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쓰기’ 숨은 고수 이상백 선생님을 만나다

내가 살고 있는 역촌동은 은평구 평생학습관이 가까이 있어서 참 좋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그 자리엔 역촌동 주민센터가 있었는데 어느 새인가 공사에 들어가더니 번듯한 4층짜리 건물로 변신하여 은평구민 앞에 나타났다.

그 평생학습관에서 열리는 강의 중 가장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은평구의 숨은 고수들을 발굴해 무료로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 ‘숨은 고수 교실’이다. 지금도 계속 열리고 있는 숨은 고수 교실은 각종 공예 마술 외국어 커피 연극 의례 댄스 등등 우리 일상생활에 맞닿아 있는 다양한 문화 예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그 수많은 숨은 고수 교실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이상백 선생님이 진행하는 ‘자서전 쓰기’이다. 우리 모두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고 수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문자든 연극이든 영화로든 남겨서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후손들과도 공유해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이었는데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실천으로 옮기는 분을 은평구에서 만나니 놀랍고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수업을 듣지는 못했지만 계속 염두에 두고 있다가 은평시민신문의 시민기자가 된 것을 계기로 이상백 선생님께 연락 드려 수업을 참관하고 인터뷰를 나눴다.

▲이상백 선생님     ©은평시민신문

 이상백 선생님의 수업은 그새 숨은 고수 교실에서 평생학습관 정규 수업으로 승격해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자전적 수필쓰기’란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 15일 한창 수업이 열리고 있는 강의실을 찾았다.

구산동 주민이기도 한 이상백 선생님은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으로 다섯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이 수업을 진행하시게 된 계기를 여쭤보니 본인의 특별한 경험과 함께 풀어놓으신다.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명예퇴직 하고 강의를 들으러 다녔는데 인문학 프로그램이 참 좋았어요. 일상의 기록이란 게 하찮은 거 같지만 역사를 이룰 수도 있거든요.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째인데 어머니 일기를 보면서 그 속에 저나 우리 식구들이 같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면서 지역 주민으로서 제가 가장 잘 아는 문학을 가르쳐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숨은 고수 교실에 ‘자서전 쓰기’로 지원했는데 반응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인지 수강생들 연령대는 50~60대가 제일 많고 40대 70대가 그 다음이라고 한다. 수필을 모아 ‘기억의 뜰’이라는 수필집도 냈다.

“수강생 분들이 처음에 오실 때는 다들 얼굴이 어두워요. 그런데 수업을 거듭할수록 얼굴이 밝아져가요. 속에 있는 이야기가 다 나오거든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한 것을 글로 표현하면서 편안해지는 거죠”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실 때보다 지금 훨씬 더 보람을 느끼신다는 이상백 선생님. 그간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사람만 오십 명이 넘는다고 하시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수강생은 어떤 분인지 여쭤봤다.

“좀 전에 편지를 읽어주신 옥경순 할머님이세요. 연세가 많으신데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어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이 해소하셨죠. 독서를 30년 동안 하셨는데 그걸 다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수필가로 등단할 기회를 드리려고 해요. 이번에 작품을 발표하실 계획이에요”

▲옥경순 할머니     © 은평시민신문

그 말씀에 바로 옆에 계신 옥경순 할머니(75세)와 인터뷰를 했다. 갈현동에 살고 있는 옥경순 할머니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며 등단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예비수필가다. 인터뷰 당일에는 이사 가시기 전 살던 집에 남기는 편지를 읽기도 했다. 수업을 듣기 시작한 후로 바뀐 점은 없는지 물으니 평소엔 말로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이 수업을 들은 후로 표현력이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중에도 이 수업에 올 걸 생각하면 즐거워진다고 한다.

인터뷰 후 기자는 이상백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소 나보다 20년 이상 더 사신 인생 선배 분들에게 유익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세대 간 소통 단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책이든 인터넷 게시물이든 각자의 이야기를 서로 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 대로 그 분들의 이야기를 은평시민신문을 통해 전하려 한다. 기대하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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