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의 상생을 배운다고 했지만 수녀님들은 이미 자연이었습니다.

동광원에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일곱 분의 나이 드신 수녀님들이( 개신교 수도 시설이지만 주위에선 모두 그렇게 부릅니다 ) 겨울을 나야하니 거두어 들이는 곡식의 종류도 무척 다양합니다.
 
늦 감자와 고구마는 벌써 수확을 끝냈고 비교적 규모 있는 곡물 가게나 가야 볼 수 있는 조 기장 수수부터 참깨 들깨에 율무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땅을 1미터쯤 파야 얻을 수 있는 우엉뿌리는 올해도 심으셨습니다. 처마 밑에는 양파묶음이 가지런히 걸려있고 마당엔 팥과 콩이 널려져 있습니다. 동지가 되면 저 팥으로 죽을 쑤실 것이고 그전엔 콩 삶아 두부 만들고 메주를 띄울 겁니다.
 
밭에서는 배추 동여매는 일을 합니다. 배추 속이 얼으면 금새 썩어 들어가 보관이 어렵고 김장을 담궈도 푸석하니 맛이 떨어집니다. 수녀님들이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밭 언저리를 서성거리며 거드는 척을 했더니 원장님이 알타리 무우가 튼실하게 자란 밭으로 오라 하십니다.
 
원장님의 손이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무우는 한 다발씩 커다란 비닐 봉지에 담겨 있습니다. 별로 품을 낸 것도 없는데 거저 주시니 손사래를 치며 고사해 보지만 원장님은 내가 손 내밀 때 까지 선한 웃음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생태계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입니다. 그러니 나눔이 없습니다. 생태계에서 나눔이란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동물이 자신이 필요한 것 외에 더 많은 식량을 쌓아 두나요? 어떤 식물이 자신이 필요한 양분 외에 과도한 잉여양분을 저장해 두나요? 생태계에 속한 모든 것들은 필요한 이상의 그 무엇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 절대로 없습니다. 인간을 제외 하구요. 그러니 생태계에 나눔이 없다는 말은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계에서는 나눔이 최고의 가치이지만 생태계에서는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광원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귀농운동 본부의 안병덕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원장님이 주신 알타리 무우 봉지를 다시 한번 쳐다 봅니다. 그 밭에 있던 사람들이 나 말고도 꽤 있었고 집집마다 무우 한 봉지씩은 손에 들었으니 꽤 긴 무우밭 한 이랑 뽑힌 게 금방 인데도 원장님의 웃음은 가시질 않습니다.
 
안 선생의 얘기를 곱씹어 보니 원장님의 웃음은 나눔의 충만함에서 오는 기쁨이라기 보다 내 것이 아니니 필요한 대로 가져가도 좋다는 안도감의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조금 더 많이 가졌으니 어려운 이들에게 주고 나는 기쁨을 갖겠다는 인간계의 소박한 나눔의 개념이 아니라 애초에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지 않았으니 굳이 나눌 것도 없다는 생태계의 품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요.
 
값 없이 받았으니 값 없이 모든 것 내어 놓고 떠난 예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몇 년째 동광원에 다니면서 배우는 것이 무척 많습니다. 욕심 없이 사는 법을 배우려고 생각했지만 수녀님들의 마음 속에는 “욕심”이란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과의 상생을 배운다고 했지만 수녀님들은 이미 자연이었습니다. 
 
▲     © 이지상
그렇게 귀하게 얻은 알타리 무우가 베란다에서 나흘씩이나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원장님께 무우를 받을 때 고사했던 이유는 물론 도와드린 품도 넉넉지 않았는데 과분하게 많이 주신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크지만 아내나 나나 총각김치를 담궈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내보다 내가 먹을 만한 요리를 더 많이 하는 건 맞습니다. 하려면야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아내의 솜씨가 저보다 우위인 게 확실하지만 아내는 한 달에 대 여섯 번쯤 실력 발휘를 할 뿐입니다. 매일 먹는 찌개나 나물무침 종류는 내가 조금 더 낫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이번의 김치 담그기도 내게 슬며시 밀어놓고는 태평하고 그게 괘씸한 나는 두고 보자는 심보로 버틴 게 나흘씩이나 되었습니다.
 
