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 짐승도 죽을 때는 제 태어난 곳으로 머리를 둔단다. 보이지 않는 탯줄이 끈끈하게 잡아당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고향은 아련하다. 세월의 두께는 흐린 안개 속에 고향을 숨긴다. 상전벽해가 되어버렸을지라도 고향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마음을 탓할 수는 없다. 이미륵은 떠나 온 고향을 못 잊어 저 유명한 자전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썼다. 이미륵에게는 떠나 온 것이 아니라 쫓겨난 고향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필자는 가끔 고향을 간다. 작은 도시 한 구석에 폐가와 함께 슬레이트와 블록이 검게 퇴색한 채 그래도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동네. 거기서 나는 50여 년 전의 색을 재현한다. 변한 건 변한 것대로, 남은 건 남은 대로 옛날 색이 살아나는 희열을 느낀다. 세월의 더께가 하나씩 걷히는 신비함. 그 속에서 살아나는 사람들. 그 속에서 맞이하는 어린 날의 나. 그뿐이다. 눈물을 훔치거나 가슴이 쓰리거나 잔잔히 웃다 보면, 아직 고향 동네가 남아 있어서 좋다.

개발로 이미 흔적이 사라진 고향이라도 그곳에서 여기가 어떻고 저기가 어떻고 옛 지형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기분을 갖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형태가 남아 있든 아니든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향민- 이렇게 부르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있는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오두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볔땅, 개풍군 장단면 (사진 : 장우원 시인)
오두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볔땅, 개풍군 장단면 (사진 : 장우원 시인)

반도의 저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 갈 수 없다는 그 절망감. 절망을 넘어 밀려드는 상실감이 어떨지 느낌이 온다. 남도의 작은 도시에 있는 고향 땅에 갈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꽉 막히는데 말이다. 그 열 배나 백 배도 더할 것이 분명하다, 실향민에게는…. 그리고 나이 들수록 그 상실감이 점점 더해 간다는 것도….

그 절망과 상실감을 달래기 위한 곳이 임진각 망배단이다. 강원도 고성에서도 북녘이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임진강은 더욱 가깝다. 해마다 설날과 추석에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는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차례를 올린다. 그 엄숙함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철책선에 매달린 통일 염원 띠 너머로 임진강 비무장지대를 오가는 곤돌라 (사진 : 장우원 시인)
철책선에 매달린 통일 염원 띠 너머로 임진강 비무장지대를 오가는 곤돌라 (사진 : 장우원 시인)

그러나 망배단과 그 주변 철책에 묶어놓은 끈을 통해 망향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은 생생하게 전해진다. 분단과 통일이 아울러 교차하는 곳이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다. 한때 개성공단으로 가던 트럭과 버스도 모두 임진각과 도라산역을 거쳐 개성으로 통했다. 평화누리공원에서는 지난 2000년 새해 첫날 밀레니엄 해맞이도 열렸다. 새천년에는 반드시 통일이 될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벌써 20년이 더 지났건만 언제 다시 개시될지 알 수 없어 안타까움만 더한다.

임진각평화누리공원에는 부서진 임진강 철교, 자유의 다리, 참전 기념비, 납북자기념관, 장단역증기기관차 등 한국전쟁의 역사를 증언하는 전시물이 많다. 납북자기념관과 지하벙커 체험관은 코로나19로 전시여부를 미리 챙겨야 한다. 밀레니엄휴게소 옥상은 확 트인 전망을 제공한다. 증기기관차는 천 개가 넘는 총탄 자국과 피폭으로 구부러진 철판이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자유의 다리는 현재 안전관리상 출입을 할 수 없다.

임진각에 전시된 장단역 증기기관차 (사진 : 장우원 시인)
임진각에 전시된 장단역 증기기관차 (사진 : 장우원 시인)

역사적인 전시물과 잘 어울리지 않을 법한데 주차장 건너편에 거대한 평화누리 공원이 있다. 이 공원 안 평화랜드는 각종 놀이시설과 임진강을 건너는 평화곤돌라가 운행 중이다. 평화공원은 넓은 잔디가 깔려 있고 곳곳에 산책로도 많아서 가족단위 나들이도 충분하다. 특히 바람의 언덕에 세워 놓은 바람개비가 눈길을 끈다. 또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연들이 임진강 바람에 실려 평화롭게 유영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공원 주창장은 넓다. 승용차 3천 원. 그런데도 주차장 주변 도로에 주차한 차들이 많다. 합정동에서 셔틀버스가 다닌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파주 헤이리 산책 후 오두산 전망대를 거쳐 오는 것도 권할 만하다. 오두산 전망대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을 이용한다. 전망대 옥상, 망원경에 북녘 동포가 보일 때도 있다. 육안으로도 북녘 땅 집들이 자그마하게 들어온다. 곳곳에 있는 습지와 갯벌과 함께 하류에 이르러 영역을 넓히는 임진강이 오롯이 안겨오는 곳. 오두산통일전망대 전시실은 통일에 관련된 소품들을 전시한다. 특히 북녘 화가들의 회화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겨울철에는 방문객이 많지 않아서 한적하게 관람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오두산전망대 전시실, 북한 화가 류정봉/ 상팔담 (사진 : 장우원 시인)
오두산전망대 전시실, 북한 화가 류정봉/ 상팔담 (사진 : 장우원 시인)

-오두산 전망대 온라인 예약 : http://www.jmd.co.kr/ 

현재 코비드19 확산으로 셔틀 50% 운영. 월요일 휴관

-평화곤돌라 : 파주시청/ 문화관광 https://tour.paju.go.kr/user/tour/main/index.do

탑승권 구입 시 대표자 1인 신분증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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