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금)에는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약 200명의 지역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했다. 

▲ 서울시 주최 혁신파크 주민설명회     © 임세환 기자


설명회 직전에 은평구 곳곳에 “지역경제 활성화 및 문화‧복지 증진을 위한 제2의 강남 코엑스를 보건원 부지에 유치하자”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구국립보건원부지 활용 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라는 낯선 단체가 그렇게 갑자기 등장했다. 대책위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혁신파크 비전에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며 옛국립보건원 부지 활용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주민 설명회에서는 갈등이 몸싸움 양상으로까지 번졌다.

혁신파크는 옛국립보건원 부지를 사회혁신 클러스터(무리집단)로 조성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계획을 공간화 한 개념이다. 이미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 이어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청년허브 순으로 시정의 주요 기관들이 잇달아 옛국립보건원 부지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 설명회는 아직 비어 있는 공간을 포함해서 옛국립보건원 부지 전체의 개발계획에 대한 조감도를 놓고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대책위는 박원순 시장의 혁신파크 구상이 은평구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 입안됐던 고층의 랜드 마크 건립과 컨벤션 전시장 회의장 등 MICE(마이스) 산업단지를 조성하자고 주장했다.

논란의 와중에 서울시가 수색역에 MICE 시설을 유치하는 내용이 포함된 수색 역세권 개발 용역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지난 4월에 서울시가 ‘공공개발센터’를 통해 공공 및 민간 토지개발사업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며 수색역과 성북역 등 주요 역세권에 대해 코레일 철도시설관리공단 해당 자치구 등과 협의해 개발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면 재개발이 아닌 리모델링으로 혁신파크 조성할 것”

▲ 혁신파크 조감도     © 임세환 기자


두 차례의 설명회에서 조인동 서울혁신기획관이 총대를 멨다. 조인동 기획관은 옛국립보건원 부지가 서울 서북권에 남아있는 유일한 거대 부지로 “지역 산업 기반이 취약하고 재정자립도가 낮고 문화 편의시설도 부족한 은평구의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옛국립보건원 부지를 “전국 어디에서나 혁신과 창조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싶은 사람 누구나 한 번씩은 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겠다. 혁신은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며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은평구 옛국립보건원 부지에 혁신 발전소 혁신도서관 및 연구센터 서울크리에이티브랩 시민참여지원센터 청소년 직업체험센터 50+ 플라자 개방형 기록원 등 다양한 세대별 분야별 혁신 시설들이 입주하고 클러스터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개발은 전면 재개발 방식이 아닌 상태가 양호한 기존 건물을 용도에 맞게 리모델링하고 오래 되서 위험한 건물들만 허무는 방식으로 하겠다고 했다. 또 이후에 새로운 수요가 등장하면 공간을 쓸 수 있도록 충분한 유휴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냈다. 2013년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14년에 기존 건물 리모델링과 미활용 건물 일부 철거를 해 2015년부터 서울 혁신파크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조인동 기획관은 최종적으로 혁신파크가 완성되면 “2300명의 상주인구가 일을 할 것이다. 사회적 기업 판매장이라든지 신규 일자리에 지역 주민들의 고용도 가능하다. 연간 약 200만 명의 유동 인구가 발생할 것이며 특히 젊은 층의 유입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간 약 3000억 원의 부가가치 창출도 예상했다.

1일의 설명회 직후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우영 구청장은 “혁신파크는 사실상 서울시민경제청이다. 향후 10년 이내에 제2의 서울시청이 들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조인동 기획관도 주민설명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혁신파크 조성은) 실제로 시청 하나가 와 있는 것과 똑같다. 거기에 계속 임대아파트를 짓고 그래야 하나?”라고 말했다.

“서울에는 외국 관광객이 파친코 할 곳도 없어”

혁신파크는 오세훈 전 시장의 전면 재개발을 통한 고층 호텔 등 MICE 산업단지 유치 계획과는 기본 방향이 다르다. 오세훈 전 시장의 계획은 2010년 가을에 투자심사에서 투자자를 발굴하지 못해 중단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면 재개발의 욕망이 남아 있다.

조인동 기획관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 설명회에서 “대규모 상업 시설과 업무 시설을 고층으로 짓는 방식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용산 개발이 좌초한 사태에서 보듯 부동산 경기 퇴조로 민간 자본 조달이 어렵다. 또 이런 방식의 개발 이익이 주변에도 나눠질 것인가. 어렵다. 대형 쇼핑 시설이 주변 상가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반면 혁신파크는 “투자 대비 효율성이 높고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서북권의 새로운 명소로 탄생해서 지역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 설명회장 앞에 내걸린 '제2의 강남 코엑스를 유치하자' 캠페인 현수막     © 임세환 기자


혁신파크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전망을 부족한 것 혹은 거짓말로 여긴다. 김종선 은평구의회 의장은 “은평구는 살아갈 동력이 없다. 국립보건원 부지는 은평구 주민의 생명보다 중요하다. 어떻게 해서든 보건원 부지를 활용해서 실물경제 일으켜 실질 경제소득을 향상시키고 세수 증대에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해마다 서울에 1천만 명의 관광객이 왔을 때 저녁에 파친코를 할 데가 없다. 서울시에서 관광사업 개발한다고 하면 얼마나 좋은가. 대규모 관광특구 개발하면 바로 실물경제가 살아난다.”고 주장했다.