결국 깨달은 자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부담감을 뿌리치지 못하고 무를 다듬습니다. 그새 파랬던 무청이 노랗게 시들고 몇 가닥은 무르기까지 했습니다. 큰일이다 싶어 수세미로 무를 문질러 흙을 깨끗이 씻어내고 시든 잎을 떼어 냅니다. 몇 번을 그렇게 씻고 헹구니 은근히 허리깨가 아파오지만 봄날 밭갈고 씨 뿌리던 수고를 생각하면 그리 힘든 것도 아닙니다.
 
떼어낸 이파리들도 한군데로 모아둡니다. 동광원에서 생산된 작물들은 거래를 하지 않아서 돈으로는 살수도 없으니 창가에 널어 말렸다가 더 추워지면 아쉬울 때 시래기 국이라도 끓일 요량입니다.
 
동광원은 토착적 영성의 대가로 맨발의 성자 이현필 소록도를 세운 한센인의 아버지 최흥종 목사 걸인의 아버지 강순명 목사 그리고 다석 유영모 의 스승인 도암의 성자 이세종 선생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재산욕. 명예욕은 물론 식욕과 색욕.수면욕까지 초월한 그는 100마지기의 전답과 가진 재산을 모두 걸인과 빈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마니 한 장 사진 한 장 남겨두지 않은 채 소천 하였습니다.
 
그는 군자는 세 종류가 있다고 가르쳤는데“ 첫째는 모든 것을 검소하게 사는 검박군자요 둘째가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 애써서 먹는 혈식군자이고 셋째는 내가 사치한 옷을 입고 다니면 남들이 부러워 빚을 내서라도 그 흉내를 내려 할 것이니 이는 내가 그 피 값을 빨아먹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여기고 그러므로 군자는 사치한 옷을 입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도덕 군자이다” 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은 동광원을 설립했고 수없이 많은 병자들과 거지들의 숨쉴 곳이 되었습니다. 내게 한 무더기의 알타리 무를 주신 원장님의 넉넉한 웃음은 거진 100여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을 종교적 영성으로 다져온 신앙의 선물입니다. 
 
▲     © 이지상
무청을 한데 모아 씻으면서 보니 벌레들이 먹은 흔적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옛 조상들은 콩도 꼭 세알을 심었다고 하지요. 한 알은 새의 것 한 알은 땅 짐승 것 그리고 나머지 한 알이 심는 농사꾼의 것이었답니다.
 
지난여름 나무 젓가락을 들고 배추벌레를 잡은 적이 있습니다만 수녀님들은 나쁜 벌레라는 말을 한 번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먹어야 하니 너희들은 좀 참아줘야겠다는 미안한 마음이셨겠지요. 자연의 손으로 또 다른 자연을 만드는 수녀님의 기도가 시들고 색 바랜 벌레 먹은 무청에도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아내와의 사소한 실랑이로 베란다에 방치해 두었던 알타리 무우를 씻고 절여 김치를 담그는 일이 세상에 지은 죄를 씻어 내리는 세례의식처럼 경건해졌습니다.
 
꽃씨를 거두며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 지는 일임을 생각하네
사랑은 기쁨과 고통 화해로움과 쓸쓸함
사랑은 아름다움과 시듦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임을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꽃씨를 거두며 주먹을 쥐고
이제 사랑의 나날은 다시 시작되었음을
나는 깨닫네
- “꽃씨를 거두며“ 도 종환 시 백창우 작곡 성 바오로 딸 수녀회 노래
 
자그마한 학교 교사 앞의 화단 앞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 먼저 영근 꽃씨를 거두는 도종환 시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에게 꿈의 나래로 활짝 여는 참 소망의 땅을 보여주지 못하는 선생으로서의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사랑의 날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스스로 다짐하는 한 구절 한 구절이 성 바오로 딸 수녀회 수녀님의 소박한 목소리에 얹혀 기도하듯 흘린 땀방울로 자라난 동광원의 총각김치로 우리 집 식탁에 은은하게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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