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문고 입구
광명문고 입구

사실 수색동에 광명문고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지난해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성인 장애인 대상 글쓰기 강의를 맡으면서 은평구에 광명문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20년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 6월부터 11월까지 장애인들 3~4명이 참여하는 글쓰기 강의는 가뭄에 콩 나듯이 ‘어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누나가 새 운동화를 사 줬다고 스스럼없이 자랑하는 20대 남성, 늘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긴 해도 글쓰기 시간만큼은 집중해서 글을 쓰는 20대 여성, “글쓰기는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을 달고 살아도 공책에 빼곡하게 써 내는 60대 여성, 그들은 복지관 예산 부족으로 글쓰기 수업이 열리지 않는 것에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광명문고는 1991년 5월 김숙이 대표의 언니가 문을 열며 시작됐다. 당시 직장인이던 김숙이 대표는 주말에 잠깐씩 언니를 도와주다가 1995년부터 27년째 광명문고를 도맡아 운영해 오고 있다. 광명문고는 지금의 수색마트 건물에 처음 문을 열었고 두 번째는 무인약국 가게 자리, 세 번째 이사한 지금 자리에서 동네 책방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9월 22일 광명문고에서 김숙이 대표와 정해현 회장을 만나 동네책방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해현 회장은 나비월 독서동아리 회장으로서 월 2회 책모임을 이끌고 있다. 

동네 책방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동네 책방을 운영하고 이용하는 입장에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거 같습니다. 

김숙이 대표 : 평소에 동네 책방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 주시면 좋겠어요. “동네 책방에 한번 가봐야겠다”가 아닌 “꾸준히 가야겠다”고 생각해 주시면 더 좋고요. 광명문고 책방이 신기해서 들어오는데 좀 부끄러워요. 세계문학을 한 질씩 진열하면 좋겠는데, 아파트 재건축으로 그동안 동네가 오래 비었으니까 베스트셀러만 갖다 놓는 거죠. 애들이 볼 만한 고전이 없어요. 

정해현 회장 : 크든 작든 기회가 되는대로 우리끼리 모여서 책수다로 이야기꽃을 피워 봐요. 돈으로 환산하면 이런 문화 향유 공간을 만들 수 없어요. 수색초등학교 아이들이 이곳을 드나들면서 쑥쑥 자랄 거고 향수와 추억이 깃든 색다른 콘텐츠가 될 겁니다. 수색초 졸업생들이나 수색동을 떠나간 사람들에겐 문방구를 이용하거나 학년별 전과와 문제집을 샀던 추억을 이끌어 내고 책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공간이 되는 거예요. 1~2년 이내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몇 년이 지나면 누군가 번드르르한 서점을 열겠지만, 광명문고처럼 마음이 깃든 공간을 만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광명문고 내부 모습
광명문고 내부 모습

동네 책방은 지역 주민, 학생, 독서동아리, 지역도서관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할까요?

정해현 회장 : 수색시장이 섬처럼 존재하고 있어서 수년 내 재개발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이대로 수십 년 갈 수 없겠지만 흘러가는 대로 두고 봐요.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이면 점점 더 아이들이 많아질 텐데요, 고풍스럽고 친근한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광명문고에서 아이들이 시간을 충분히 보낸다면 즐거운 경험이 되겠죠.

아파트별로 지역 작은도서관들이 곧 형성될 것이고 동네 책방 광명문고가 지역 공공도서관과 연계한 작은도서관의 거점 역할을 하리라 기대합니다. 상암 쪽 아이들도 곧 광고문고까지 걸어서 올 겁니다. 광명문고처럼 따뜻한 정서와 정감 있는 공간은 없습니다. 나비월 독서동아리도 광명문고에서 축복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시대인데요, 어떻게 해야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정해현 회장 : 광명문고에서 틈틈이 진행하는 작가와의 만남에서 아이들이 작가들과 한두 마디만 나눠도 추억이 되고 소중한 경험이 될 거예요. 요즘 부모들은 너무 바쁘죠.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만 부모들 스스로는 책을 읽지 않아요. 

