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시로 이끈 '평사리문학대상'... 스토리 기반 볼거리도 눈길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은평에 제정된 지 올해로 6년째다. 고 이호철 작가는 남과 북의 분단을 잇는 통일의 길목 은평구에서 50년 이상 거주하며 분단현실을 비롯해 민족, 사회 갈등에 관한 집필활동을 하다 2016년 타계했고 그의 문학적 뜻을 기리기 위해 은평구청은 2017년에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제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분단 문학의 거장 이호철 작가의 통일 염원 정신을 기리고 이어가기 위해 분쟁·여성·난민·차별·폭력·전쟁 등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함께 사유하고 극복하고 있는 세계적 작가를 수여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남과 북을 잇는 통일로를 품고 있는 지역 특성상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의 출발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다만 문학상 제정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낮은 인지도 문제는 본래 문학상 제정의 취지와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다시 점검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기획취재에서는 지역민과 함께 하는 이호철 문학상이 되기 위해서 전국에서 오랜 기간 운영되어온 권위 있는 문학상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 마지막 방문지는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 속 최참판댁의 배경이 된 경남 하동군 평사리이다.

평사리 박경리문학관 앞에 있는 박경리 작가 동상 (사진 : 정민구 기자)
평사리 박경리문학관 앞에 있는 박경리 작가 동상 (사진 : 정민구 기자)

대하소설 <토지>를 사랑하는 독자가 찾는

하동군 평사리 ‘박경리문학관’과 ‘최참판댁’

<토지>는 박경리 작가가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해 1994년 8월까지 약 26년간의 집필기간을 걸쳐 완성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문학이다. <토지>의 시간적 배경은 19세기 구한말 대한제국이 수립되는 1897년부터 일제로부터 광복하는 1945년 8월 15일까지를 배경으로 하여 역사적 흐름을 폭넓게 가져가고 있다. 

작품 속 시간적 배경이 길다보니 공간적 배경도 장대하다. <토지> 속 최참판댁이 위치한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일대에서 시작해 진주, 통영, 경성과 만주의 용정∙신경∙하얼빈 및 일본 동경 등으로 확대되어간다. 시대적 배경을 폭넓게 담아내며 우리나라 근대사 속 민초들의 삶과 사회∙경제적 변동의 역사를 생생하게 살려냈다는 점에서 <토지>는 그야말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의 위대한 작가이다. 박경리 작가는 <토지> 외에도 <나비와 엉겅퀴>, <영원의 반려>, <김약국의 딸들> 등 수많은 작품들을 집필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자유에 대한 집착,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 인간소외에 대한 저항, 인간의 존엄과 사랑에 대한 절대적 믿음, 인간을 소외시키는 제도와 관습에 대한 저항 등을 담아냈다.

이런 그를 기리기 위해 우리나라의 3개 도시에서는 박경리 작가를 추모하고 기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토지> 속 최참판댁의 모델이 된 경상남도 하동군 평사리, 박경리 작가의 고향인 통영시, 박경리 작가가 서울을 떠나 토지 4부와 5부를 완성하고 박경리 작가가 후배작가를 길러내기 위해 설립한 토지문화재단이 위치하고 있는 원주 등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최참판댁 (사진 : 정민구 기자)
드론으로 촬영한 최참판댁 (사진 : 정민구 기자)

이중 ‘지역 문학상 활성화 방안을 찾아’ 기획의 마지막 취재지로 방문한 곳은 평사리문학상이 있는 하동군 평사리다. 본래 평사리엔 <토지> 속 최참판댁이나 최참판은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과 인물이다. <토지>의 첫 장면은 평사리 들판에서 8월 한가위에 사물놀이하며 가을 추수를 주민들이 즐기는 걸로 시작해 마지막 장면 또한 최참판댁 별당에서 주인공 최서희가 일제로부터 독립 해방 소식을 들으며 끝나게된다. 

