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은평에 제정된 지 올해로 6년째다. 고 이호철 작가는 남과 북의 분단을 잇는 통일의 길목 은평구에서 50년 이상 거주하며 분단현실을 비롯해 민족, 사회 갈등에 관한 집필활동을 하다 2016년 타계했고 그의 문학적 뜻을 기리기 위해 은평구청은 2017년에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제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분단 문학의 거장 이호철 작가의 통일 염원 정신을 기리고 이어가기 위해 분쟁·여성·난민·차별·폭력·전쟁 등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함께 사유하고 극복하고 있는 세계적 작가를 수여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남과 북을 잇는 통일로를 품고 있는 지역 특성상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의 출발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다만 문학상 제정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낮은 인지도 문제는 본래 문학상 제정의 취지와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다시 점검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기획취재에서는 지역민과 함께 하는 이호철 문학상이 되기 위해서 전국에서 오랜 기간 운영되어온 권위 있는 문학상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 일곱 번째 방문지는 조선 후기 방랑 시인 김삿갓을 기리는 강원도 영월이다.

영월 김삿갓문학관에서는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와 영월이 그를 품은 계기를 알 수 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영월 김삿갓문학관에서는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와 영월이 그를 품은 계기를 알 수 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세도정치 시기 집안의 몰락이 불러온 그의 유랑

상처난 영혼을 감싸는 가리개인 삿갓을 쓰고 세상을 거닐다

익히 김삿갓이라 알고 있는 인물은 난고 김병연으로 조선 후기 전국을 방랑하며 한시를 쓴 문인이다. 삿갓 립(笠)자를 써서 김립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는 1807년(순조 7년)에 양주에서 태어나 1863년(철종 14년)에 화순에서 사망했는데 그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때는 조선후기 세도정치로 인해 민중들이 곤궁하고 혼란을 격던시기 양반들의 서재에만 있던 시를 통해 민중의 애환을 달래고 위로하며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낸 문인이다.

김병연은 당시 조선 왕조의 유력한 세도 가문의 안동 김씨, 그 중에서도 노론 장동 김씨 일가였다. 시대상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과거를 통해 권력을 가질 수 있던 환경이었는데 그가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한 이유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로는 선천 부사로 지내던 김병연의 할아버지 김익순을 김병연이 자기 집안일인지 모른채 영월 관아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비판한 글을 쓰고 장원급제했던 사건이다. 김익순은 평안북도 선천 부사로 지냈는데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일로 진압군에 의해 사형되었다. 

이후 김병연의 집안은 사실상 몰락하며 피신을 다녔는데 그 와중에 김병연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과거를 보던 중에 나온 문제 중 “선천 부사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사건에 대해 비판하라”는 문제를 보고 김익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답을 적어 냈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채 방랑생활을 시작했다는 일화가 있다.

김삿갓문학관 앞에 있는 김삿갓 동상 (사진 : 정민구 기자)
김삿갓문학관 앞에 있는 김삿갓 동상 (사진 : 정민구 기자)

또 다른 일화로는 집안이 몰락한 김병연이 출세를 하기 위해 같은 문중인 안동 김씨 세도가를 기웃거렸지만 연좌로 인해 사촌이 급제에 탈락하는 것을 보고는 “난 출세는 못하겠구나” 생각하고 스스로 유랑생활을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결국 김병연은 세도정치 시기 집안이 몰락하면서 급제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 이런 이유들이 방랑길에 비와 햇볕을 가리는 필수품이자 상처난 영혼을 감싸는 가리개인 삿갓을 쓰고 전국을 유랑하게 만들었다.

민중들의 슬픔을 달래준 김삿갓의 시

영월을 김삿갓의 도시로 만들다

유력한 세도가문의 김병연이 단순히 삿갓을 쓰고 유랑했다는 이유로 그 명성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세도 정치 시기는 혹세무민이 심각했던 시기였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를 알지 못했다. 갓 태어난 아이나 죽은 사람에게도 군비를 거둘 정도였고, 청렴해야할 과거시험에서는 부정행위가 빗발쳤다. 결국 부패한 정치로 인해 죄 없는 민중들만 그 곤궁함이 커졌는데 이때 김삿갓은 전국을 떠돌며 민중의 애환을 달랬기에 그의 명성이 높아졌다.

김삿갓문화제에서는 삿갓을 쓰고 걷는 행사를 개최한다 (사진제공 : 영월문화재단)
김삿갓문화제에서는 삿갓을 쓰고 걷는 행사를 개최한다 (사진제공 : 영월문화재단)

그의 작품 중 다음과 같은 시가 있는데 “해 뜨자 원숭이가 마당에 나타나고(日出猿生原: 일출원생원) / 고양이가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猫過鼠盡死: 묘가서진사) / 저녁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黃昏蚊簷至: 황혼문첨지) / 밤이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 대네(夜出蚤席射: 야출조석사).” 여기서 원숭이는 원생원, 쥐는 서진사, 모기는 문첨지, 벼룩은 조석사를 뜻했는데 여기서 생원∙진사∙첨지∙석사 등은 지방의 말단직을 의미했다. 소위 말하는 ‘쥐꼬리’만한 권력들을 갖고 자기네들도 양반이라며 권력자 행세를 하는 모습이 김삿갓의 눈에는 꼴불견으로 보였는데 이 같은 시를 통해 착취당하는 백성들을 동정했던 것이다.

