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에 관한 추억
 
큰형은 46년생. 한국전쟁이 끝난 후 10대 후반에 이미 일제시대 때 온 나라의 산판을 휘저으며 나무를 실어 날랐던 제무시 도락꾸(G.M.C트럭)기사의 조수로 취직해 평생을 운전대로 먹고살았다.
 
베트남 전쟁에도 참여를 했으나 군단장 지프를 몰아 다행히 전운을 피할 수 있었고 70년대 초반 갓 결혼한 후 큰조카가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엔 사우디 개발의 전사가 되어 열사(熱沙)의 나라에서 산업역군 일을 톡톡히 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형이 사우디에서 귀국한 날의 풍경은 잊혀지지 않는다. 매일 밤 살구나무 아래 장독대 앞에서 정한수를 떠놓고 아들의 안녕을 기원했던 어머니는 벌써 동구 밖에 나가 형이 타고 오는 버스가 왜 이리 늦느냐고 재촉을 하시고 17가구가 살던 동네 사람들은 마치 대동놀이 회의를 하는 양 좁디좁은 초가집 단칸방으로 모여들었다.
 
형이 풀어놓은 선물은 대충 이랬다. 조니워커 블랙레벨과 캔트담배 그리고 각종 초콜릿. 내가 받은 것은 파카 볼펜과 카시오 전자시계. 물건을 하나씩 내놓을 때마다 긴 설명이 이어졌다. 도둑질하면 손 잘린다 여자와 눈 마주쳐도 감옥에 간다 술 마실 생각은 꿈도 못꾼다 등등. 이어 사우디 공사 현장의 더위와 열악함 힘든 노동의 나날을 얘기 할 땐 형도 어머니도 동네사람들도 눈물이 그렁그렁 했었다.
 
그때 동네에서 비행기를 타본 사람은 형이 유일했다. 당연히 하늘을 나는 기분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비행기 이 착륙의 긴장에 대하여 스튜어디스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기장의 제복이 얼마나 근사한지에 대하여 비행기 안에서도 밥을 준다는 것과 그 맛의 짜릿함에 대하여 긴 설명을 이어갔다.
 
그땐 레슬링하면 김일 축구하면 차범근 회사하면 현대 그리고 외국을 떠올리면 대한 항공(K.A.L)이었다. 김일과 차범근의 플레이는 전설처럼 멋진 추억으로 각인되어있고 현대(HYUNDAI)라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못할 짓 많이 한 회사 라는 건 그 후로 몇 년 걸려 알게 되었지만 대한항공(K.A.L)의 국적기에 대한 위상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국위선양과 관련하여 모든 멋진 놈들은 대한항공의 트랩을 밟고 내렸고 대한항공의 트랩을 밟고 장도에 올랐으니까. 하늘을 나는 태극기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데....
 
▲ 지난 7월 6일 나는29명의 순례단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에 나섰다. 분단을 넘어 대륙으로 미래로 향하는 길.     © 이지상
바이칼호수와 대한항공(K.A.L) 마치 천국과 지옥

 
지난 7월 6일 나는 29명의 순례단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에 나섰다. 분단을 넘어 대륙으로 미래로 향하는 길. 블라디보스톡의 안중근 하바로프스크의 김 알렉산드리아를 만났다 우수리스크의 최재형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도려내어 조국의 독립을 이루고자했던 순교자의 날선 핏방울을 가슴에 새겼다.
 
역이주한 고려인들의 마을인 우수리스크의 고향마을에는 희망 과수원이란 팻말을 세우고 거기서 자란 과일이 우리가 역사의 이름으로 빚졌던 고려인들에게 얼마나 큰 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궁리하며 흐뭇해했다.
 
두 번의 일출과 세 번의 일몰을 맞으며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맞은 바이칼. 발목만 닿아도 무릎까지 시리는 차가운 물에 온몸을 담구고 내장을 꺼내어 삶에 찌든 찌꺼기를 흔들어 씻는 나만의 의식은 전율이었다.

그렇게 스물아홉 도반들은 각자 때로는 함께 자근자근한 감동들을 쌓아가며 일정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13일이었던가 마지막날 밤 시베리아의 파리라 일컫는 이르쿠츠크에선 전제군주의 압제에 맞서 혁명을 꿈꾸었던 순진한 러시아 장교들 데카브리스트의 흔적을 더듬으며 시베리아에서의 마지막 보드카를 들고 건배 하던 시간이다.
 
안내자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이르쿠츠크발 인천행 비행기(kal983편)가 연착이 되었다는 전갈이다. 정확히 975분 11시간하고 15분이다. 아예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지 않았단다. 이르쿠츠크 공항에 낀 안개 때문이라는데 이렇게 청량한 하늘에 웬 안개인가 의문이 들고 공항 출발 두 시간 전인데 이제야 통보하면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싶기도 했으나 일단 벌어진 일.
 
부랴부랴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한다. 오전 세시 반 출발이 다음날 오후 두시 반 으로 늦춰졌으니 문제는 숙소와 이동수단인 버스다. 마침 이르쿠츠크에 대규모 유럽인들이 몰려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길바닥에서 자야한다는 안내자의 다급한 요청에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건 총 2000달러 쯤 되는 추가 비용 때문이다.
 
여행의 막바지라 대부분 주머니에 차비만 남겨둔 상태에다가 방학 중 알바비를 아끼고 아껴 참가한 대학생 큰맘 먹고 다섯 가족이 모두 참가한 경우. 기업의 지원을 받아 참가한 새터민 학생들에게 추가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될 터. 어찌어찌하여 순례를 준비한 희망래일과 후원해준 회사의 추렴으로 숙박을 결정하고 그 밤 K.A.L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안주 삼아 보드카를 들이킨다. 

