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10월, 어느 대학 강연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만약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만 찾을 수 있다면 미래에는 여성 셰익스피어가 나올 수 있으리라.’ 그 두 개의 열쇠는 바로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다.

그때는 여성에게 재산권도 참정권도 없었으며, 여성은 아버지 또는 남편의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닐 수도 없었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싶어도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2020년에 이 주장은 꽤 낡은 주장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계속 읽히는 이유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을 원하기 때문이다.

‘제 3의 장소’라는 책(원제 The Great Good Place, 저자 레이 올든버그)이 있다. 이 책은 제1의 장소인 가정, 제2의 장소인 일터 혹은 학교에 이어,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제3의 장소의 중요성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했다. 물푸레 활동을 하면서 나는 제3의 장소를 실제로 경험했다. 사람은 가정이나 일터에서 주어지는 사회적 역할만으로는 삶의 충만함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래서 끊임없이 가정과 학교, 또는 일터 밖에서 다른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

레이 올든버그는 이를 ‘비공식적 공공생활’이라고 칭하고, 여기에 필수적인 요소인 공간을 ‘제3의 장소’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그렇다. 누구나 삶을 떠받칠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장소의 중요성에 우리는 더 구체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그곳이 어디일까? 누구나 그런 곳이 한 군데 쯤은 있어야 한다. 쿠션이 되어 주는 곳.

육아나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사람들과 얼마나 많이 ‘공간’에 대한 갈망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모두 기-승-전-공간이라고 했다. 우리의 다양한 관계가 촘촘하게 연결되고 활발하게 이야기 될 수 있는 곳. 제3의 장소에서 공동체를 되살릴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간절하게 믿었다. 그 좋은 사례로 물푸레는 늘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한 가지 아쉬운 한계도 있었는데 바로 부엌이 없다는 것. 북카페는 가스나 환기시설이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 바로 먹는 것이다. 그런데 불이 없다 보니 이동식 가스버너로 음식을 만들거나 가깝지 않은 공동부엌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오고는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부엌을 고민하던 차에 부엌과 공간이 모두 공유되는 작은 아지트를 마련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물푸레 전체에서 출자를 해보려고도 했지만 모두의 상황이나 욕구도 다르고 재정적인 부담도 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계약을 했다. 이름은 자기만의 방.

어른들은 마치 자녀를 독립시키듯 제일 먼저 쌀과 소금을 넣어주시고, 오랫동안 정성 들여 수놓은 예쁜 커튼을 주셨다. 이웃들은 사서 한 번밖에 안 썼다며 초강력 믹서기를 슬며시 갖다 주고, 공간에는 사운드가 중요하다고 최고음질의 블루투스를 선물해주고, 갖고 있던 8인용 식탁을 덥석 내놓고, 그릇이며, 조리도구며, 심지어 행주에 세제까지 그렇게 살림살이가 가득 모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공사를 셀프로 진행하는 동안 수시로 도와주고 의견을 나눠준 친구는 이렇게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인생의 가장 멋진 날들을 자기만의 방에서 만들자’

울프가 연설을 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은평의 한 마을에 자기만의 방이 생겨났다. 이제 여성과 남성을 넘어 청년들과 어른들, 어린아이들까지 더 많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가 태어날 것이다. 공유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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