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기사식당 내부 모습
밀라노기사식당 내부 모습

증산동에 자리 잡은 밀라노기사식당은 2020년 문을 열었다. 코로나가 한창인 때였지만 박정우 쉐프는 스무 살 때부터 간직한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의 꿈은 손님들이 즐겁게 식사하며 존중받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밀라노기사식당은 파스타전문점이다. 어느 날 늦은 점심으로 먹은 밀탕파스타는 밀라노기사식당에 푹 빠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 뒤에 맛본 크림치즈파스타는 버섯 향이 진하고 소스 농도도 알맞았다. 탱글탱글한 면발은 시간이 지나도 자꾸 식욕을 당겼다. 테이블은 네 개로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쉐프의 환대를 받고 마냥 행복했다. 

밀라노기사식당은 지난 5월 tvN ‘식스센스3’에 출연한 계기로 동네 맛집이 아닌 ‘전국 맛집’이 되었고 박정우 쉐프는 손님들이 식탁에 남긴 빈그릇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 <어서오세요, 밀라노기사식당입니다>라는 책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돈이 아닌, 우리의 삶이 먼저”라고 말하는, 따뜻한 온기와 감동 가득한 박정우 쉐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식당을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스무 살 때 작은 음식점을 여는 게 꿈이었습니다. 식품연구원을 그만두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8월에 식당을 열었어요. 저희 식당에서 손님들이 즐겁게 음식을 먹으면서 사람으로 존중받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없어진 메뉴인 밀당파스타의 경우 밀당은 밀(meal: 식사, 밥)+당(堂: 집 당)으로 중의적인 의미가 있어요. 양식의 세련미와 편안함, 패션과 밀라노가 더해져서 기사식당 취지에 걸맞게 양식과 한식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코로나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버텼나요?

2020년 12월 영업시간이 제한되었을 때 “배달하자, 밀키트하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책을 여러 권 갖다 놓고 공부하고 메뉴를 개발하고 홀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는 했어요. 그때 홀에서 손님들이 식사하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같은 공간에서 온기를 잃지 않았던 것이 저한테 큰 힘이 되었어요. “눈앞에 보이는 돈보다 사람답게 살아가자”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박정우 쉐프
박정우 쉐프

이젠 동네 맛집에서 전국 맛집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올해 3, 4월 무렵 매출이 크게 늘자 주변에서는 돈을 더 벌라고 얘기하더군요. 하지만 그러다간 손님도, 사람도 못 지킬 것 같아서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나도 손님들도 사람임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고 같이 온 사람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고 소소한 추억을 나누는 모습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음식은 입맛에 좀 맞으세요?”라고 물어보면서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할 수 있는 여유를 갖자고 생각했어요. 

처음 가게 문을 열 때 가진 생각, 초심을 지키려고 합니다. 영업시간을 좀 줄이면서 제 삶도 달라졌어요. 저를 돌아보면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도 갖게 되었어요. 강연 요청이나 협업 제안도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지난 7월부터 밀라노기사식당은 전체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80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손님들 반응은 어떤가요?

80분 예약제를 활용하면 예약시간에 기다리지 않고 식당에 와서 바로 드실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고급화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손님의 시간을 아끼고 싶었어요. 제 시간도 중요하고 손님들의 시간도 중요하니까요. 눈앞의 이익을 마다하고, 적게 벌면서 손님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하고 싶습니다. 손님들이 즐겁게 와서 식사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홀에서 들려오는 손님들의 여유 있는 웃음과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너무 좋습니다.

밀라노기사식당 파스타 면은 시간이 지나도 면발이 불지 않고 맛있어요. 파스타 면을 삶는 팁이 있나요?

파스타 면은 물이 100도 이상으로 완전히 끓을 때 소금 간이 진하게 되어 있어야 해요. 그리고 면이 퍼지도록 골고루 저어줘야 해요. 안 저으면 전분이 있으니까 면이 붙어 버려요. 5~6분 끓이고 나면 체에 걸러놓고 소스와 면을 볶을 때 2분 정도 걸리는데, 그때 중요한 건 소스가 면에 흡수되도록 계속 볶는 거예요. 파스타 면을 한번 삶을 때 넉넉히 삶아서 쟁반에 펼쳐 놓고 올리브 오일로 코팅한 다음 비닐봉지에 넣어 꽉 묶습니다. 냉장 보관하면 하루 이틀 정도 여유있게 먹을 수 있어요.  

전주비빔파스타와 신선로스튜
전주비빔파스타와 신선로스튜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은평구’ 하면 밀라노기사식당이 떠오르게 하고 싶습니다. 손님들이 다른 지역에서 증산동으로 파스타를 먹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게 만들고 싶어요. 좀 더 여력이 된다면 단독주택 한 채를 짓고 싶습니다. 1월생인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마당에 동백나무를 심었는데요, 마당에는 동백숲을 만들고 1층은 쇼룸, 2층은 와인바를 여는 거죠.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모습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손님들 덕분에 강연과 방송도 하고 작가 타이틀도 얻었어요. ‘이렇게 살아야 된다’가 아니라 삶은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길이 없는 바닥에 발자국을 잘 찍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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