도감 나무 뜨인돌어린이. 151쪽.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