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시공세계에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시간은 앞으로만 흐를 것이 분명하다. 쉬지 않고 시간이 멋대로 흘러가는 동안 우리 모두는 마치 덤처럼 나이라는 것을 먹게 된다. 누구도 그 당연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법, 해마다 나이를 먹고 노쇠해지다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는 순리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필경 우리는 우리가 머물던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사라짐’은 같지만 삶과 작별하는 모습은 모두 다르지 않을까. 지난 5월 출간된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무리하는 글들을 담고 있다. 그의 마지막 2년 동안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꾸밈없이 솔직하고 차분하다. 얼핏 ‘마지막’ 이야기라고 하니 ‘마지막’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상실감, 슬픔, 안타까움 등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낙천적인 태도와 주변을 바라보는 선한 시선은 읽는 이로 하여금 유쾌함마저 느끼게 한다.

삶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곁에는 늘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초대하지 않은 손님과 같다. 무례하기 짝이 없이 불쑥불쑥 우리를 찾아와 제 집 인양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닌다. 그런고로 우리는 문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두 가지 기로에 서곤 한다. 그들과 피를 튀기며 싸우고 평생 헐뜯는 사이가 될 것이냐 아니면 어르고 달래어 최소한의 상생을 도모할 것인가.

올리버 색스는 <고맙습니다>에 담긴 에세이들을 쓰는 동안 여든 살을 지났고 눈에 지니고 있던 흑색종으로 인한 암이 발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전 정보 없이 그에 대한 앞선 텍스트만 본다면 ‘이런 딱한 노인네를 다 봤나, 늙은 것도 서러운데 나쁜 병에 또 들었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만약 진짜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시간들이 저 따옴표 안의 문장들로만 가득했다면 어땠을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왜 불행은 끝끝내 나를 피해가지 않을까 한탄하며 떠나는 날까지 자신의 운명을 탓할 대상을 찾아 헤매기만 했다면? 물론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이가 저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해도 아무도 비난할 권리는 없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주어진 여건에서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선순위에 놓을 것인가, 어디에 가장 활성화된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올리버 색스는 충분히 불운하다고 할 수 있는 형편 가운데 놓였음에도 감사와 기쁨, 사랑하는 것들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을 택했다. 사랑으로 충만한 그의 뒷모습은 감히 아름다웠다 할 수 있다. 우리의 뒷모습은 어떤 모양새일까? 이왕 시작되어버린 인생을 그 끄트머리까지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과연 당신에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보라. 유한한 인생 길을 무슨 색으로 칠하여 어떤 빛을 발할 것인지는 모두 당신에게 달려있다. <고맙습니다>가 그 선택의 순간마다 당신에게 따뜻한 조력자가 되어 줄 터이니 걱정은 조금 붙들어 매놓아도 좋다.

 

정혜윤 /구산동도서관마을 사서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