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 최대 비극 제주 4∙3사건
현기영 작가 “작가들은 리얼리즘에 기반 해 도전적 작품 써내야하고
문학상은 좋은 작가와 작품을 배양하고 길러내기 위한 역할 해야”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은평에 제정된 지 올해로 6년째다. 고 이호철 작가는 남과 북의 분단을 잇는 통일의 길목 은평구에서 50년 이상 거주하며 분단현실을 비롯해 민족, 사회 갈등에 관한 집필활동을 하다 2016년 타계했고 그의 문학적 뜻을 기리기 위해 은평구청은 2017년에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제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분단 문학의 거장 이호철 작가의 통일 염원 정신을 기리고 이어가기 위해 분쟁·여성·난민·차별·폭력·전쟁 등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함께 사유하고 극복하고 있는 세계적 작가를 수여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남과 북을 잇는 통일로를 품고 있는 지역 특성상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의 출발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다만 문학상 제정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낮은 인지도 문제는 본래 문학상 제정의 취지와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다시 점검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기획취재에서는 지역민과 함께 하는 이호철 문학상이 되기 위해서 전국에서 오랜 기간 운영되어온 권위 있는 문학상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 여섯 번째 방문지는 제주 4·3사건으로 비극의 역사를 지닌 섬 제주도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제주 4∙3

제주4.3평화공원의 '행방불명인 표석'. (사진: 정민구 기자)
제주4.3평화공원의 '행방불명인 표석'. (사진: 정민구 기자)

1948년 일어난 제주 4·3사건은 우리 현대사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50년이 지나서야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그 이전의 시간 동안에는 ‘제주 4·3’을 입에 올리는 일조차 두려운 상황이었다. 

4·3사건이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건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면서다. 제주대학교 학생들과 유가족 등이 4·3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나섰고 제주 출신 국회의원들도 4·3사건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물꼬를 트는 듯한 4·3사건 진상규명은 5·16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되며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4·3사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된 계기는 1978년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가 ‘순이삼촌’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다. 작가는 4·3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4·3사건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건 1987년 민주항쟁이후다. 1989년 제주지역 시민사회 단체 등은 4·3사건 추모행사를 공개적으로 진행했고 같은 해 제주4·3연구소가 발족하고 제주 지역신문을 중심으로 4·3사건에 관해 기록하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2000년 정부는 4·3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나섰고 2006년 4·3위령제에는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하고 참배하였다.

50년 만에 첫발 내 딛었던 4∙3진실규명 
‘제주4∙3평화문학상’ 제정 통해 역사 알리기 앞장

제주4.3평화기념관. (사진: 정민구 기자)
제주4.3평화기념관. (사진: 정민구 기자)

2008년 10월 16일 드디어 제주4·3사건 해결의 후속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4·3평화재단’이 설립된다. 재단에서는 4·3사건 희생자추모사업 및 유족복지사업, 4·3사건 사료관리 및 평화공원 운영관리, 문화·학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하는 제주4·3평화문학상은 2012년에 첫 공모를 시작해 2013년에 첫 당선작을 냈다. 문학상은 오랜 시간동안 제주작가회의, 전남작가회의 등 민간에서 요구가 있었고 제주특별자치도 민선5기 우근민 지사의 공약사항으로 반영되어 2012년에 첫 공모를 시작하게 되었다.

제주4.3평화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의 제정 취지는 문학을 통해 4·3사건을 알려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슬픔과 상처를 치유해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은 제주특별자치도 운영 조례로 마련되어 올해로 11회째 이어오고 있다. 조례에 따르면 제주4·3평화문학상이 만들어진 목적은 “제주4·3사건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킴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라고 명시되어있다.

문학상 운영은 공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6~7개월간 공모를 받고 이듬해 1월과 2월에 예심과 본심을 거쳐 수상작을 선정하고 4월경에 시상식을 진행한다. 문학상 부문은 소설, 시, 논픽션 부문이 있다. 부문별로 5명에서 6명의 예심 심사위원들이 있고 각자 심사위원들이 모든 작품을 보고 10작품 내외의 추천작을 뽑고 본심에 제출한다. 본심에선 심사위원이 대면회의 등을 거쳐 최종 선정한다.