나비월 독서모임을 통해서 책을 읽다보면 책을 다 못 읽어 오더라도 꼼꼼히 읽어온 사람의 브리핑을 듣고 밑줄 그으면 나중에라도 그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나비월 독서동아리처럼 강제로 읽는 게 필요해요. 혼자서는 도저히 안 읽어지지만 함께하면 읽을 수 있죠. 그러다 보면 책을 서너 권씩 동시에 읽어나가요. 어른들이 함께 읽기 경험을 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즐거운 책 읽기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광명문고가 주축이 되어 독서동아리 리더 양성과정을 개설하면 좋겠어요. 인근 아파트에도 협조를 요청하고 부모들부터 책을 읽는 게 중요해요. 독서동아리 리더 양성과정에서 성장하신 분들을 주축으로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거죠.  

광명문고 내부
광명문고 내부

요즘 동네 책방이 많이 어렵지요? 

김숙이 대표 : 광명문고는 가늘고 길게 가기로 했어요. 광명문고는 ‘수색에 빛을’이라는 뜻인데요, 수색 보다 넓게 ‘전국에 빛을’ 향해 가야죠. 여러모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정해현 회장 : 동네 책방에 수많은 책을 어떻게 다 갖다 놔요? 80:20 법칙 있잖아요. 작게 큐레이션 해 놓고 활용하는 거죠. 내가 필요한 책을 주문해 놓고 하루 이틀 후에 사러 가는 책문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사지 말고 동네 책방에서 사라. 집 주변에 큰 서점만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찾는 책이 있다면 사고 찾는 책이 없으면 주문해라. 서점 입장에서 선주문 후결제 시스템을 쓰는 거예요. 

김숙이 대표 : 손님들 대부분은 자기가 찾는 책이 있냐고 물어보고 찾는 책이 없다고 하면 전화를 끊어요. 전화 문의는 주로 절판된 책, 다급한 책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비월은 어떤 모임인가요? 

정해현 회장 : 2016년 여름에 나비월 독서 모임을 시작해서 벌써 6년이 넘었어요. 나비월 모임을 통해 함께 책 읽는 재미를 붙이고 회원들끼리 살펴봐도 눈에 띄게 달라진 회원들이 있어요.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지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느낌 있잖아요. 

나비월 구성원들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서 모임은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게 비결이겠죠. 독서 모임을 지속할수록 큰 효과와 충족감을 맛볼 수 있어요. 어떤 때는 그런 맛을 느꼈고 어떤 때는 끌려 갈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광명문고는 나비월을 버티게 한 힘이었습니다. 이젠 내적으로 힘이 생긴 걸 느낍니다.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와서 책 소개를 더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책을 읽으면 어떤 점이 좋아지나요? 

정해현 회장 : 내가 쓸쓸한데, 다른 사람은 이런 기분을 알 수 있을까요?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느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위축되고 나만 알고 지내자, 자기 영역만 구축해요. 그러다가 “그 책 읽어 봤어요? 나는 이 구절이 참 좋았어요” 하며 이야기를 나누면 금방 친해지잖아요. 그런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어떤 사람하고도 누구하고도 담을 허물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어요. 친밀감이 생기고 관계가 편해지면 스스로 편해지니까 자기 삶이 재미있어지는 겁니다. 

동네 책방과 작은도서관이 연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정해현 회장 : 독서동아리 리더 양성 과정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2022년 예산이 마련되는 대로 독서동아리 리더 양성과정을 4~5회 기준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기관과 연계하여 순회 프로그램으로 선순환할 수 있도록, 작은도서관의 실질적 어려움을 살펴보고 작은도서관 활동가의 자원 봉사에만 기대지 않고 상근직으로 활동비를 지원해야 합니다. 작은도서관이 지역에서 뿌리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년째 광명문고를 들락거리며 느낀 점은 광명문고가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책문화를 공유하고 ‘함께 읽기’와 ‘함께 쓰기’를 하고 ‘함께 성장’을 꾀하는 문화 살롱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는 10월 29일 광명문고 심야책방에서는 ‘한글날이 있는 시월, 국어사전을 쓴 사람한테 우리말 민낯을 와장창 깨 보자’라는 기획으로 숲노래 최종규 작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서울 은평구 대표 동네 책방으로 여러 가지 재료가 자기 역할을 하는 ‘문화 비빔밥’ 같은 광명문고의 앞날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


<김혜정 시민기자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펴내는 월간지 <동화읽는어른> 전 편집국장이다. 좋은 책을 널리 알리고 책문화, 도서관문화, 출판문화, 함께 읽기와 쓰기, 함께 성장의 가치를 실현한다. 네이버블로그 ‘위풍당당 삐삐샘’을 운영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