이르쿠츠크 공항의 국제선은 무척 좁다. 80년대 비 내리는 호남선의 애환을 간직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의 호남선 대기실에 비해 약1/3도 안되는 수준이다. 아침 8시 반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비행기 탑승까지 무려 7시간을 더 지체해야 한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잠시 몸누일 공간도 없어 서너 평도 안되는 작은 상점을 들락거리며 연신 음료수만 먹어댔다. 
 
▲억울한 마음에 푸념이라도 할 요량으로 K.A.L 직원을 찾았으나 코빼기도 안비추고는 달랑 사과문 하나 붙어있다.     © 이지상
억울한 마음에 푸념이라도 할 요량으로 K.A.L 직원을 찾았으나 코빼기도 안비추고는 달랑 사과문 하나 붙어있다. 역시 안개로 인한 연착이란다. 죄송하다지만 죄송한 흔적은 공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래도 괜찮다. 나중이라도 K.A.L직원을 만나면 간단하게 섭섭한 심정을 전하자는 정도였다. 국적기 아니던가 하늘을 나는 태극기 아니던가 말이다.
 
문제의 kal983편이 도착하는 어제 저녁 이르쿠츠크 공항에 안개가 있었는지를 현지 공항 직원에게 물었다. 대답은 “아니요”. 오히려 직원은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제 K.A.L기 연착은 인천공항의 사정 때문 아니었던가요? 여기는 모든 게 정상이었어요. 다른 모든 비행기는 제때 도착했습니다”. 뭔가 캥기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두 번 직항을 운영하는 K.A.L이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자회사의 이익을 위해 비행시간을 마음대로 조정 하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이것 보게? 승객이 애완동물인가
 
지루한 대기시간이 지나고 비행기 표를 끊는 시간 환갑을 넘기고도 일행의 안위를 걱정해주던 박 선생 우 선생 부부 전 선생께는 무척 죄송한 마음이 든다. 말이 7시간이지 그야말로 돈 내고 묵는 감옥 아니던가.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낸 지점장에게 점잖은 항의를 하고 나선 출국장 안은 모두 우리와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할 말은 많되 통로를 몰라 침묵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선생을 만났다. K.A.L측의 일방적 통보로 좌충우돌했던 우리와는 달리 선생 일행은 항공사 제공으로 호텔에서 잠을 편히 잤다는 거다. 거기다가 아침까지 챙겨 드셨단다.
 
“이런 일이 있으면 무조건 공항에 와야 해요. 와서 따지고 따지고 또 따지고 이XX들은 그래야 말을 들어요” 격한 언어를 써가며 열변을 토하는 지 선생은 어젯밤 한 시간이 넘는 항의에 지금도 목울대가 아프다며 헛기침을 했다. “저희 일행 말고도 어젯밤 함께 공항에 왔던 부산의 일가 네 분이 있어요. 그분들도 함께 호텔에 묵었어요. 지점장이 말이지요 우리가 숙식을 제공 받은 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꼭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단 말입니다. 근데 그게 가당키나 해요? 이 선생도 이건 아시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 공항 모습     © 이지상
아 그때 나는 왜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먼저 생각났을까. 하늘을 나는 태극기 대한항공에 대한 믿음 꿈의 바이칼로 편안히 모시는 Exellent in flight의 환상이 일거에 무너진다. 나는 목마른 놈이 되었어야 했다. 배고파 칭얼대는 아이가 되었어야 하고 불만이 있으면 온 집안을 헤집어 주인의 관심을 사는 애완동물이 되었어야 했다. 멀쩡히 비싼 값의 요금을 지불하고도 K.A.L은 결국 승객을 애완동물 취급하고 거기다가 거짓말까지 강요했다.
 
이미 지난 2월13일 예정되어있던 시베리아 횡단과 바이칼 기행(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사)희망래일) 주최)도 K.A.L의 일방적인 운항 불가 통보로 취소된 적이 있다. 항공편은 물론 열차(TSR)와 숙소 그리고 이르쿠츠크 시 의회와의 협약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행사를 진행했던 여행사의 본부장은 아직도 그 분을 삭이지 못한다. 배상은 물론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
 
작년 그러니까 2011년 9월3일에도 일방적 결항 사태는 있었다. 그때는 우리보다 정도가 더했다. 역시 기상 상황 악화가 그 이유다. 무려 28시간 지연. 아니 지연이 아니고 결항이라 불러야 옳다. 무슨놈의 안개가 28시간씩이나 지속된단 말인가. 그들에게 기상 상황 악화라는 말은 항공사 내부의 사정을 은폐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아닌가

 대학의 등록금 인상 경쟁에 학생들은 알바 하느라 정신이 없고 제발 좀 그만 파헤치라고 사정해도 숫한 자연은 건설회사의 이익이 되어 속절없이 무너져 간다. 자기 집 허물지 말라며 폭압경찰에 항의하던 청년은 방화범이 되어 아직도 감옥에 있고 경찰도 아닌 조직깡패들의 용역질에 노동자들의 평안한 삶도 울부짖음으로 변한다. 목마른 세상이다. 찾아야 할 우물도 널려져 있고 참 배고픈 세상이다. 울며불며 떼를 써야 할 일도 지천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지만 자신들에게 이익을 주는 고객에게마저 애완동물 취급을 하는 항공사의 행태는 돈 내고 한뎃잠 자고 거기다가 항의까지 하지 못하는 승객들을 서글프게 한다. 명색이 하늘을 나는 태극기 아닌가 말이다.
 
Excellent in flight도 이르쿠츠크 행은 믿지 마시라. 당신도 언젠가는 우는 아이가 될 수 있으니까. 대한항공은 비행기 꼬리에 붙은 태극마크를 가려줬으면 싶다. 태극기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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