박경리문학관의 하아무 사무국장은 “작품속에서 평사리가 우리 민족이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 수탈의 공간이면서도 그것을 이겨내며 해방을 맞이하는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러다보니 독자들에게 평사리는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토지>가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다보니 평사리를 찾는 사람은 점점 늘어만갔다. 방문객들이 계속해서 늘어나자 2001년에 하동군은 이곳에 실제로 ‘최참판댁’을 조성하게 됐다. 최참판댁과 함께 평사리문학관을 건립하고 평사리문학대상도 함께 제정해 문학사업의 지평을 열기도 했다. 현재 평사리문학관은 박경리 작가가 작고하고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박경리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최참판댁은 하나의 마을로 구성되어 구경거리와 먹거리를 마을에서 함께 즐길 수 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최참판댁은 하나의 마을로 구성되어 구경거리와 먹거리를 마을에서 함께 즐길 수 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최참판댁은 9,529m2(2,882.5평)로 1개 마을 규모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최참판댁을 비롯해 타작마당, 칠성이네, 김평산네, 김훈장댁 등 14동의 한옥으로 구성되어있다. 최참판댁 뒤로는 지리산이 자리를 잡고 있고, 옆으로는 섬진강을 끼고 있고, 앞으로는 평사리 외둔마을의 넓은 논이 펼쳐져 있었다.

최참판댁 내부의 박경리문학관에는 박경리 작가의 삶에 초점을 맞춘 전시가 기획되어 있었다. 작가가 생전에 집필 할 때 사용하던 유품과 그가 남긴 글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토지> 속 인맥도나 작품과 관련된 과거 지면상 언론보도 등 전시도 있었다.

<토지>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 박경리 작가는 작품을 탈고할 때까지 평사리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단 한번 진주여고 시절 평사리에 살던 선배와 함께 평사리를 방문했던 기억이 머리 속 한켠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박경리 작가가 <토지>를 구상하던 중 공간적 배경에 만석꾼이 있어야할 정도로 넓은 평야가 있어야 한다는 점, 작가 본인이 경상남도 출신이기 때문에 작품에 사투리와 같은 문화적 요소를 녹여내기 위해서라면 공간이 전라도가 아닌 경상도 지역이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넓은 논밭이 있던 평사리를 기억하고는 평사리를 <토지>의 배경지로 삼았다.

이후 2001년 최참판댁에서 열리는 행사 참여차 평사리를 찾은 박경리 작가는 상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지역의 모습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국내 신인작가들에게 힘이 되고

발판이 되어주는 ‘평사리문학대상’

하동군을 ‘문학수도’로 이끌다

하동군에는 대하소설 <토지>뿐만 아니라 일제 말기부터 광복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이병주 작가의 <지리산>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으로 자리매김 해오고 있다. 이병주 작가 또한 하동군 출신으로 지역에서는 이병주문학관과 이병주국제문학상이 제정되어있다. 김동리 작가의 <역마> 또한 하동군에 위치한 화개장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기도 하다. 이 같은 문화적 요소를 기반으로 2009년 하동군은 ‘문학수도 하동’를 선포하고 다양한 문화∙문학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박경리문학관에서는 박경리 작가와 '토지'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박경리문학관에서는 박경리 작가와 '토지'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이중 하동군을 문학수도로 이끌고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은 ‘평사리문학대상’이 그 중심에 있다. 올해로 21년째 운영되고 있는 ‘평사리문학대상’은 신인작가에게 힘이 되고 그들의 문학활동의 발판이 되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평사리문학대상이 신인 작가들의 문학활동에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이유는 이 상의 제정취지 때문이다. 평사리문학대상의 제정취지는 “한국 문학의 자존심인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지리산 하동 고을의 평사리에서 토지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고 한국 문학의 발전에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작가를 기리고 있는 상을 통해 문단의 신진 작가들에게 문학을 해나갈 수 있는 힘을 보태주기 때문에 이 상의 힘은 클 수밖에 없다.

공모로 이루어지는 평사리문학대상은 수상 분야를 소설에만 한정짓지 않고 시∙수필∙동화 분야로 나누어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설 분야 상금은 1천만원, 나머지 시∙수필∙동화 분야는 각각 5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평사리문학대상의 운영주체는 하동군의 ‘토지문학제운영위원회’다. 여기에는 분과로 ‘문학상위원회’, ‘섭외위원회’, ‘행사진행위원회’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중 문학상위원회가 평사리문학대상을 운영한다. 문학상위원회에서는 상의 청렴도를 위해 매년 분야별로 예심위원과 본심위원을 중복되는 인원 없이 새롭게 구성해 나가고 있다.

