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과 계단 때문에 인도로 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자전거와 위험한 동행
휠체어가 오르내리기에 너무 가파른 경사로가 대부분, 반대 천변으로 넘어가는 길도 거의 없어

"전동휠체어가 미끄러지면 활동보조사 분들도 다칩니다. 은평구가 그것까지 신경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7일 함께 불광천을 찾은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조인구 씨가 전하는 말이다. 휠체어 이동이 고려되지 않은 너무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내리다 보면 위험할 때가 많다. 불광천을 이용하려는 휠체어장애인 당사자는 본인은 물론 함께 온 활동보조사의 부상까지 걱정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정비사업 논의가 끊이지 않는 불광천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환경과 시설은 놀라울 정도로 부족했다. 모두를 위한 불광천은 아직도 먼 나라 일인가.

불광천 경사로를 오르다 방지턱을 겨우 넘는 전동휠체어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불광천 경사로를 오르다 방지턱을 겨우 넘는 전동휠체어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10월 7일, 불광천은 한창 은평누리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일행은 응암역 부근 불광 천변에서 만나 이동권 점검의 여정을 시작했다. 불광천은 서울특별시 북서부에 있는 하천으로 은평구와 서대문구, 마포구에 걸쳐 한강까지 흐르는 도심천이다. 특히 응암역부터 발달한 불광 천변의 산책로와 자전거길은 현재도 많은 시민이 애용하고 있는 도심 속 휴식 공간이다.

불광천은 생태하천을 중심으로 양쪽 천변에 산책로와 자전거도로와 운동 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불광천에 조성된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이용하려면, 외부 도로나 인도에서 계단과 경사로를 통해 불광천 천변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때 이동약자나 휠체어장애인의 경우 계단을 이용할 수 없어 경사로로만 접근이 가능한데, 해당 경사로들이 너무 가파르거나 턱이 있어 접근이 제한된다.

전동휠체어로 가파른 경사로를 어렵게 오르내리는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전동휠체어로 가파른 경사로를 어렵게 오르내리는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실제로 수동휠체어로는 혼자서 경사로를 올라갈 수도 없고, 활동보조사가 조력하더라도 위험해 보인다. 내려가는 일은 더욱이 어렵다. 활동보조사까지 다칠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전동휠체어라고 다르지 않다.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방지턱이 존재하는 경사로에서는 턱을 넘어 올라 갈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활동보조사가 뒤에서 조력했을 경우에만 겨우 올라가는 게 가능했다. 모두를 위한 공간인 불광천에 휠체어장애인은 진입과 접근부터 어려운 것이다.

불광천 정비사업은 많은 시민들의 관심사이자, 매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제시된다. 불광천을 시민들이 더 이용하기 편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정비사업의 핵심이다. 2009년에는 은평구의 불광천 정비사업으로 이중계단화 작업이 진행되어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각각 확대되면서 계단과 턱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었다.

산책로는 하천에 좀 더 가깝게 설계되어 있는데, 이는 곧 산책로를 가려면 천변으로 내려와 자전거도로에서 작은 계단을 통해 이동해야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불광천을 시민들이 더 이용하기 편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정비사업이 오히려 이동약자와 휠체어장애인을 산책로에 더욱 접근이 어렵게 만들게 된 것이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이동약자와 휠체어장애인의 이동권이 배제되어 발생한 일로 보인다.

휠체어의 산책로 접근이 제한되어 자전거도로 위에 서있는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휠체어의 산책로 접근이 제한되어 자전거도로 위에 서있는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이동약자와 휠체어장애인이 산책로를 가려면 자전거도로로 한참 이동하다 일정 지점마다 위치한 휠체어 이동로를 통해서만 산책로로 접근할 수 있다. 자전거가 빠르게 달리고 있거나 날씨가 어둡고 흐린 날 혹은 비가 오는 날에는 더욱 위험하다. 자전거를 탄 시민 입장에서도 경사로를 내려와 산책로로 진입하지 못 하고 자전거도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휠체어와 충돌할까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장애인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적혀, 이동약자와 휠체어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이 법률상의 권리로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동법 제6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적혀, 이러한 접근권 보장에 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불광천이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무법지대는 아닐 것이다.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사이의 계단에 막혀 산책로 접근이 어려운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사이의 계단에 막혀 산책로 접근이 어려운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이 뿐만 아니라, 불광천의 좌측 산책로에서 우측 산책로로 이동하려면 하천 내에 설치된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양쪽을 잇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대부분의 징검다리는 하천 위에서 뛰어 건너게끔 설치되어 있어 이동약자와 휠체어장애인의 이동이 완전히 제한된다.

양쪽을 잇는 다리의 경우, 이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결국 다리를 이용하려면 경사로를 올라가야 해 이 역시도 현재는 접근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일부 다리의 경우에는 오토바이 등의 통행을 막기 위해 장애물을 설치해두었는데, 이 장애물이 오토바이 뿐만 아니라 휠체어의 통행까지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이 역시 정책 집행 과정에서 이동약자와 휠체어장애인의 이동권이 고려되었는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불광천을 함께 동행한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차민호 동료상담가는 “가파른 경사로는 휠체어를 타고 내려오기에는 안전하지 않아 언제든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연결하는 간격이 너무 넓어 마음대로 산책로로 갈 수 없고, 자전거와 부딪힐까 걱정된다.”고 말하며, 불광천 이용의 어려움을 전했다.

수동휠체어로 가파른 경사로를 어렵게 오르는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수동휠체어로 가파른 경사로를 어렵게 오르는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불광천은 은평구민들이 산책하거나 쉬어가고, 운동하기도 때로는 걸으며 대화를 즐기기도 한다. 시민들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일상 속 공간이 된 불광천이 여전히 누군가에겐 접근이 어렵고 이용이 어려운 공간으로 남은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불광천에 더 필요한 것은 새로운 조명이나 조형물이 아닌 것 같다. 모두를 위한 불광천이 정말 모두를 위한 공간일 수 있게 만드는 일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정비사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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