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일입니다. 담배 냄새를 맹렬히 풍기며 진료실에 들어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제 표정에서 뭔가를 눈치채셨던지, 그 분은 “에이 그냥 놔두소, 내 칵 죽지 뭐.”라며 잔소리를 미리 가로막으려 들었습니다. 말이 잘라지자 순간적으로 발끈한 저는 “그냥 죽을 것 같죠? 요즘은 뇌경색이 와도 바로 죽지를 않습니다. 뇌경색 상태로, 마비가 생긴 상태로도 5년 10년 더 살아야 해요.”라고 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순간 그 분의 눈동자에 스친 크나큰 두려움. 그 미묘한 갈등의 순간을 의사들은 검투사처럼 노립니다. 좀 더 치고 들어가자! 이어 담배를 끊으면 심뇌혈관계 질환의 위험성이 서서히 줄어든다는 얘기, 담배를 끊고 싶을 때 금연약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을 얹었고, 그 분은 결국 그날 금연클리닉을 통해 금연약을 처방받으셨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왠지 환자분을 또 협박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적절한 조언을 드리고 싶을 뿐이었는데, ‘금연하지 않으면 당신은 심장마비에 걸리고 말 거야’, ‘당신 뇌경색에 걸리고 싶어?’라고 협박처럼 말하게 되었네요. 저는 정말 협박하는 의사는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진짜로 니코틴에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담배를 찾는 사람들, 극장이나 고속버스 같이 담배를 피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니코틴 의존도가 진짜로 높은 이들입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이 프래밍험(니코틴의존도) 점수를 물어보면 생각보다 흡연자들의 니코틴 의존도는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들 담배를 많이 피고, 또 끊기 힘들어하는 걸까요?

요즘은 진료실에서 만나는 흡연자들에게 연필을 물고 숨을 깊게 들이쉬어 보라고 합니다. 복식호흡으로 깊고 깊게 들이쉬고, 그리고 나선 입술을 오므리고 숨을 천천히 길게 내뱉으라고 해봅니다. 10번에서 20번 정도 이렇게 날숨을 길게 하는 호흡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사실 진짜로 원한 건 흡연이 아니라 잠깐 이렇게 이완할 시간, 일에서 조금 멀어지는 시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곤 합니다.

직장에서만 핀다는 사람,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에만 핀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은 직장생활 중 유일한 쉬는 시간이 담배를 피러 옥상에 올라간 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러니까 담배가 아닌 다른 것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죠. 휴식, 이완, 비움, 자기에의 집중, 혹은 탈출.

가난한 여성들이 담배 끊기가 가장 힘들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가족도 돌봐야 하는 그녀들이, 하루 중 스스로를 위해 쓰고 있는 유일한 시간이 바로 담배 피는 시간이기 때문인 것이죠. 그 시간만이 홀로 즐길 수 있는 선물같은 시간이어서, 그것이 그녀가 가진 유일한 자원이어서 끊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저도 흡연자들을 만나면 협박을 하기보다는 진짜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물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