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기증 

얼마 전 난생 처음으로 대학병원 1인실에 입원했습니다. 무릎을 다친 지 얼마되지 않아 입원했던 터라 제가 무릎 수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더라고요. (무릎은 잘 나아가고 있습니다) 입원은 제가 아파서 했던 것은 아니고, 조혈모세포 기증을 위해서였습니다. 골수기증이라고도 하지요.

골수기증은 15년 전인 의대 학생 시절에 신청을 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혈액종양학 수업에서 혈액암 환자들을 위한 골수이식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수님께 인상적인 수업을 듣고 나오니, 골수기증등록 캠페인데스크가 의대 건물 앞에 차려져 있었어요. 

저와 친구들은 방금 수업의 감동에 겨워 너나할 것 없이 기증등록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한참 흘러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두어 달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더라고요. 조혈모세포은행협회였습니다. 15년 전에 등록해놓은 제 피와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혈액암 환자가 나타났다고, 지금도 기증 의사가 여전히 있다면 기증을 해주면 좋겠다고요.

제가 전화를 받고 처음으로 떠올린 얼굴은 제 형부였습니다. 저의 형부는 10여 년 전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고 지금까지 잘 진료 받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먹는 약이 잘 들어서 건강히 지내고 있지만, 혹시라도 약에 내성이 생기면 그때는 골수이식을 받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형부를 위해서라도 골수기증등록 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증하겠다고 약속한 후,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을 뵈니 재미있는 설명을 해주십니다. 골수이식이 골반뼈를 드릴로 뚫어 골수를 채집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증식제를 맞은 후 헌혈하는 것처럼 채집을 한다고요. 제가 700년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조혈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 중 100년 치를 환자에게 기증하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평생에 2번 이상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는 사람도 보셨다고요. 

700년 중에 100년 치라 남에게 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비율인 것도 아니지만, 또 기증했을 때 충분히 뿌듯함을 느낄만한 하찮지 않은, 딱 매력적인 숫자가 아닌가요. 게다가 헌혈처럼 할 수 있다니, 참 편리하지 않나요?

건강검진도 무사히 통과한 저는 드디어 이식을 위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대학병원 1인실에 입원한 것이지요. 골수를 기증한다고 무슨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우’는 진짜 최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입원부터 퇴원까지 마치 VIP라도 된 것처럼, 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파견 나온 간호사 코디네이터 선생님의 에스코트를 받았으니까요. 

저는 부작용이나 후유증 없이 기증을 잘 끝내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2박3일의 짧은 입원이었지만 이 뿌듯함, 왠지 ‘진짜 의사’가 된 것 같고 진짜로 환자를 살린 것 같은 마음에 좀 들뜨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 환자분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어요. 그저 저보다 몸무게가 좀 덜 나가시는 분이라는 사실 정도만 귀동냥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분의 혈액형을 알게 되었네요. 이미 저와 같은 AB(+)형으로 바뀌어있으실 테니까요. 부디 조혈모세포가 잘 자리 잡아 혈액암이 완치되시기를 바랍니다.

최근 코로나로 조혈모세포 기증등록자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만 40세 미만이고 몸이 건강하다면 한번 기증등록을 해보는 건 어떠세요? 헌혈이나 조혈모세포 기증과 같은 일들이, 서로 얼굴도 못 보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하는 요즘과 같은 때에, 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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