그밖에도 “밥상엔 고기 하나 없고 채소가 판을 치고 / 부엌엔 땔감이 없어 그 화가 울타리에 미친다 /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밥을 먹되 한 그릇에 나눠먹고 / 나들이할 때는 부자간에 옷을 바꿔입고 가네.” 같은 시를 통해 민중의 곤궁한 모습을 시로 표현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같은 시를 쓰며 전국을 유랑한 김삿갓을 기리는 곳은 그가 태어난 양주시, 방랑 전까지 살았던 영월군, 6년간 살다가 생을 마감한 화순군 등 3곳이다. 1863년 김삿갓은 숨을 거두며 화순에 묻혔는데 그의 차남 김익균이 1866년 영월에 있는 태백산 어느 기슭에 묻어주었다. 그의 무덤은 잊혀지나 싶었는데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의 노력에 의해 영월 와석골 노루목에서 사라진 무덤을 찾게됐다. 

영월에서는 이를 근거로 1998년부터 김삿갓문화제를 시행해오고 있고, 2001년에는 영월에 흐르는 동강을 중심으로 영월 지역 문인들이 결성한 ‘동강문학’이 동강 인근에 묻혀 있는 김삿갓의 문학을 기리기 위해 영월군과 함께 ‘김삿갓 문학상’을 제정해 올해로 18회째 운영해오고 있다.

김삿갓문학상의 제정취지는 “김삿갓의 시대정신 및 해학과 풍자의 문학세계를 계승하고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문학적 업적과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시상 분야는 최근 2년 동안 발표된 시와 시조를 대상으로 하며 운영위원회가 위원들이 추천한 7명의 심사위원중 위원장이 3명을 추천해 심사위원회를 꾸린다. 심사위원들은 김삿갓 문학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대중성, 파격성, 해학과 풍자, 비판 등의 요소를 고려해 훌륭한 작품을 

영월군은 9월과 10월 사이에 열리는 영월의 대표 축제 김삿갓문화제에서 김삿갓문학상 수상식을 개최하며 축제 기간 동안에는 난고 김병연 추모 행사, 김삿갓 풍자와 해학의 길 걷기 행사, 한시백일장, 사생대회, 전국 휘호대회, 시낭송경연대회, 김삿갓 작품세계 학술 심포지엄, 전년도 문학상 수상자의 강연이 펼쳐지는 영월 문학인의 밤, 지역예술인공연 등 행사가 개최된다. 학술포럼과 문화예술행사가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영월이 얼마나 김삿갓 콘텐츠를 다양하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월 향토사학자인 박영국 선생은 영월에 있는 김삿갓의 묘를 찾는데 일생을 바쳤다 (사진 : 정민구 기자)
영월 향토사학자인 박영국 선생은 영월에 있는 김삿갓의 묘를 찾는데 일생을 바쳤다 (사진 : 정민구 기자)

문효치 위원장 “이호철통일로문학상과 

연계한 다양한 행사 만들 필요 있어”

영월군이 김삿갓이라는 문인을 소재로 문학상, 문학관, 문화제 등 행사를 만들어 내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려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행정에 반영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영월은 강원도의 작은 도시일수는 있지만 문화적 열망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뒤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김삿갓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효치 위원장은 영월에서 김삿갓을 기리는 이유에 대해 “문화적 욕구”라며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문효치 위원장은 “문화적 욕구가 있기 때문에 지역과 연고해 있는 문인을 기리고, 지역을 홍보하며 지역민들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키우는것으로 보여진다.”며 “또한 문인을 기리며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에게 용기와 창작 의욕을 북돋어주면서 영월에서 문학을 해야겠다는 인재들이 많이 나올 수 있게되면 결국 지역의 문화적 수준이 향상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학상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에 대해 문효치 위원장은 “김삿갓이 당대 상류층을 해학과 풍자로 비판하는 대중적인 시인인데 막상 문학상을 통해 문학인들에게 상을 주려하니 지역 문학인들이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삿갓문학상 본상외에 우수상을 만들어 지역문인들이 수상할 수 있도록 2016년엔 새롭게 상을 만들어 지역문인들이 문학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23회 김삿갓문학상 모습 (사진제공 : 영월문화재단)
제23회 김삿갓문학상 모습 (사진제공 : 영월문화재단)

문효치 위원장은 이호철통일로문학상에 대해서도 상과 연계한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문 위원장은 “학술적으로 이호철 작가에 대한 연구가 있을테지만 지역에서 만든 상이니 만큼 지역을 중심으로도 학술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령 ‘이호철 탄생 00주년 학술대회’ 등을 열고 지역과 연계한 주제를 선정해 학술제를 펼쳐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문 위원장은 “문화와 관광은 함께 갈 수 있는 점인데 이호철 작가를 통해 은평구를 홍보하고자 한다면 그의 소설 속에 담긴 좋은 글귀를 담은 문학비를 만들어 명소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아보인다”며 “이호철 작가의 소설속 문구를 통해 이호철도 알리고 이 문학비를 보기 위해 은평구를 방문하게 된다면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문효치 위원장은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언론과 잡지 등과의 연계를 더 견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문 위원장은 “문학상들은 대개 언론사가 직접 주관하기도 하고 언론사와 연계해 홍보효과를 누리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 전문 잡지를 통해서는 수상작에 대한 평론을 싣고 수상작과 이호철 작가에 대해 자세히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라 말했다.

김삿갓문학상을 바라보며 문학상이 단순히 수상식에 그치지 않고 작가와 지역을 함께 알릴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 지역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든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앞으로 지역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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