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곧 사라질 것 같았던 코로나19가 지역사회 감염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확산 기세가 가파르게 상승해 참으로 우려된다. 누구는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지만 시간을 건너뛰어 바로 오늘이 4월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전국을 아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광풍이 조금 잠잠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은 없다는 믿음과 날이 따뜻해지면 바이러스 활동이 상대적으로 주춤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에 기인한 간곡한 바람이다.  

겨울 같지 않던 겨울이 어느덧 지나고 입춘이 지난지도 한참 전이다. 곧 있으면 경칩. 겨우내 차디찬 물속과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생명들이 다시 꿈틀대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한다는 때이다. 경칩이 지나면 이제 개구리 노래 소리가 들려오고 양지바른 산자락에서는 진달래가 꽃을 피울 것이다. 아파트와 텃밭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개나리도 진달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노란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다. 그때가 조금 지나면 기다렸단 듯이 왕벚나무를 비롯한 살구나무, 앵도나무, 조팝나무 등이 꽃 잔치를 벌이겠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목련도 하얀 꽃을 피울 것이다.   

목련은 꽃이 크고 예쁘다. 하얀 꽃이다. 눈처럼 하얗다. 목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꽃이 지고 나면 모르는 사람이 더러 있겠지만. 그런데 왜 목련이라 했을까? 찾아보니 이렇다. 나무 목(木)에 연밥 련(蓮)의 합성어로 꽃 모양이 연꽃과 비슷한 나무라는 뜻이다. 자세히 보니 정말 그렇다. 꽤 오래 전부터 그랬다. 

목련은 지금으로부터 1억 4천만 년 전, 넓은잎나무들이 지구상에 첫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때 나타났으니 원시식물이라 부를 만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봄의 구성원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있다. 목련은 또한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다. 15m까지 자랄 수 있으며 잎이 넓고 가을이면 잎을 떨어뜨린다. 우리나라 자생종인데 제주도의 숲속에서 드물게 자란다. 이 말은 내륙에서는 목련을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 공원이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목련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목련 종류이긴 한데 백목련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나무도감을 찾아보니 목련과(科)에 ‘태산목’, ‘목련’, ‘일본목련’, ‘함박꽃나무’, ‘백목련’, ‘초령목’, ‘튤립나무’ 등이 있다고 나온다. 도감에 실리지 않았으나 실제 목련 집안에 속하는 식물은 그 종류가 세계적으로 200여 종이 넘는다. 여기에 꽃이 예뻐 개량한 품종까지 합한다면 400종을 훨씬 넘어설 것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목련과의 나무 수집에서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문헌을 보니 400여 종류의 목련을 한꺼번에 비교하며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목련으로 특화된 세계적인 수목원인 셈이다. 우리가 공원 등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나무는 ‘백목련’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중국의 중남부가 원산지로 전국의 공원이나 정원에 식재하여 즐기는 나무다. 중국 자생지에서는 높이 25m에 지름 1m까지도 자란다고 하니 목련보다 훨씬 크게 자라는 나무다. 이 두 나무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목련은 보통 꽃이 필 때 꽃잎 모양의 화피편(꽃받침이 꽃잎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꽃받침과 꽃잎의 구분이 쉽지 않은 부분)이 옆으로 활짝 펴지며 꽃 밑에 작은 잎이 1~2개씩 달리는 특징이 있어 그렇지 않은 백목련과 구분할 수 있다. 

목련을 자세히 보면 붓 모양을 닮은 꽃봉오리 끝이 북쪽을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햇빛을 많이 받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생장 속도가 달라서 해를 많이 받는 남쪽 부분의 생장이 빨라 결국 봉오리 끝이 북쪽을 향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로써 동서남북 방향을 가름 해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옛날 사대부들은 한결 같이 임금님이 계시는 북쪽을 바라본다 하여 ‘북향화’, ‘충절의 꽃’이라 불렀단다. 

우리 조상들은 목련을 다양하게 이용했다. 동의보감에는 목련을 신이(辛夷), 우리말로 붇곳(붓꽃)이라 하여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따서 약재로 사용했다. 목련은 “풍으로 속골이 아픈 것을 낫게 하며,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코가 메는 것, 콧물이 흐르는 것 등을 낫게 한다. 얼굴이 부은 것을 내리게 하며 치통을 멎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수염과 머리털을 나게 한다. 얼굴에 바르는 기름을 만들면 광택이 난다”라고 했다. 

목련은 진한 향기를 풍긴다. 가지를 꺾거나 태워도 향기가 나는데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장마철에 목련 장작으로 불을 때어 습기를 없애고 향기도 내면서 온 집안에 스며든 퀴퀴한 냄새를 쫓아냈다. 목련의 향기가 병마를 쫓아낸다는 믿음도 있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목련 장작을 준비해두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목련꽃이 한창임에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다면 나는 목련 장작으로 불을 피우련다.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것처럼 목련의 진한 향기가 각종 병마를 쫓아낼 것이라 믿으면서 목련 장작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겠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가파른 현장에서 남모를 예지가 불을 품고 있을 것이다. 사생의 현장에서 눈물과 땀과 열정과 온 몸의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 의사, 간호사, 공무원 그리고 이름 모를 모든 임들께 고맙다고, 함께 이겨내자고, 그리고 시민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연대하겠다는 다짐을 보낸다. 고맙습니다. 모두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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