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구매한 휴대용 망원경으로, 보기 어려운 계량기를 확인하는 가스검침원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직접 구매한 휴대용 망원경으로, 보기 어려운 계량기를 확인하는 가스검침원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지난 18일 은평구 갈현동 골목길에서 만난 가스검침원 A씨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가스계량기 숫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바람이 좀 불기는 하지만 오전 11시를 넘기며 벌써 바깥기온은 이미 30도를 넘긴 상태였다. 초복을 넘긴 더운 여름이지만 그는 마스크를 쓴 채 따가운 햇살아래 걸음을 옮기느라 힘겨운 모습이다. 

5분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날씨지만 A씨가 둘러맨 가방 안에는 망원경과 휴대용 단말기 등이 있을 뿐 잠시 목을 축일 물 한 병이 들어있지 않았다. 김씨는 “물을 마시면 화장실을 갈 수 있으니까 목말라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렇다. 겨우 화장실을 찾았다고 해도 다시 검침하던 곳으로 돌아오려면 이삼십 분이 훌쩍 지나가니 물 한 모금 마시는 일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도시가스 노동자는 가스요금 고지서 송달, 가스안전 점검과 가스검침을 한다. 이 중 고지서 송달과 가스검침은 매달, 가스안전 점검은 일 년에 두 번 진행한다. 가스검침 방법은 집집마다 계량기를 직접 확인하고 사용량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비교적 보기 쉬운 곳에 계량기가 위치한 집도 있지만 후미지거나 높은 곳에 계량기를 설치한 집도 많다. 높은 곳에 계량기가 설치돼 있으면 까치발을 하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망원경을 통해 사용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 자칫 중심을 잃고 발을 헛딛거나 떨어져 다치는 일도 흔하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예요. 전에는 다치면 이 일도 그만둬야 했는데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 산재처리가 되니까요” 

도시가스 노동자 B씨가 전하는 말이다. 2017년 도시가스 노조가 만들어지고서야 산재처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노조가 있기 전에는 심하게 다칠 경우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수풀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계량기를, 직접 구매한 휴대용 망원경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가스검침원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수풀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계량기를, 직접 구매한 휴대용 망원경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가스검침원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A씨는 갈현동 골목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계량기 검침을 이어갔다. 한 빌라는 풀숲을 한참 헤치고 들어간 후 다시 빌라 안쪽으로 겨우 몸을 밀어 넣어야 계량기를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김씨는 잠시 가방도 내려놓고 거미줄을 헤치며 좁은 틈사이로 겨우 들어가 계량기 수치를 확인했다. 외진 곳에 있는 계량기를 확인하다보면 모기에 물리는 일은 흔하고 동물의 사체를 보거나 갑자기 나타난 개에 물리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벌써 십 년 넘게 도시가스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A씨 머릿속에는 동네지도가 훤하다. 어느 집에 계량기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기억한다. 때로는 벨을 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셔터문을 올리기도 하고 까치발과 망원경을 이용해 계량기 수치를 확인한다. 동네는 익숙해졌지만 그렇다고 일이 쉬워진 건 아니다. 한 여름의 가스검침은 극한직업이다. 

십년 넘게 도시가스 검침을 해도 도시가스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이제 갓 입사한 신입직원과 같다. 업무의 전문성 등은 고려대상이 아니고 기본급에 통상수당 19만원이 전부다. 이동하는 데 드는 교통비 지원도 없고 10년 넘게 일해도 근속수당도 없다. 심지어 도시가스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망원경도 직접 구매한다. 회사에서 지급되는 게 있지만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계량기 수치를 정확히 확인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보기 어려운 계량기를 확인하기 위해, 맞은 편 벽 난간에 위태롭게 올라 확인 중인 가스검침원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보기 어려운 계량기를 확인하기 위해, 맞은 편 벽 난간에 위태롭게 올라 확인 중인 가스검침원의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격월검침 이유로 징계위 회부되기도  

한 여름 도시가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등을 고려해 서울시는 6월에서 9월까지는 격월검침을 실시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했다. 두 달에 한 번씩 직접 검침하는 격월 검침은 한여름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으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서울시가 마련한 규정은 강제사항이 아니어서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처벌이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A씨가 속한 회사도 서울도시가스가 업무를 위탁한 고객센터로 서울시의 관리·감독이 직접 닿기 어려운 구조다. 

서울도시가스 강북5고객센터 노동자 9명은 지난 6월 자체적으로 격월검침을 시행했다 회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유는 ‘업무지시명령 미이행’이다. 격월검침을 하면 통상 전년 동월을 포함한 전후 1개월, 즉 3개월 치 사용량 평균으로 요금을 부과한다. 이 때 주민들이 실제 사용량과 다르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회사는 이를 근거로 한 여름에도 가스 검침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침원 A씨는 “여름에는 도시가스 사용량이 적어서 매달 검침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검침을 하지 않는다고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이 기간에는 안전점검, 고지서 송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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