“혁신파크는 박근혜 정부에도 좋은 아이템”

1일의 구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는 법적 절차가 아니다. 옛국립보건원 부지는 서울시 소유의 땅이기 때문에 개발도 서울시청이 서울시의회의 동의를 얻어 진행할 일이다. 그럼에도 설명회를 연 이유에 대해서 김우영 구청장은 “속도의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선거 때마다 여러 정치적 욕망이 거쳐 가는 정거장이 되어버린 옛국립보건원 부지 활용 문제를 2015년에 매듭지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구의회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가진 이유는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하면 이후 정쟁적 갈등이 있을 거라서”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쟁적 갈등은 이미 시작됐다. 2014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기세다. 구의회에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혁신파크에 반대하고 있고 이를 지지하는 시민사회 대책위까지 구성됐다. 혁신파크가 추진 동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가 의문인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우영 구청장은 혁신파크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창조경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이 부족하다. 그런데 혁신파크와 창조경제가 유사한 측면이 있어 중앙정부가 추진하기에도 좋은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혁신파크를 범정부적으로 아시아 세계 속의 혁신파크로 자리 잡게 한다면 킨텍스 코엑스 팜스퀘어가 부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와도 여러 번 접촉했다고 말했다.

“수색역은 MICE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지역”

김우영 구청장은 같은 맥락에서 또 하나의 협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기자간담회에서 “수색역이 MICE가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지역”이라고 했다. 김우영 구청장은 “MICE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신년사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수색역에는 디지털미디어시티라는 컨셉이 있고 인천공항에서의 접근성 경의선 연결 등의 이점이 있다. 수색역으로 가자는 그런 의지를 밝혔으면 좋겠다고 코레일과 서울시에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서울시 용역에 이미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옛국립보건원 부지를 둘러싼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새로운 개발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계획이 틀어진 것이 결국 민간투자가 안 돼서 그런 것인데 수색역은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김우영 구청장은 “맞춤형 개발로 가면 된다.”고 했다. “용산 개발처럼 땅을 한 번에 고액으로 팔아서 사업자에게 2차로 개발하게 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거품을 일으켜 더 큰 거품을 일으키는 개발 확장 방식은 끝났다. 지가를 장기적으로 할부한다거나 장기적 수익 위주의 개발 모델을 만든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공연장을 지을 사람은 짓게 하고 지은 사람이 장기 운영해서 이익을 보는 모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판 꽃놀이패로 변질된 옛국립보건원 부지 활용 문제

정쟁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싶은 김우영 구청장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옛국립보건원은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정치권의 꽃놀이패가 됐다. 은평구의 제1야당인 새누리당 입장에서 옛국립보건원 문제 말고 꼬투리 잡을 것도 많지 않아 보인다. 현재 시점에서 옛국립보건원 활용 문제가 가지고 놀기 좋은 꽃놀이패다.

▲ 주민설명회에서 마이크를 두고 팔씨름을 하고 있는 조인동 서울혁신기획관(오른쪽)과 구자성 대책위 조직위원장     © 임세환 기자

3일 열린 주민설명회는 고층 빌딩과 MICE 산업단지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200여명의 사람들이 혁신파크에는 야유를 MICE와 호텔에는 박수를 보냈다. 조인동 기획관을 답변자로 한 질의 응답 과정에서 혁신파크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정해진 12시에 질의응답을 마무리하려는 조인동 기획관의 마이크를 구자성 대책위 조직위원장이 뺏으려고 해 한 동안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명재 대책위 추진위원장(전 은평구의회 의원. 새누리당)은 주민들의 항의가 “다시 한 번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달라는 뜻”이라고 했다. 동별로 설명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갈 길 바쁜 박원순 시장과 김우영 구청장의 발목을 잡는 수다. 김종선 구의회 의장은 두 차례의 설명회에서 “아직 안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속도를 내려고 해도 여러 번의 공청회를 더 거쳐야 한다는 점을 연거푸 확인했다. 

지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옛국립보건원 부지에 서울시립대 제2캠퍼스를 유치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선거 이슈로 급부상한 바 있다. 선거가 끝나고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립대가 계획이 없다고 밝혀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선거판에서 꽃놀이패 역할은 톡톡히 했다. 혁신파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다시 일어나면서 옛국립보건원 부지 활용 문제가 2014년 지방선거 때까지 활용하기 좋은 꽃놀이패이자 다양한 지역 이슈의 블랙홀로 예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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