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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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이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를 ‘단지’ 몸이 불편하신 분이라 소개할 때 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불편함이 있다. 과거 ‘장애우’란 말처럼 예우한다고 일컫던 것처럼 장애를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타인이 지칭하는 것은 객관적인 표현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현실의 차별과 혐오를 은폐하는 미세차별, 먼지차별의 표현이다.

누구라도 내 장애를 발견하고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동의 없이 내 장애를 지칭하는 것은 명백한 개인 정보 유출이다. 내 신체 정보가 필요할 때는 장애에 대하여 지원이 필요할 때뿐이다. 

날 때부터 뇌변병 장애를 가진 나는 내 장애 자체는 불편하지 않다. 장애에 대하여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과 인권 침해가 단지 짜증날 뿐이다. 당사자가 자신의 장애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타인들이 본인의 마음과 사회 현실은 부정하면서 애써 장애를 밝고 희망차게 표현하는 것은 장애와 장애인 자체의 의미와 가치를 거부하는 비장애인 중심에 개인의 상대적 경험이 반영된 다양성 결여의 표현일 뿐이다. 

얼마 전 들려온 같은 동네의 어느 시각장애인의 죽음은 슬프다 못해 서글픈 소식이었다. 지난 7월 24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 한 빌라화재에서 중증 시각장애인이 미처 탈출 못해 현관문 앞에서 사망했다.

은평구는 이미 오래전에 혼자 사는 장애인이나 노인의 집에 화재나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연계된 소방서에 이 사실을 알려 실시간으로 소방대원이 출동하도록 하는 ‘응급안전안심서비스’를 시행하고 있고, 관할 소방서에 등록해 놓으면 위기 시 출동대원이 해당 정보를 기반으로 구조를 진행하는 소방청의 ‘119 안심콜’도 운영하고 있으나 피해 당사자도, 그리고 나도 은평구의 누구에게 위의 관련한 정보를 제공받은 적이 없다. 이런 현실을 두고 장애가 단지 불편할 뿐이라 생각하라고 당사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화재로 그을린 빌라 벽과 창문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화재로 그을린 빌라 벽과 창문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반백 살이 다되도록 온갖 시선과 거부에 이제는 익숙하고 태연하기까지 하지만 차별과 혐오에 대하여 멈칫하고 쪼그라들지 않으리라 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내 온몸과 장애를 온전히 드러내야 하는 동네의 헬스장이나 머리를 잘라야 하는 미용실의 첫 고객이 되는 것은 의외로 많은 용기와 주저함이 필요하다. 

고객이자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주인들에게 나는 늘 안전하고 독립적이며 매너 좋아서 다른 손님의 민원을 야기하지 않고 가게 경영에 방해하지 않을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 싸우거나 문제제기하기 위한 인권 활동가가 아니라 그냥 동네 마실 나온 동네 주민으로서 문전박대를 받지 않고 지불한 비용만큼이라도 불친절하지 않은 존중을 받기 위해 접근성을 사전 조사하고 후기와 별점을 미리 찾아봐야 한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만족과 욕망을 위해 인터넷을 조사할 지언정 차별과 혐오, 배제를 당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고 곁눈질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장애인 복지관 근처에 당사자가 자주 들락거리거나 가게 앞에 전동 휠체어라도 놓여 있으면 그나마 마음이 놓이지만 급하게 약국을 들러야 하는데, 당장 머리를 해야 하는데 구산동으로 온지 일 년 만에야, 계단이 드높은 미용실 3개를 지나서야, 그나마 야트막한 계단 한 개를 등반하여 두드린 미용실마저 내 목발을 보는 순간 가게 문 닫는 시간이 되었다. 비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불편함을 경험하지 않고 누리는 것을 더 많은 용기와 애를 쓰고 차별과 거부를 당하지 않기 위해 혀차는 소리와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을 각오해야만 것을 단지 그래서 장애는 불편할 뿐이라고 퉁칠 수 있는 문제인가?

마을 사람들이 순간순간 뻗치는 내 몸뚱아리와 장애를 직면하다라도 대견함과 애잔함을 느끼지 않고 같은 마을 주민으로서, 멋진 손님으로 목발을 짚고도 휠체어 타고서도 같은 동네 사람으로 존중하고 빠짐없이 생각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비장애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비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날 마음이 없다. 장애는 내 인생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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