심사위원들의 고심 끝에 수상작이 선정되면 매년 가을에 열리는 ‘토지문학제’에서 수상식이 열린다. 평사리문학대상이 어떤 작품과 작가에게 상을 주는지에 대해 하아무 사무국장은 “기본적으로 박경리 작가의 문학적 사상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다만 문단의 상황이나 문학의 전체적인 시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그렇기 떄문에 박경리 작가에게 얽매여있지는 않으려 한다. 심사위원을 구성할 때도 어떤 분야를 대변하는 위원으로 구성하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토지문학제는 하동군을 대표하는 문학제로 <토지>를 알고 있는 독자나 가을의 정취를 문학을 통해 보내고 싶은 많은 시민들이 찾는 축제다. 토지문학제에서는 <토지>를 주제로한 문학세미나가 열리기도 했고, 시낭송회, 백일장 등 행사나 공연등이 열린다. 하아무 사무국장은 “토지문학제는 문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찾아와서 밤이나 감을 맛볼 수 있는 행사도 곁들여져 있어 풍요로운 지역 축제”라고 설명했다.

최참판댁에서 바라본 지리산 풍경 (사진 : 정민구 기자)
최참판댁에서 바라본 지리산 풍경 (사진 : 정민구 기자)

“문학관이나 문학상에 스토리를 담아내야 사람들이 찾는다”

지금은 다시 회복세에 오르고 있지만 코로나19 전까지만해도 최참판댁의 연 입장객은 20만명에 달했다. <토지> 속 최참판댁이 역사속에 실재하지 않았어도 많은 관광객이 찾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아무 사무국장은 그 이유를 ‘스토리’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아무 사무국장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아도 <토지> 소설 속 스토리가 많은 시민들 머릿속에 남아있고 그 공간이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한번쯤은 보고싶기에 최참판댁을 찾는다”며 “아무리 좋은 문인과 작품을 통해 상을 만들고 운영해도 그 안에 스토리를 담아내지 못하면 사람들이 알기 어렵고 찾지 않는다며 컨셉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은평구청에서 운영중인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그런 모습이다. 분단문학의 위대한 작가 이호철 선생과 인권∙평화를 추구하는 문학작품에 수여하는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존재하지만 국제적인 이 문학상이 왜 은평이라는 지역에서 만들어져야만 했고, 왜 지역주민들이 이호철 작가를 기려야만 하는지 지역성이 담보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은평 지역’, ‘이호철 작가’, ‘국제적 문학상’, ‘분단 문학’ 등 이 단어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스토리가 없어 지역에서는 인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훌륭한 의미를 담은 문학상을 제정한 은평구청에선 상을 운영하기 위해 예산투입과 행정력을 동원하지만 지역성이 부재한 상황 속에선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하아무 사무국장은 “상보다 먼저 선행되어야할 것은 이호철 선생의 문학적 업적 등을 세미나 등을 통해 토론하고 알려내는 작업이 필요하고, 작가에 대해 정감있고 매력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 알려 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중들이 작가에 대해 알아야 조금이라도 더 찾아보려고 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이어 하아무 국장은 “사실 이런 작업을 해내기 위해서는 해당 문인과 문학 분야에 소위말해 미쳐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작업을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 내려면 많은 시간과 내공이 필요한데 여기에 힘을 쏟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외국작가에게 상을 주는 점에 대해서도 하아무 국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국 작가에게 주는 상이 꽤 만들어졌다. 외국 작가에게 상을 주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외국 작가의 책이 번역본이 출판되지도 않거나, 상을 주는 주체에서도 작가와 그 작품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꼬집었다.

문학상은 필요하다. 문학이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에 좋은 문학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는 역할로도 문학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역에서 만들어진 문학상은 지역성을 담보해낼 필요가 있다. 지역민이 모르는 국제적 문학상은 문학상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계속해서 지역민의 관심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호철 작가를 알려내고, 이호철 작가의 작품이 시민들과 더 가깝게 해야하며, 이런 작가를 기리는데 있어서 우리 지역에 문학상과 문학관이 왜 필요하고 만들어져야만 했는지 그 ‘스토리’가 필요하다. 형식만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는 이호철통일로문학상에 스토리가 입혀지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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