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빠지지 않고 본방사수하고 있는 유일한 드라마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이다. 의사 친구 5인방의 보기 좋은 우정을 기반으로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삶과 죽음, 탄식과 절규가 어우러져 매회 진한 눈물을 뽑아내고 있다.

생의 기억이 투병뿐인 자식을 끝내 잃는 엄마, 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딸을 마주하는 부모, 갑작스런 발병에 일생의 꿈이었던 직업을 포기하게 된 청년....... 다양한 아픔의 경로들은 그럼에도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희망. 꿈을 잃어도, 딸을 잃어도, 오래도록 잡고 있던 세상의 끈을 놓아도 남은 생은 희망이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게도 이어가야할 삶이 놓여있다. 그걸 매번 잊지 않고 말해주는 게 좋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쓴 김범석 교수는 의사 면허를 딴지 18년 된 서울대학교 암 병원 종양내과 전문의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효과 좋은 신약들도 많이 나와 치료도 잘 되고 생존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만나는 환자들 대부분 4기 암 환자들로 완치의 목적이 아닌 생명 연장 목적의 항암치료를 받는다. 완치되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이들보다는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지켜보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떠날 때를 알게 된 사람들과 여전히 떠날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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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 더 살고 싶어요.” 

치료기간 내내 고집스럽게 그 말만 되풀이하는 노인 환자에게 ‘그럼 그 10년 동안 뭘 하고 싶으세요?’ 하고 물어도 딱히 답이 없었다. ‘다음 번 외래 오실 때는 생각해보고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씀 드렸지만 매번 대답은 ‘10년만 더 살게 해주세요.’ 였다. 끝내 돌아가실 때까지 그 환자는 그 숙제를 하지 못했다. 

돌봐주는 식구도 친척도 없이 홀로 투병 중인 노인 환자에게 묻고 또 물어 겨우 동생과 연락이 닿는다. 금전문제로 다툰 후 오래도록 절연하고 살고 있었던 동생이다. 형의 상황을 듣고 놀라 달려온 동생에게 힘겹게 환자가 내뱉은 말은 “내 2억 갚아.”였다. 아마 생에 마지막으로 나누었을 형제간의 대화, 동생은 황망하게 돌아서 다시 오지 않았다.

내 앞에 남은 삶이 1년 혹은 6개월이라 한다면, 지금과는 필경 다르게 살고 있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관계들도 달라지고, 사과하고, 용서하고, 즐거웠던 때를 돌아보고, 행복한 기억들을 만들고. 혹은 이럴 수도 있다. 분노하고, 책임을 묻고, 이 고통을 겪는 것과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며 외롭게 견딜 수도. 아직 닥치지 않았으므로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편안한 죽음을 맞고 싶다는 바람을 누구나 갖고 있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말기암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끝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에도 한 가지 내가 미리 정하고 갈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연명치료 거부다. 의식 없는 80대 폐암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맞이하게 되는 연명의 과정, 두경부암 환자가 점점 온 얼굴과 몸이 암에 뒤덮여 가면서도 주입되는 산소에 의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저자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말 최선일까’ 묻고 있다.

작년에 암수술을 앞둔 어머니한테 걱정돼? 라고 묻자 “얘, 나는 별로 무섭지 않아. 이렇게 가도 뭐가 아쉽겠니. 너무 고통스럽게 죽을까봐 그게 좀 그렇지.”라고 하셨다. 아, 그럼 몰핀 꽝꽝 놔달라고 할게, 라고 농을 치면서도 왠지 안심이 되었다.

죽음을 대하는 어머니의 자세가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었다. 최근엔 조심스럽게 연명치료거부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얘, 우린 그거 예전에 다 작성했다.” 하신다. 여러모로 다행이다. 괴로웠던 과거를 환기하거나 혹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미래를 선행학습 시키는 게 될까봐 이 책을 권하는 건 아직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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