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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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감하다’ 학부생 때 배웠던 소아치과학 책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단어입니다. ‘다운증후군 어린이들은 다감하여 소아치과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행동조절을 하면 된다’ 는 구절에 나오는 ‘다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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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6일 토요일 살림치과 일기 

 ‘이노무 직장! 그냥 확! 마!’ 모든 직장인들의 가슴 속에 하루에도 몇 번씩 치솟는 불기둥! 오늘 그 불기둥을 끄다 못해 가연성 조각들이 사르르 녹여준 기쁜 사건이 있었다. 다섯 살 때부터 살림치과를 다니는 다감이(가명)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일곱 살 어린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병원 신세를 지다 보니, 처음 치과에 왔을 때도 진료실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거부하였다. 보호자와 의논하여, 마실처럼 3~4개월에 한 번씩 치과에 ‘놀러’ 와서 진료실 진입을 시도해보기로 하였다. 처음 몇 번은 역시나, 들어오기를 거부하였다.

대기실에서 다정한 치과위생사 선생님과 만나 인사 나누고 이 닦기 검사와 배우기를 반복하였다. 1년이 흘렀을 때, 드디어 치과 진료실 입성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혼자 방사선실에 들어가서 x-ray 찍기는 실패! 그다음 몇 개월 후, x-ray 찍기에 성공하여 방사선실 앞에서 팀원들이 다 같이 박수치며 기뻐하였다.  

그리고 오늘! 일곱 살이 된 다감이는 진료실에 척척 걸어들어오더니, 진료체어에 스스로 앉았다. 다감이 최고! 좋아좋아! 즐거운 마음으로, 검진을 시작 했는데... 아뿔싸! 이미 진행된 충치가 발견되었다.

신경치료와 은니 치료를 해야 해서, 국소마취와 두세 차례의 내원이 필요한 상태였다. 어린이의 협조가 절대적인 치료들이다. (한 번 만에 끝나는 치료는 아이를 구슬려 얼렁뚱땅 할 수도 있다. 대신 그다음 내원 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아... 이제는 다감이와 헤어질 시간... 진정(의식하 진정마취)이나 수면(수면마취)하는 데로 보내야지... 다감이가 분명 치료를 거부할거야’ 굳게 마음먹고, 보호자께 치료의 과정을 설명 드린 후 소아치과나 장애인치과에 가시라고 말씀드리려던 찰나...  보호자께서 “치료해야겠네요” 하시길래 나도 모르게 “제가요?” 라는 말이 튀어 나와버렸다.

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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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감이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셨고, 보호자와 다감이 그리고 살림치과가 함께 쌓아온 2년의 시간이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치료를 시작하였다. 다감이네 온 가족이 체어를 둘러싸고 다감이를 칭찬하고 응원하였다. 팀원이 “물 나와요~” 하면 온 가족이 “물 나와요~” 따라 하고, “벌레 한 마리 잡았다~”하면 온 가족이 "벌레 한 마리 잡았다~" 따라하는 ... 밖에서 보면 아름답지만 팀원들의 부담은 백배였던 순간들!  벌레 세 마리를 잡고 (신경관이 세 개라...) 무사히 치료는 마무리 되었다.

본적은 없지만, 교과서에서 된다고 하니까 이렇게 만나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 필요할 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그날이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정말 정말 몰랐다! 다감이 치료가 끝나고 너무 기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다감이를 전담했었던 치과위생사 선생님께도 이 소식을 바로 전했는데, 매우 기뻐하였다.

‘발달장애 어린이도 치과를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하는 연습을 통해 치과 공포를 없앨 수 있다’는 이야기는 동화 속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 모습 보고 싶어서 일하게 되었지만, 일상은 그런 일보다는 시간과 돈으로 어지럽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동화 속 주인공이 우리에게 찾아오다니 정말 행운이다.

무서웠을 텐데, 용기 낸 다감이에게 정말 고마웠다. 무엇보다 별 소득 없어 보이는 치과 마실에 실망하지 않고 성실히 발걸음해 주신 보호자, 다감이의 일상을 오롯이 책임지며 삶의 의미에 대해 더 깊고 넓게 알고 계실 것이 틀림없는 보호자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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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다감이는 신경치료 완료와 은니까지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 다음 자잘한 치료를 위해 다시 방문하였을 때 조금 힘들어해서 잠시 휴식기에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비장애인 장애인 할 것 없이 어떤 범주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한 각기 다 다른 존재입니다.

그래서 다감이의 케이스가 모든 아이들, 모든 다운증후군 아이들에게 적용된다고 확신있게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렇지만, 치과를 포함한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이 이럴 때 큰 보람을 느끼고 한층 성장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른도 가기 싫은 치과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정기적으로 검진하거나 검진이 힘들면 인사라도 하고 이닦기나 불소 도포 등 간단한 예방치료부터 시도해 보는 일은 분명 치과에 대한 공포를 줄여 평생 구강건강에 기여한다는 것이 여러 문헌을 통해 증명된 바 있습니다.

특히 다운증후군 자녀를 키우고 계시는 보호자께서는, 아이가 ‘다감’하다고 소아치과학 교과서에까지 써 있으니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동네 치과, 소아치과를 정기적으로 내원하시길 권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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