선정된 작품은 출판사를 통해 단행본을 출간하게 된다. 이 단행본에는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라 표기하게 되며 작가, 제주도, 출판사가 저작권 계약을 통해 진행한다.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주4∙3평화문학상 

제주4.3 희생자 위패. (사진: 정민구 기자)
제주4.3 희생자 위패. (사진: 정민구 기자)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장인 현기영 작가는 “제주에서 엄청난 민중파괴가 일어나 비무장 민간인들과 어린아이들까지 3만이 희생당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잊어 버린다면 3만 원혼의 넋을 어떻게 달랠 수 있나, 그 원한을 달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며 4·3문학상 제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단지 4·3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서 4·3 사건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으로 제한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소재가 너무 좁고 편협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고 전했다. 현기영 작가는 “제주 4·3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권을 파괴한 사건으로 결국 인권문제이며 통일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 전쟁 반대의 ‘평화’ 등을 지향하는 문학을 육성해야겠다는 구상 아래에 문학상이 제정됐다”고 설명했다.

현기영 작가는 영상미디어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현재 여전히 문학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영상이나 영화가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는 시대다. 하지만 영상은 쉽게 흘러가버리는 반면 문학은 오래 남는다. <순이삼촌>은 4·3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벌써 44년 전의 것이지만 지금도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4·3문학상 운영에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재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작품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기영 작가는 “4·3문학이라는 게 생겨날 정도로 시 분야에서는 많은 작품이 탄생했지만 4·3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소설로 형상화 해나가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4·3을 소재로 했지만 작품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4·3을 소재로 하면서도 작품성도 우수한 소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분단현실가 젊은 작가 조명 필요
현기영 작가 “문학상은 젊은 작가 독려하는 역할 매진하고 
작가들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며 도전적 문학 써내야”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 (사진: 정민구 기자)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 (사진: 정민구 기자)

은평의 이호철통일로문학상과 제주의 4·3평화문학상은 유사한 가치관을 지닌 문학상이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우리나라의 분단현실을 분쟁·젠더·난민·인종·차별·폭력·전쟁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문학적 실천으로 극복하는 작가를 ‘선정’하고 있고, 제주4·3평화문학상은 평화와 인권 등 인류 보편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공모 받아 심사해 문학상을 수여하고 있다. 

두 문학상의 다른 점이라 한다면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평생 분단문학을 해온 이호철 작가의 문학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유지·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고, 제주4·3평화문학상은 문학을 통해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인 4·3사건을 알리기 위함이다. 다만 두 문학상 모두 분단 문제나 4·3사건을 소재로 둔 문학에 상을 수여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문학상 운영에 고민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제주4·3평화문학상의 경우 이런 지점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고 타파하기 위해 2018년부터 논픽션부문을 추가하여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조정희 기념사업팀장은 “장편소설의 장르적 한계를 타파해보기 위해 전문가 토론 끝에 논픽션부문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를 통해 작가들이 4·3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제주4·3평화문학상은 공모제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호철통일로문학상과 차별성이 있다. 이에 대해 조정희 팀장은 “공모제로 운영하는 것은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장점이지만 기존에 4·3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상을 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기존에 출판된 작품들은 공모에 참여할 수가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모와 선정 방식 두 가지를 모두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 (사진: 정민구 기자)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 (사진: 정민구 기자)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운영과 관련해서 현기영 작가로부터 다양한 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현기영 작가는 “침체돼 있는 문단에 자극을 주고 젊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문학상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특히 국내 젊은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문학상 운영을 정말 잘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현기영 작가는 “현실적으로 작가들도 도전적이지 못한 지점이 있기도 하다. 작품의 주제나 소재에 리얼리즘이 부족하다보니 전반적으로 좋은 작품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유신 시대에 유신에 대한 문학이 없었다면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게 된다. 그렇듯 문학에 리얼리즘을 담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들이 수준 낮은 독자의 밑으로 내려갈 게 아니고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가들이 독자들보다는 그래도 한발 격조 높은 문학을 추구하도록 하고 격려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문학상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국외 작가를 선정해 수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호철통일로문학상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현기영 작가는 “분단현실의 남북문제는 국내문제인데 국외 작가를 선정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통해 무엇을 알리고자 하는지, 이호철 작가인지, 통일문제인지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문학상은 젊은 작가들이 격려 받고 작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문학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문학이 침체된 시기 문학상의 역할은 중요하다. 현기영 작가가 말했듯 역사가 기억되기 위해선 문학은 필수적이다. 좋은 작품을 통해 역사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선 문학상들이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지금은 외국작가들에게 본상을 수여하고 있지만 국내 작가들의 비중을 더 높여 분단현실을 조명하는 도전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견인해 내는 변화를 보일 필요가 있다.

제주 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