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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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역에서 서오릉 오르는 큰 길은 버스 종점 두 곳이라 늘 번잡하다. 사람 가는 길 역시 구르는 바퀴 위에 있으면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 같다. 울퉁불퉁한 길을 온몸으로 느낀다. 

퇴근길에 반찬가게나 마트 앞은 많은 물건들이 인도로 쏟아지고 사람들도 인산인해인지라 목발이나 휠체어로 장보기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바퀴의 진입이 아예 가로막히면 피곤에 절은 직장인도, 가게 밖에서 떨이 판매를 외치던 점원분도 얼른 달려와 연신 사과하며 냉큼 물건을 치워 길을 터준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치여 찻길로 밀려날 찰나, 마주 오던 인파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누군가의 손짓으로 길 가운데가 홍해바다 갈리듯 열려 모세의 기적도 경험할 있다. 동병상련의 세발자전거의 에스코트를 받아 오히려 건물 뒤쪽 골목길, 사이길 도로들은 전동 스쿠터 바퀴로 내달리기에 매끈매끈한 바닥에 일방통행이 많아 상대적으로 쾌적하고 안전하다.

다만 땅거미에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지면 오가는 이가 없어서 머리 전등을 켜도 무섭기 그지없다. 어둑시니라도 따라올 골목 어귀길에 우리 동네 초등학교 앞 갑자기 길이 환해졌다. 어린이를 위해 설치한 노란길을 따라 학교 담장에 어린 왕자와 여우 이야기가 뜻하지 않게 온통 전등으로, 누가 갈지도 모를 이 길을, 내 앞을 밝히고 있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하교 하는 그 길에는 점점이 별빛처럼 불이 박혔다. 인기척 없는 길에 어둠이 사라지고 어느덧 어린 왕자 소행성 같은 밝은 길을 돌고 나니 혼잣길이 더 이상 두렵지 않으나 파르라니 슬픔은 그칠 줄 모른다. 

10월 29일 서울 이태원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까무룩 길을 걷다가 젊음을 즐기려다 참사를 당했다. 누구도 그런 위험이 있을 것이라 1%도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길이면 늘 누구나 시민의 안전과 질서를 책임지는 강력한 공권력의 의지가 여지없이 개입할 것이라 믿었고 그래왔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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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날에는, 그 슬픈 날에는 원래 그 곳에 그 자리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고도의 질서와 안녕을 잡아 주어야 할 그 공공 권력이 없었다. 불러도 불러도 오지 않았고 외쳐도 외쳐도 보이지 않았으며, 피를 토하며 숨을 몰아쉬며 절규하고 또 절규해도 우리를 마땅히 구해야 할 공적인 의지가 도착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책임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할 1~2초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까지 그들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그 때 거기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그날의 젊은이들의 얼굴도 이름도 짧았던 생애 스토리도 기억하지 말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어떤 참혹한 사건보다 더 슬프고 더 괴롭고 더 우울하다. 동네에서 만나는 모든 젊은 사람들이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청춘들이 다들 그이들 같고 그 날 생존자들 같고 그 곳 희생자들의 친구이자 동료인 것 같아서 옅은 미소조차 섞기 고통스럽다. 

아무도 없는 초등학교 앞 길에서 홀로 불을 밝히던 어린 왕자도 드디어 만난 그 여우도 돌아서서 10월 29일, 그 날 스러져간 사람들을 위해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길모퉁이에서 단 한명이라도 무서움에 떠는 누군가를 위해 별똥별처럼 길을 알려주는 그대여, 너무 슬퍼마오. 당신의 잘못이 절대 아니오.

그대가 밝히는 길 위의 별빛을 따라 우리는 다시 서로의 믿음을 회복하고 다시 우리는 이태원 그 길거리에 난장 같은 잔치를 즐기러 어린왕자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어린 왕자와 같은 모습으로 3시부터 설렐 것이오. 걷잡을 수 없는 참혹한 슬픔과 이별을 당당히 끌어안고 우리는 다시 우리의 축제를 길거리에 열어제낄 것이오.

후안무치하게 우리를 구하지 않았던 정부를 규탄하며 우리는 어울러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오. 우리들의 장애, 성정체성, 소수성의 온갖 이상하고 유별나고 유니크한 우리의 욕망과 외모를 길 위 사람들에게 드러낼 것이오. 저승에 온 그대들과 함께 밤새워 동이 트고 한낮이 될 때까지 놀아댈 것이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다시 우리의 진중한 인권과 고도의 안전을 위한 질서를 반드시 되찾을 것이오. 어린왕자여! 이제 그 서글픈 눈물을 거두고 다시금 우리가 잃어버린 길을 바로잡아 갈 수 있도록 여전히 어두운 길을 밝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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